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가성비와 비지떡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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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08   |  발행일 2017-08-08 제31면   |  수정 2017-08-08

여름 휴가 성수기도 끝물이다. 아직 휴가 기회를 엿보는 직장인들은 나름 내공이 깊은 경우가 많다. 폭염과 인파에 시달리느니 덜 덥고, 덜 복잡할 때 가는 게 낫다는 실속파들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올여름 휴가철 성수기(7월15일~8월15일) 인천공항을 통한 출국자가 역대 최고치인 281만명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는 역대 최다였던 지난해의 277만명을 훌쩍 넘는 수치다. 부산 김해공항쪽 사정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필자도 7월말 김해공항을 통해 필리핀 보라카이 섬에 3박4일 다녀왔기에 그 분위기를 짐작한다. 150석 정도의 필리핀 저가 항공기가 탑승객이 거의 가득찬 상태로 4시간을 날아갔고, 현지에 도착해보니 그 좁다란 섬은 한국인들로 복닥거렸다.

이 같은 해외 바캉스족 급증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저가항공사의 취항이 대중화되면서 항공료가 대폭 낮춰진 데다 필리핀·베트남 등 동남아쪽은 물가가 한국보다 훨씬 싸기 때문이다. 이른바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다. 가성비(價性比)는 ‘가격 대비 효용(성능) 비중’을 줄인 말로, 소비자가 지불한 가격에 비해 효용이 클 경우 ‘가성비가 좋다’ 혹은 ‘가성비가 높다’라고 쓴다.

실제로 서울을 기준으로 부산과 동남아지역 3박4일 여행 비용을 비교 분석해 견적내 보니 국내보다 동남아쪽이 오히려 싸다는 보도가 최근 나왔다. 국내 휴양지의 성수기 호텔·펜션 숙박비가 평소보다 두세 배 높고, 음식비 등 제반 물가도 높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同價紅裳)’라고, 비슷한 비용이면 유명한 외국 휴양지를 선호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국내 경기가 활성화될 리 없다. 정부는 침체된 국내 경기를 살리기 위해 온갖 방안을 동원해 경기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여가 선택권까지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가성비가 높아 보이는 값싼 패키지 외국여행은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보면 문제점도 많아 신중해야 한다. 싼 만큼 실속이 없거나 부실하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한국 속담이 꼭 맞음을 실감한다. 그래서 ‘물건의 진면목을 모르면 돈을 많이 주라’던 선인의 지혜가 생각난다. 가성비가 높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가성비로 쓰고, 비지떡으로 읽는다.’ 잘못하면 이런 표현도 현실이 된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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