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曲기행 .1] 구곡과 구곡문화...朱子 은거한 ‘무이구곡’처럼…조선 선비들 이상향을 꿈꾸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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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0 07:53  |  수정 2021-07-06 14:54  |  발행일 2017-08-10 제22면
20170810
중국 푸젠성 무이산 천유봉(天遊峯)에서 바라본 무이구곡(일부). 조선의 구곡문화는 주자가 무이산에 은거하면서 무이구곡을 설정하고 무이구곡가를 지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도산구곡(안동), 무흘구곡(성주), 화양구곡(괴산) 등 우리가 흔히 듣고 보는 수많은 구곡은 조선 선비(성리학자)들이 추구한 도학(道學)의 세계와 이상향이 서려 있다. 단순히 수려한 계곡의 굽이가 아니라 당대 지식인들의 정신세계와 자연관이 녹아있는 특별한 정신문화의 유산이다. 최근 들어 지방자치단체 등이 대표적 구곡들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새로운 문화관광산업 콘텐츠로 개발하는 등 찬란한 문화유산 중 하나인 구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화양구곡은 명승 제110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구곡문화의 유래와 내용 등을 알아보고 경북을 중심으로 전국의 대표적 구곡을 답사하며 우리나라 구곡문화를 살펴본다.


우리나라 어느 지역이든 풍광이 멋진 계곡이나 골짜기에 가면 구곡(九曲)이나 동천(洞天)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특히 큰 선비를 비롯한 유명 인물이 살았던 곳에는 어지간한 계곡에도 다 무슨 구곡이나 동천이란 이름이 붙어 있고, 바위나 암반에 관련 글귀들이 새겨져 있다.

도교적 색채가 짙은 이름인 동천은 ‘신선이 사는 별천지’라는 의미로 풍광이 좋고 그윽한 골짜기를 의미하는데, 구곡과 비교하면 짧은 계곡(골짜기)이라 할 수 있다.

구곡은 말 그대로 산속 계곡의 아홉 굽이를 뜻한다. 이 구곡은 선비들이 경영한 원림(園林)으로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시대 선비들의 핵심 문화였다 할 수 있다. ‘구곡’으로 한 것은 ‘구(九)’가 동양에서는 양의 기운이 충만한 완전한 수이고 가장 큰 수인 점 등에서 최고의 수로 여긴 문화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성리학자 주자 무이산에 은거
九曲 경영하고 九曲歌도 지어
조선 지식인 삶·사상 큰 영향
거처 주위 산천에 구곡 설정해
정자 마련 詩쓰고 그림도 그려
16세기 지배 ‘구곡문화’ 일궈



구곡은 단순히 풍광이 빼어난 곳을 선정한데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 선비들이 추구한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한 공간이었다. 구곡문화는 중국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에서 비롯됐지만, 중국보다 조선에서 훨씬 더 성행하고 발달했다. 선비들은 구곡을 설정하고, 그것을 매개로 구곡시를 짓고 구곡도를 마련해 걸어놓고 보면서 성리학의 이상을 정립하고 실천하려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선의 구곡문화는 확대·심화되면서 우리의 산천을 인문학의 보고로 만들어 갔다.

이황에서 비롯된 도산구곡, 이이의 고산구곡, 송시열의 화양구곡, 정구의 무흘구곡 등이 대표적 구곡이다. 우리나라 구곡의 수는 조사가 진행될수록 늘어나고 있는데, 전국적으로 150여 개의 구곡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40개가 넘는 구곡이 있는 경북이 구곡문화가 가장 성행한 지역이다.

◆구곡문화의 유래

구곡의 조건을 갖춘 지형은 세계 곳곳에 무수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구곡은 특정의 역사적·환경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문화적 개념이다. 이 구곡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는 남송의 성리학자 주자(1130~1200)다. 그의 이름은 희(熹)고, 호는 회암(晦庵)이다. 주자는 푸젠성(福建省)의 우계현(尤溪縣)에서 태어나 19세에 진사에 급제, 24세 때 처음 출사(出仕)한 이래 71세로 별세할 때까지 여러 벼슬을 받았지만 예우 수준의 명목상 직책이 대부분이었다. 실제 관리로 부임해 복무한 기간은 9년 정도에 불과했다.

