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영화 ‘택시운전사’와 ‘전두환 회고록’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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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0   |  발행일 2017-08-10 제31면   |  수정 2017-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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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기획취재부장

영화 ‘덩케르크’ ‘군함도’ ‘택시운전사’가 염천에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최근 3편을 내리 봤다. 세 영화는 모두 실화를 극화했다. 또한 극한 상황에서 생명과 인간에 대한 존엄, 그리고 민초의 힘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가운데 택시운전사는 5·18민주화운동이라는 현대사를 배경으로 했다. 관람 내내 분노가 일고 가슴이 먹먹했다.

영화의 큰 줄기는 서울의 평범한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 분)이 독일 제1방송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와 동행하며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생사고락을 함께한다는 내용이다.

김만섭은 평소 “학생이 대학에 가면 공부나 할 것이지 경제도 어려운데 데모나 한다”고 투덜대다 우연히 현장의 실상을 직접 경험하면서부터 인식의 대전환이 이뤄진다.

‘선입견과 편견이 있는 경험은 우상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경험’이란 것을 증명해주듯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나는 빨갱이가 아니다”라고 외치던 장면은 그래서 더욱 애처롭고 비감하다.

얼마 전 영화를 본 한 지인이 “1980년대 중반 힌츠페터가 찍은 영상은 범생이었던 나의 인생을 비틀어버렸다”고 SNS에 쓴 걸 본 적이 있다. 지인과 같은 생각과 행동을 했던 학우들은 당시 분신으로, 투신으로, 화염병과 돌로 저항했다. ‘86세대’들은 크건 작건 ‘5월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

영화는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 일깨운다. 당시는 계엄하 보도통제와 검열로 진실보도를 할 수 없던 엄혹한 시대였다. 영남일보 또한 당시 신군부에 의해 강제폐간 당한 아픈 과거가 있다.

지난해 이맘때 광주 망월동 옛 5·18묘역을 찾은 적이 있다. 그곳 들머리엔 광주·전남민주동지회가 1982년 전두환 전 대통령 전남 담양군 방문 민박기념비의 일부를 떼어내 참배객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한 징표가 있다. 그건 광주시민의 5·18트라우마가 아직 씻기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올해 5월 대구의 한 시민단체 대표가 대구시민의 성금으로 ‘대구시민은 5월의 광주를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쓴 ‘불망비’를 징표 옆에 세우자고 주장한 바 있다. 광주5·18관련 단체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대구2·28민주운동단체가 건립을 주도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본다. 진정한 달빛동맹은 그 바탕 위에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 지난달 법원이 ‘전두환 회고록’과 ‘지만원의 5·18 영상고발 화보’를 출판·배포금지해 주목을 끌었다. 전씨 측이 이를 두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을 출판 금지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반발했다. 하지만 국민을 학살하고, 기업의 돈을 뜯어 말년까지 버젓이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자가 할 말은 아니다. 그가 써야 할 것은 회고록이 아니라 참회록이다. 지씨 또한 “5·18 당시 북한군 600명이 개입했다”는 등의 망언을 일삼았다. 그 말이 진실이라면 전씨를 비롯한 당시 군수뇌부는 북한군 침투를 막지 못한 무한책임을 면치 못하리라. 아직도 참회하지 않고 발뺌과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최근 독일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치정권 부역자로 유대인 학살을 방조한 97세의 노인(오스카 그뢰닝)에게 72년 만에 4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또 얼마전 중국인 여행자가 독일의회 의사당 앞에서 히틀러경례를 하며 사진을 찍다 체포돼 500유로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이 두 사건을 지켜보며 우리도 독일처럼 홀로코스트법(반인륜 범죄 및 민주화운동을 부인하는 행위에 관한 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폄훼하는 행위는 반드시 처벌받아 마땅하다. 다시 광주에 갈 기회가 온다면 5·18묘역에 있는 힌츠페터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싶다. 그가 아니었다면 5월 광주의 진실은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르기에.박진관 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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