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신중현 ‘도서출판 학이사’ 대표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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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1   |  발행일 2017-08-11 제41면   |  수정 2017-08-11
대학때 서점에 처음 가본 청년 책사랑에 빠져 출판 외길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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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창사 10주년을 맞은 도서출판 학이사의 신중현 대표가 출판사 2층에 마련된 도서관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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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부설 독서아카데미의 대마도 답사여행. <학이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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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가 창사 10주년을 기념해 펴낸 ‘내 책을 말하다’의 출판기념회. <학이사 제공>

영국의 시인 초서는 “책만큼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 이 세상에 또 없다”고 했다. 도서출판 학이사 신중현 대표(55) 역시 그러하다. 그는 책만 보면 좋았다. 경남 거창에서 태어난 그는 산골에 살았던지라 책이 무척 귀하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창시절 참고서를 사려면 읍내까지 나가야 했고, 대구로 대학 진학을 한 뒤 서점이란 곳을 처음 가봤다. 많이 가지고 싶었지만 늘 부족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책을 마음껏 볼 수 있고, 또 직접 만드는 출판업을 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천직이라 생각하고 있다. 신 대표는 출판업으로 돈을 벌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그저 좋은 책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자신이 책을 직접 만드는 과정이 행복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 속에 어느덧 30년이 흘러버렸다. 대한민국의 출판시장 역시 9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지역에서 출판업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한길만 파고 있는 것은 책이 좋기 때문이다.

경남 산골서 태어나 대구로 대학 진학
서점 방문후 책 직접 만드는 일에 관심
1987년 이상사서 “같이 일해보자” 제안
입사후 ‘책밥의 힘’으로 행복한 서른해

2007년 ‘學而思’로 개명…제2의 창업
대구 중견 출판사로 전국 100여 유통망
올 한국출판학회상 등 출판名家 입지
창사 10돌 ‘내 책을 말하다’ 출간 화제




▶출판업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요.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졸업 후 출판사에 취업하려 했으나 그 당시 출판사는 지금과 달랐지요. 출판사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가면 대부분 전집 할부판매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내게는 잘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다급하게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곳이 공단이었지요. 그런데 1987년 6월 어느 날 제게 너무나 기쁜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출판사 이상사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연락이 온 것이지요. 그것이 출판업에 종사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이상사는 학이사의 전신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이상사는 철학자 고(故) 최태성 회장님이 창업했는데 6·25전쟁 때 국내 대표 출판사들과 함께 대구에 피란왔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대부분의 출판사가 서울로 올라갔지만 이상사는 1954년 1월 대구에서 출판등록을 하고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저는 87년 6월29일 입사했습니다. 그 당시 이상사는 대구의 중심 종로에서 50여명의 직원이 사서류와 학습교재를 중심으로 발간하며 출판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지요. 그후 50여년이 지나 2007년 학이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30년간 한 출판사에서 ‘책밥’ 힘으로 살고 있어 행복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사실 지역출판업계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만.

“책이 저에게 밥처럼 소중하다는 의미에서 책밥이라는 단어를 자주 씁니다. 이 책밥은 출판업에 뛰어든 뒤 저를 30년 동안 견디게 해준 힘이자 제 삶의 원동력입니다. 아직 굶지 않고 있으니 책을 통해서 저는 제 인생을 잘 만들어온 것입니다. 지금도 출판업이 결코 돈은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지역에서 꾸준히 버텨올 수 있고 나름 기획출판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책밥이 제게 힘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상사에서 제게 전화를 해 같이 일해보자고 했을때 그 행복했던 기분, 그리고 일만 시켜주면 월급을 받지 않아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이상사로 출근하는 것이 즐거웠던 기억 등이 아직까지 저에게 힘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학이사란 이름도 좀 특이합니다.

“학이사(學而思)란 출판사명은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란 글에서 따왔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한자로 모일 ‘사(社)’자를 쓰지만 학이사는 생각 ‘사(思)자’를 씁니다. 과할 수 있지만 이 거창한 말을 학이사는 출판기업 정신으로 삼고 있습니다. 미흡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말이지요.”

▶그래도 지역에서 출판업을 하면서 어려움도 많이 겪었을 듯합니다.

