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대의 시간을 담은 건축] 달구벌의 본향, 달성토성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08-11   |  발행일 2017-08-11 제38면   |  수정 2019-03-20
‘어머니의 자궁’ 같은 터…대구 분지지형과 닮아

신화적이지는 않지만 달성(達城)은 기원의 흔적과 대구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모태적 공간이요 대구의 본향이라 하겠다. 달성의 옛 이름은 시초에는 달구벌(達句伐)로, 신라의 달구화현(達句火縣)이 통일신라에 이르러 대구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달성토성

20170811
낮은 구릉을 이용해 쌓은 둘레 1.3㎞의 달성토성은 달구벌의 본향으로 분지의 도시 대구의 지형을 닮았다. 우리나라 성곽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다. <영남일보 DB>


구릉지 언덕인 자연형태를 그대로 이용해 쌓은 달불성 토성으로 우리나라 성곽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원전부터 이곳에 취락을 이뤘고, 삼국사기에는 신라 첨해왕 15년(261)에 달벌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중심세력을 이루던 집단의 성곽으로 오랜 세월 달성서씨의 세거지였다가 세종대왕 때 문중에서 토지를 국가에 헌납했다. 선조 29년(1596)에 석축으로 개축하고 상주에 있던 경상감영을 현재의 대구 중구 포정동 경상감영공원 자리로 이전하기 전까지 이곳에 설치했다.

낮은 구릉을 이용해 5~12m 높이로 쌓은 둘레 1.3㎞ 토성은 12만9천700㎡ 크기의 달성공원으로 남아 있다. 터는 분지의 도시 대구의 지형과 닮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토성에서 시작, 4대 읍성으로 넓어져 지금의 도시로 점점 확대 성장한 듯한 느낌이다. 지금의 달성공원에는 옛 경상감영의 정문이었던 관풍루가 있고 향토역사관·동물원이 있다. 향토 시인 등 예술가와 성인의 시비·기념비가 있어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우리나라 성곽 중 가장 이른 시기 축조
삼국사기 ‘261년 달벌성 쌓았다’ 기록
구릉지에 5∼12m 높이로 둘레 1.3㎞

토성서 시작해 4대 邑城으로 넓어진 후
지금의 도시로 점점 확대 성장한 느낌
1905년 일제에 의해 공원·동물원 전락
토성 복원으로 ‘역사 원형 공간’ 회복을



일제강점기의 일제는 조선왕조의 궁궐 창경궁을 놀이공원 창경원으로 전락시키고, 서울 남산에는 신사·신궁을 만들어 참배하게 했다. 대구의 역사가 담긴 달성토성 역시 1905년 공원으로 만들며 신사가 세워졌다. 지금은 동물원이 있는 시민공원이다.

경상감영공원, 2·28기념 중앙공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등 대구의 공원은 제각각 그 장소성과 생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달성공원은 그 생성의 의미가 왜곡돼 만들어졌기에 올바르게 정리돼야 할 것이다. 일제에 의해 유린된 역사를 지우고 달성토성으로 복원, 역사의 원형이 담긴 공간으로 되찾아야 할 것이다.

◆관풍루(觀風樓)

20170811
관풍루는 원래 중구 포정동 경상감영의 문루였으나 1906년 박중양에 의해 읍성이 철거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졌다.
‘觀風世俗(누각에 올라 세속을 살핀다)’은 위민사상 뜻을 담고 있는 누각이다. 지방문화재 제3호로 지정됐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2층 전통건축이다. 공원의 북측 수운 최제우 선생의 동상 뒤편 언덕 위의 관풍루 현판은 죽농 서동균 선생의 글씨다.

1601년(선조 34) 상주에서 대구로 경상감영을 옮기면서 선화당의 남서쪽 포정문 위의 문루가 관풍루였다. 1906년 친일파 관찰사 박중양은 읍성 철거를 단행했다. 읍성이 사라지며 관풍루는 1920년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당시 철거돼 사라졌던 영남제일관도 지금의 망우당 공원 언덕에 1980년 새로이 세웠다.

당시 성문을 여닫는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경상감영 관풍루에서는 큰북, 종, 피리, 나팔 등의 풍악을 울렸다. 포정동 경상감영 본래의 자리에서, 아니면 지금의 달성공원 자리에서라도 새벽을 일깨우고 밤을 닫는 시간에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펴진다면 도시의 낭만을 일깨우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세속을 살피다’라는 이름처럼 이 시대의 정치, 우리 도시의 행정을 일깨우는 장소와 건축이 될 수도 있겠다.


◆대구향토역사관
20170811
달성토성이 있는 달성공원. 서침나무를 중심으로 왼편 언덕 위에 관풍루, 정문, 향토역사관 그리고 어린이헌장비가 있다.
‘갈 곳 없는 달성공원 대구향토역사관’ 지역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달성공원 정문 왼편으로 전통 기와건물 형태를 표방한 2층 콘크리트 건물이 대구향토역사관이다. 역사관은 낡은 시설과 부족한 콘텐츠 탓에 시민들에게는 그리 잘 알려지지 못한 문화시설이었다. 오랜 시간 논란이 됐던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이 수성구 삼덕동으로 확정 발표됐다. 아울러 ‘달성토성 복원사업 추진 계획’과 공원 내 대구향토역사관 존폐의 문제도 남아있다.

토성 일부를 허물고 향토역사관을 지었다는 이유로 문화재청은 향토역사관을 철거할 방침이라 한다. 토성 복원의 측면에서는 건축물보다 토성의 원상 복원에 비중을 두고 있다.

달성공원은 1965년 2월 조성돼 69년 8월에 개장되며 향토역사관도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원 정문 건축과 함께 목조전통건축을 표방한 콘크리트건축이다. 1960~70년대 전통문화 강박기에 만들어진 과도기적 콘크리트 건축 유산이라 하겠다.

20170811
◆토성과 공존하는 시립박물관과 도시계획관

달성토성과 함께 공존해야 할 건축이 있다. 대구는 전국의 광역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시립박물관이 없는 도시다. 지금까지는 각 대학 박물관과 역사관 등에 귀중한 소장품들은 이곳저곳에 분산돼 있는 실정이다. 대구시는 약 700억원(국비 40%)을 들여 2022년까지 시립박물관 건립을 추진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동물원이 옮겨지고 나면 달성토성의 숲속에서 과거의 시간과 역사가 공존하는 박물관을 그려볼 수가 있을 것이다.

세계의 도시들은 박물관·미술관에서 그 도시 역사와 문화예술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베이징·상하이에서 특별히 눈길을 끈 것은 도시계획관이었다. 이들 도시는 수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역사도시에서 현대도시로 급변했다. 도시계획관은 도시와 건축,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곳이다. 대구도시계획관은 토성 달구벌의 과거와 4대 읍성의 역사 및 미래도시 비전을 담는 건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한터건축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