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갑을상사그룹과 대구의 새로운 인연

  • 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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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07   |  발행일 2017-08-07 제31면   |  수정 2017-08-07
[월요칼럼] 갑을상사그룹과 대구의 새로운 인연
김진욱 고객지원국장

IMF 외환위기 때 경제부 기자였던 필자가 많이 썼던 단어 중 하나가 ‘부도’였다. 그만큼 많은 대구·경북지역 기업이 부도를 냈다. 그중 하나가 갑을그룹이다. 갑을그룹의 주력사인 <주>갑을은 대구에 본사를 둔 우리나라의 대표적 섬유기업이었다. 우즈베키스탄·스리랑카 등지에 공장을 설립하며 세계화를 지향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해체됐다.

갑을그룹과 오버랩되는 기업이 갑을상사그룹이다. 갑을상사그룹은 갑을그룹에서 분리 독립했다. 갑을이란 회사명은 창업주인 고(故) 박재갑(朴在甲)·재을(在乙) 형제의 이름을 딴 것이다. 박재갑 회장이 타계한 1982년 이후 박재을 회장이 갑을그룹을 경영해 왔다. 그러다 1987년 박재을 회장은 장조카인 박창호 회장에게 갑을그룹을 물려준 뒤 갑을상사그룹으로 독립했다. 갑을그룹은 박재갑 회장 가계로, 갑을상사그룹은 박재을 회장 가계로 분가(分家)한 것이다. 갑을방적·<주>갑을 등은 갑을그룹 계열사였다. 갑을합섬·갑을건설 등은 갑을상사그룹 소속이다.

갑을상사그룹은 IMF 외환위기 때 갑을그룹과 달리 잘 버텼다. 대신 대구에서 서서히 잊혔다. 그룹 모체인 갑을합섬의 본사는 여전히 대구에 있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대구에서의 활동은 뜸해지고, 사업 권역을 전국으로 넓히면서 대구와의 인연은 멀어졌다. 일반인들이 갑을그룹과 갑을상사그룹을 구별할 리 없었다. 그냥 ‘갑을’이었다. 갑을은 대구시민들에게 잊혀 가는 기업이었다.

그런 갑을이, 정확하게 말하면 갑을상사그룹이 최근 다시 대구에 나타났다. 지난달 28일 권영진 대구시장과 박한상 갑을상사그룹 사장이 전기차·의료·화장품 등 여러 분야의 사업 협력을 위한 포괄적 투자협약을 한 것이다. 박한상 사장은 박재을 회장의 3남이다. 갑을상사그룹 전체를 경영하고 있는 2남 박효상 부회장과 함께 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룹 경영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기업인이 대구시장에게 약속한 것이니,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갑을이란 이름을 대구에서 들을 것 같다.

나는 갑을상사그룹과의 투자협약을 대구시가 여지껏 체결한 투자협약 중 가장 의미있는 것으로 본다. 갑을이 다시 명실상부한 대구 기업이 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 것이다. 갑을상사그룹은 이젠 섬유가 주력업종이 아니라 자동차부품·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2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매출액 2조원의 중견기업이다. 이런 중견기업이 향토기업이라는 것 자체가 대구 발전의 플러스 요인이다.

갑을상사그룹의 우즈베키스탄 투자에도 나는 의미를 부여한다. 협약 내용 중에는 갑을상사그룹의 우즈베키스탄 폐기물 처리시설, 주사기 제조시설분야 진출에 대구 기업과 함께한다는 내용도 있다.

갑을그룹의 우즈베키스탄 진출이 연상됐다. 1990년대 후반 갑을그룹은 우즈베키스탄에 면방공장을 설립했다. 그때 나는 우즈베키스탄 공장을 두 번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우즈베키스탄에서 갑을그룹에 대한 호감도는 매우 높았다.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한국의 기업에 대해 현지인들이 아주 고마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공장 준공식때 카리모프 당시 대통령이 박창호 갑을그룹 회장과 공동 기자회견을 할 정도로 갑을을 예우해줬던 건 인상적이었다.

갑을상사그룹의 우즈베키스탄 투자에 갑을을 떠올릴 현지인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갑을상사그룹이 아닌 그냥 갑을로 알 것이다. 일자리를 마련해주러 다시 온 한국기업, 그 기업이 대구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걸로 난 믿는다.

갑을상사그룹의 대구 귀환이 무엇보다 의미있는 이유는 새로운 인연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구에서의 갑을 스토리는 모두 선대(先代)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젠 2세들이 스토리를 써가야 한다. 박효상 부회장, 박한상 사장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갑을상사그룹은 2020년에 매출액 5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구에서 출발해 매출 5조원이 된 중견기업, 그 중견기업이 고향 대구를 위해 통 큰 기여를 하는 그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 시작이 지난달의 협약이길 기대한다. 김진욱 고객지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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