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하면서 깊고 진한 ‘안의갈비탕’의 뼈대있는 맛

  • 이춘호
  • |
  • 입력 2017-08-11   |  발행일 2017-08-11 제35면   |  수정 2017-08-11
■ 푸드로드 경남 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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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적 기질을 잘 대변하는 ‘안의갈비탕’. 고명류가 일절 들어가지 않는 게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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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을 겨냥해 후발주자로 등장한 ‘안의갈비찜’.

안의면 초입 광풍루 인근 전문 식당
미송·금호·대중·삼일 등 9곳 밀집해
설렁탕처럼 보이지만 결이 다른 맛
당면·파·고춧가루 등 일절 넣지 않아

30여년 前 김말순 할매가 원조라는 說
맛에 반해 매일 점심 먹으러 안의면行
모 거창 부군수의 에피소드로 더 유명
간장·오이 등 넣어 찐 갈비찜도 인기


◆ 아나키스탕을 찾아서

함양군청 바로 옆에 있는 ‘상림숲’. 고운 최치원의 손길이 닿아 형성된 함양의 허파 같은 군림(郡林)이다. 국내 최초의 인공숲이다. 연꽃의 메카로 홍보하지만 전남 무안 등과 비교하면 아직 규모가 턱없이 작다. 아직 주변 정리 중이라 운치가 감소된 건 사실이다. 대신 돌섶다리, 각종 수생식물존은 꽤 잘 조성돼 있어 하절기에 건질 피사체가 좀 있다.

내가 이번에 함양에 온 건 ‘안의갈비탕(이하 안갈탕)’ 때문이다. 안갈탕은 곧이곧대로, 안의의 기질이 담긴 탕이다. 안의면 초입의 광풍루 지척에 안갈탕 전문점 9집이 밀집해 있다. 미송, 금호, 대중, 안의원조할매, 삼일, 한일, 배원, 밀림 등이다.

서양수 안의갈비탕관광협의회장을 만나기 전에 시간이 좀 남아 면소재지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근처 ‘허삼둘 가옥’은 드물게 한말 여성 중심의 가옥 배치를 보여주는 국내 유일의 민속자료다. 일제강점기 면소재지엔 대성, 안의, 운창 등 5개의 여관이 있을 정도로 번창했다. 이젠 옛 영화의 그림자를 쉽게 발견할 순 없다. 풍년정미소, 건영떡방앗간 등이 눈길을 끈다. 하루방제과점에서 옛날식 팥빙수를 사 먹었다. 함양은 산삼의 고장. 주머니 사정이 두둑한 남정네를 겨냥한 듯한 몇몇 유흥주점도 눈에 띈다.

안갈탕은 언뜻 설렁탕처럼 보인다. 특이하게 일절 당면 같은 게 들어가지 않는다. 토박이들은 그런 게 들어가면 지저분해지고 국물도 텁텁해져서 싫단다. 고춧가루조차 얼씬거리지 못한다. 이 고장에서는 대구식 육개장같이 화끈하고 얼큰한 소고깃국이 없다. 일반 정육으로 끓인 국보다 안갈탕에만 눈길을 준다. 물론 갈비탕, 다른 시골에선 언감생심인 음식이었다. 가장 비싼 갈비에 올인하는 게 예전 안의의 위세를 영속시키고 싶은 저의 같아 보였다.

1960년대 중반에 이미 안의에선 갈비를 파는 식당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게 안갈탕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는 토박이들도 잘 모르고 있었다. 아무튼 여기 사람들은 갈비 하나면 족하다고 여긴다. 국물도 한 색깔로 끝내려고 한다. 양념과 향신료에도 둔감하다. 심지어 쫑쫑 썬 파 정도는 들어가도 될 것 같은데 그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참 우직하고 무뚝뚝하게 생긴 탕이다. 안의가 아나키스트의 고향이니 그 안갈탕을 ‘아나키스탕’으로 명명해도 좋을 듯싶다.

◆ 거창이 알린 안갈탕

안의가 갈비로 유명한 이유는 뭘까. 안의현 시절, 함양, 거창 등지에서 많이 먹으러 왔기 때문이다. 안의의 시장 근처에 도축장도 있었다.

