[송국건정치칼럼] ‘적폐청산’과 ‘정치보복’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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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07   |  발행일 2017-08-07 제30면   |  수정 2017-08-07
충격적인 국정원 댓글공작
13건 ‘적폐’ 중 1차에 불과
정치적 의도 전혀 없다지만
MB·朴 정권시절 표적 의혹
신종 정치개입으로 비치면…
[송국건정치칼럼] ‘적폐청산’과 ‘정치보복’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가 위원회 내 적폐청산 TF의 ‘댓글 공작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지난 3일 밤 전격 발표했다. 이명박정부 시절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임 기간(2009년 5월~2012년 12월) 심리전단에서 ‘알파팀’을 비롯해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 외곽팀을 운영했다고 한다. 발표에 따르면, 외곽팀은 주요 포털사이트와 트위터 등에 친정부 성향의 글을 게재해 국정 지지여론을 확산했다. 또 사이버공간의 정부 비판 글을 ‘종북세력의 국정방해’ 책동으로 규정해 반정부 여론을 제압하려 시도했다. 일부 언론에선 외곽팀은 순차적으로 확대됐고, 총선과 대선이 있었던 2012년엔 30개팀 3천500명이 활동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위해 연간 30억원의 민간인 인건비를 썼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사용해 MB 정부 지지층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벌인 뒤 대응방안까지 담아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국정원의 이번 발표는 ‘1차’다. 서훈 원장이 이끄는 문재인정부 국정원은 과거 그릇된 정치개입 사건 13개를 지목해 진상을 밝히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문화계 블랙리스트 개입, 세월호 실소유 의혹 및 참사 관련 여론조작 관여, 극우단체 지원,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의 밀착,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뒷조사,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의 논두렁 시계 조작 등이 포함됐다. 모두 휘발성이 강한 사안들인데, 공통점은 이명박·박근혜 9년 보수정권 동안 일어났던 일이다. 그 이전 진보정권 10년(김대중·노무현)의 국정원 활동은 아예 조사 대상이 아니다. DJ와 노무현 정권 때는 과연 국정원이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뗐을까. DJ 시절 햇볕정책의 그늘로 휴민트(human intelligence·인적정보)가 붕괴되는 바람에 대북 정보력을 상실한 건 왜 짚어보지 않을까.

국정원의 적폐는 청산돼야 한다. 특히 국민세금으로 조성된 막대한 자금을 무기로 정치에 개입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일은 대의 민주주의 본질에도 어긋난다. 다만, 적폐청산이 표적청산으로 흐르는 건 경계돼야 한다. 미리 13개의 표적을 정해놓고 하나하나 파헤치기보다는 진보·보수정권을 망라하고 국정원이 정치에 어떻게 개입해 왔는지 전수조사를 실시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반발이 줄어들 수 있다. 표적이 정해져 있으니 ‘또 다른 형태의 정치개입’이란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13개의 표적 가운데 대다수는 이미 검찰에서 수사를 했거나,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사법적 판단을 받은 사건들이다. 이 때문에 보수야당에서 ‘적폐청산’을 빙자한 ‘정치보복’이란 볼멘소리가 나온다.

개혁위는 “이번 댓글사건 조사 결과 발표는 철저히 국정원 적폐청산 차원에서 이뤄졌다.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미 국정원 발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아닌 국민의당 김유정 대변인이 “결국 몸통은 이명박 청와대였다. 용서할 수 없는 국정원의 위법행위는 상응하는 대가를 꼭 치러야 한다”고 한 건 적폐청산이 정치보복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국정원 적폐청산TF는 앞으로도 세월호, 블랙리스트, 우병우 같은 이미 몇차례 다뤄진 쟁점에 대해 핵폭탄급 조사 결과를 내놓을 걸로 예상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시 검찰수사로 이어진다. 역대 정권의 통과의례였던 과거정권 부정의 결정판이다. 정치보복으로 비칠 것을 우려해 적폐청산을 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국정원이 새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본연의 업무마저 스스로 부정하면서 신종(新種) 정치개입을 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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