주자는 유학 외에 불교와 도교에도 흥미를 가졌으나, 24세에 이연평(李延平)과 만난 이후 유학으로 복귀해 몰두하면서 그 정통을 계승했다. 주자가 푸젠성 무이산(武夷山)에 은거해 학문을 닦으면서 구곡을 경영하고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노래한 무이구곡가를 지음으로써 중국의 무이산은 물론 동아시아의 문화 지형을 바꾸어 놓게 되었다.

주자는 53세 때인 1183년 무이산에 무이정사를 지어 은거하면서 주변의 사물을 읊은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을 짓고, 아울러 정사를 경영하게 된 내력을 적은 ‘무이정사기(武夷精舍記)’ 등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7년간 이곳에 머물면서 후학을 위해 강학하고 학문 연구에 힘쓰는 한편 산수의 아름다움을 한시로 노래했다. 그 가운데 구곡의 경영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주자는 1184년 구곡을 설정해 배를 타고 구곡을 따라 유람한 뒤 ‘무이도가(武夷櫂歌)’ 10수를 지었다. 주자가 구곡을 설정해 이름을 붙이고 서시와 더불어 곡마다 시를 읊은 이 10수의 무이도가, 즉 무이구곡가는 구곡문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구곡문화의 전개

성리학은 주자가 집대성한 새로운 유학이다.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따라 인의예지를 실현하는 도덕적 삶을 통해 도덕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은 기존 유학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왜 도덕에 따라 살아야 하는지, 과연 도덕에 따라 잘살 수 있는지를 형이상학적으로 치밀하게 밝힌 점에서 새로운 유학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심신을 바로 하고 맑게 하며 사물의 이치를 공부함으로써 우주만물의 이치를 체득하고 인의예지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주자를 지극히 존경하며 받들었다. 성리학 신봉자인 조선 선비들의 주자 추앙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주자의 사상과 가르침뿐만 아니라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가졌다. 특히 무이산에 은거하며 무이구곡을 경영하고 무이도가를 지은 것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탐구했다. 주자의 무이구곡 경영과 무이도가 창작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무이도가를 도학의 완성을 향해 가는 단계를 읊은 것으로 본 그들은 주자의 무이구곡과 관련된 삶을 자신들의 삶 속에 구현하려 했다. 주자는 그 개인을 떠나 도학을 실천하며 성인이 되고자 했던 현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리학이 정착되던 16세기의 조선 지식인들은 무이산과 무이구곡에 대한 글을 기록한 ‘무이지(武夷誌)’를 탐독하고 무이구곡가를 차운(次韻)하거나 무이구곡도를 감상하며 주자에 대한 존경과 감화의 정서를 고양시켰다. 그들은 또 자신의 거처 주위의 산천에 구곡을 설정하고 정자 등을 마련, 구곡시를 짓고 구곡도를 그리는 등 구곡문화를 일궈갔다. 이를 통해 주자의 사상과 삶, 문학을 본받으려 했다.

구곡문화의 도화선인 ‘무이도가’가 언제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고려 말에 전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무이도가를 하나의 통상적인 시로 인식했을 뿐이고, 구곡을 경영하며 구곡시를 짓거나 하는 것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구곡문화는 16세기에 이르러 성리학이 지배사상으로 자리잡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구곡의 경영과 구곡시 창작은 기록상으로 소요당(逍遙堂) 박하담(1479~1560)의 ‘운문(雲門)구곡’과 ‘운문구곡가’가 처음이다. 그는 1536년 청도의 운문산을 비롯한 동창천 일대의 빼어난 곳을 구곡으로 경영하면서 운문구곡가를 지었다.

비슷한 시기에 퇴계 이황(1501~1570)은 안동에 도산구곡을, 율곡 이이(1536~1584)는 황해도 해주에 석담구곡을 경영하면서 조선의 구곡문화는 선비들의 필수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이황은 무이도가를 차운해 시를 짓고, 무이구곡도를 감상하며, 무이지를 읽고, 무이구곡을 상상하는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주인공이다. 이후 한강 정구의 무흘구곡, 우암 송시열의 화양구곡 등 수많은 구곡이 뒤를 이었다.

주자의 무이도가를 차운해 시를 짓고 무이도가에 대한 비평을 펼치고, 구곡을 경영하며 구곡시를 짓고 구곡도를 그려 감상하면서 조선 선비들이 형성한 구곡문화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자연과 문학, 미술이 융합된 조선 성리학의 ‘꽃’이고 ‘진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리학 위에 문학(구곡가)과 예술(구곡도), 건축(누정)이 결합된 구곡문화의 심화·확산은 사대부의 원림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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