국내에는 숱한 명품갈비가 있다. 다들 숯불갈비 형태로 요리됐지만 안의만은 안갈탕이었다. 갈비를 손으로 뜯어먹는 광경이 선비들의 생리에 맞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거리의 안갈탕집에선 고기 굽는 냄새를 도무지 맡아볼 수 없다. 굽지 않고 우려내는 갈비, 이게 안의갈비문화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그런데 옥에 티가 있다. 한두 집 빼고 모두 자기가 원조라고 고집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생긴 집은 하나밖에 없다. 그럼 원조는 한 집이어야 한다. 진짜 안의 기질이라면 그 원조도 자신이 원조라는 사실을 대놓고 간판에 적지 않을 것이다. 원조 논쟁, 이건 마치 선비가 ‘나만 진짜 선비’라고 고집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처사가 아니겠는가. 다른 고장에선 원조 논쟁을 해도 안의에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쉽다. 얼마 전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업주들이 토론회를 벌였다. 모두 원조란 단어를 포기하기로 가닥을 잡아가는 듯하다가 마지막에 한두 명이 반대하는 바람에 불발로 끝났다. 모르긴 해도 다시 결의해서 ‘안의에는 안갈탕만 존재하고 원조 안갈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의하면 기립박수를 받을 것이다.

안의면은 80년부터 현재 구도를 갖게 된다. 48년 형성된 안의장도 리모델링 중이다. 해묵은 거리가 재단장되는 과정에 안갈탕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안갈탕의 역사는 비교적 짧다.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오던 시기 ‘금호할머니’로 불리던 김말순 할매가 밀림식당 맞은편에서 현재 버전의 안갈탕을 팔기 시작했다.

예전 안갈탕은 5일장(5·10일) 하루 전, 장작불로 24시간을 고아서 장날에 내놓는다. 할매집이 문전성시를 이루자 다른 식당도 하나둘 가세하면서 안갈탕거리가 형성된다. 예전 할매가 하던 식당은 이제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현재 며느리(김윤달)가 가업을 잇고 있다.

안의의 향토역사에 해박한 박홍기씨(80)는 “안갈탕의 역사가 안의 유림문화와 연결된 단서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향토사학자 이철수씨의 저서 ‘안의사람 맞쏘’에서는 이렇게 정리해놓았다. ‘김말순 할매 가게는 80년께 안의면이 소도읍을 정리할 때 소액을 보상받고 간판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할매의 갈비탕은 여기서 대가 끊어진 것은 아니다. 당시 같은 마을에 살던 부부가 식당을 열 때 할머니의 며느리가 주방장으로 들어갔고, 그때부터 10년간 이 식당에서 국물 내는 법을 이들 부부에게 전수해 맥이 끊어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게 안갈탕의 유래’라고 정리돼 있다.

◆ 거창부군수가 안갈탕 홍보맨

안갈탕을 유명하게 만든 또 한 사람의 유지가 있다. 모 거창 부군수의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안갈탕의 맛에 반한 거창 부군수가 점심때만 되면 출근하다시피 안의면까지 와서 식사했다. 이를 알게 된 언론에서 비난기사를 실었는데 그 덕에 갈비탕이 유명해지게 된 셈.

여기 식당가에선 오직 한우다. 모든 업소가 수입육을 거부한다. 그래서 가격이 세다. 안갈탕은 1만2천~1만4천원. 갈비탕만 팔면 다양한 손님을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개발된 게 ‘갈비찜’이다. 안의면 토박이는 갈비탕을 더 즐긴다. 반면 외지 관광객은 알록달록한 찜에 더 좋은 반응을 보인다.

이곳 안갈탕은 설렁탕도 아니고 여느 갈비탕도 아니다. 그렇다고 대구식 곰탕 스타일도 아니다. 딱 안의식 국물 톤을 갖고 있다. 곰탕용 사골을 고아낼 때처럼 오래 우려내지 않는다. 집집마다 레시피도 맛도 다르겠지만 대충 갈비로 만든 육수의 초탕은 버리고 4시간 정도 고아낸 재탕만 사용한다. 초창기에는 갈비의 길이가 지금보다 짧았다. 4㎝ 갈비를 4개, 지금은 조금 더 긴 걸 3개 낸다.

특이한 점은 안의갈비도 두 가지 명칭을 갖고 있다. 안의 밖 타 지역 사람들은 ‘안의갈비찜’, 안의에선 ‘안의갈비탕’이라 한다. 토박이들은 있는 듯 없는 듯한 갈비탕 국물 맛의 미묘한 차이를 단번에 구분해낸다. 외지에서 온 관광객은 여러 식당의 엇비슷한 탕 맛을 제대로 감별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후발주자인 찜은 식당별 색깔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4~5년생 한우 암소갈비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뒤 칼로 기름을 대강 제거한다. 이 고기를 한 번 삶아낸 다음, 삶은 물은 버리고 연해진 지방을 다시 잘라낸다. 소기름은 맛도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손질한 고기를 다시 끓이면 갈비탕이 된다. 삶은 고기에 마늘, 피망, 당근, 오이, 간장 등을 넣어 찌면 갈비찜이 된다. 지금도 안의 사람들은 몸이 부실하거나 아플 때 어머니들이 냄비를 들고 갈비탕을 사러 간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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