“지역출판사라는 것에서 오는 한계라고나 할까요. 흔히 촌사람이 촌사람을 무시한다고 하지요. 학이사는 전국적으로 100개 정도의 서점을 직접 관리하면서 영업을 합니다. 지역출판사만이 아니라 수도권 출판사도 전국에서 이 정도의 서점을 관리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대구 사람들이 오히려 대구지역 출판사라고 무시할 때면 가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역출판사라서 좋은 점도 있습니다. 대구는 좋은 문인을 비롯해 글을 잘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역에 출판사가 있다보니 이 분들의 책을 만들 때 좀 더 자주 만나고 깊이 이해된 상태에서 좀 더 내실있는 책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그래서 학이사가 대구라는 지역에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사실 이 세상에 지역 아닌 곳이 어디있겠습니까. 서울에 비해 작은 지역에 있지만 대구에서도 충분히 전국의 독자들과 책으로 어울려 놀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출판업을 하면서 나름 보람있는 일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학이사는 올해 창사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서울에서 보면 촌에 있는 출판사라고 하지만 그동안 성과는 꽤 있었습니다. 2010년 심후섭 저자의 ‘새로 읽는 삼강행실도’가 올해의 청소년 도서 철학부문에 선정됐지요. 2014년에는 견영일의 수필집 ‘산수화 뒤에서’, 송진환의 시집 ‘못갖춘 마디’, 신재기의 수필집 ‘기억의 윤리’, 서숙의 수필집 ‘숨은 기억 찾기’가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뽑혔습니다. 2015년에는 이정웅 저자의 ‘나무, 인문학으로 읽다’가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콘텐츠에 선정됐습니다. 그만큼 학이사에서 좋은 책들이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활동 덕분에 지난 2월에는 제37회 한국출판학회상(기획·편집부문)도 받았습니다. 이 상은 지역에서 출판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더 열심히 하라고 주는 채찍이라 생각합니다.”

▶30년간 출판업에 종사하는 동안 줄곧 도와준 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출판업에 뛰어든 후 지금까지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제 곁에서 힘이 되어주고 도와준 분으로 문무학 시조시인(대구 동구문화재단 대표)이 있습니다. 이상사에서 제가 편집장으로 일할 때 ‘지혜보다 밝은 눈이 어디 있으랴’라는 명언·명문장 해설집과 ‘중고교용 문학사전’이라는 책을 함께 기획해 호응을 얻는 등 좋은 인연을 이어간 분이지요. 또 시조의 종장으로 쓴 ‘홑시’만으로 기획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책 ‘홑’이라는 책도 냈습니다. 학이사의 새로운 시도에 큰 역할을 해준 분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시작한 학이사 독서아카데미도 문 시인이 많이 도와주고 있지요.

“지난해 6월 학이사 부설 독서아카데미를 만들고 ‘서평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강의는 문무학 시인이 맡았습니다. 3개월 과정인데 지난 6월29일 3기 수료생이 배출됐습니다. 이 강좌를 처음 개설할 당시만 해도 서평쓰기 프로그램이 서울에만 있고 지역에는 없었지요. 서평쓰기는 제대로 된 책읽기 강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에서 처음 이런 강좌를 열었는데 예상 외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문 시인의 알찬 강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수료생들이 중심이 돼 시민독서운동모임 ‘책 읽는 사람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29일에 지역문학계와 출판계에서 나름 의미있는 특별한 행사를 열었습니다.

“2017년 6월29일은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날 입니다. 1987년 6월29일 첫 출근한 뒤 오로지 책밥만 먹은 지 30년이 된 날이지요. 이날 학이사 창사 10주년을 기념한 ‘내 책을 말하다’ 출판기념회를 열고 오랫동안 학이사와 같이 일해온 박병철 디자이너의 작품을 보여주는 ‘북디자인- 전후좌우’전을 오픈했습니다. 내 책을 말하다는 학이사의 1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10년을 모색하고자 만든 책으로 그동안 학이사에서 출판한 저자 60여명이 쓴 글을 엮은 것입니다. 국내에서 출판사가 이런 책을 낸 적이 없습니다. 힘든 시간 속에서 믿고 함께한 가족과 학이사의 식구, 협력업체, 필진 등 학이사와 함께 한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만든 책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학이사를 어떤 출판사로 만들고 싶으신지요.

“책과 책을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살아서 행복하지만 저나 학이사가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다른 분들은 30년 정도면 장인이라는 호칭에, 시쳇말로 눈을 감고도 자신의 일을 해낸다고 하지만 저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그 때문에 새로운 책을 만들 때마다 두려움이 큽니다. 그럴 땐 첫 출근할 때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지요. 그러면 그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뀝니다. 이것이 저를 견디게 하고 나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이런 힘으로 최고의 책을 만들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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