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플로렌스’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2016·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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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1   |  발행일 2017-08-11 제42면   |  수정 2017-08-11
재능과 열정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플로렌스’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2016·영국)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플로렌스’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2016·영국)

어릴 때 나의 꿈은 작가의 아내였다. 진짜 꿈은 작가였지만, 나에겐 그런 재능이 없다고 여겨 스스로 타협을 한 결과였다. 다행히(?) 작가와 결혼을 해서 그 꿈은 이루어졌다. 또한 결혼 후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아선지, 어찌어찌하여 작가라는 진짜 꿈도 이루어졌다. 늘 좋아하는 일 옆에서 꿈을 놓지 않고 맴돌다보면, 어느새 꿈이 일상이 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은 꿈이 일상이 되는 일일 것이다.

영화 ‘플로렌스’의 주인공인 플로렌스 포스터 젱킨스(메릴 스트립)는 지독한 음치다. 그런데도 당당히 음반을 냈으며, 카네기홀에서 공연한 경력도 있다. 이 불가능한 조합은 어떻게 된 것일까? 그녀가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한 시기는 1944년이었다. 객석은 빈자리 없이 들어찼고, 공연은 성황리(?)에 끝났다. 무엇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그녀가 지독한 음치이고, 자신은 이 사실을 몰랐다는 건 무척 난감한 일이다. 더구나 사랑하는 남편(휴 그랜트)은 그녀의 환상을 유지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애쓴다.

영국판 ‘플로렌스’ 이전에 프랑스판 ‘마가렛트 여사의 숨길 수 없는 비밀’이 있었다. 같은 인물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조금씩 다르게 영화화한 것이다. 사실 프랑스판은 좀더 잔인하다. 우여곡절 끝에 이 여인은 자신이 지독하게 노래를 못하며, 사람들이 자신을 혹독하게 비웃는다는 걸 깨닫고 쓰러진다. 그리고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 마가렛트 여사가 끊임없이 노래에 집착한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었다. 남편은 영국판의 휴 그랜트처럼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가련한 그녀가 쓰러지고 바로 끝나버리는 프랑스판 엔딩은 어쩐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하지만 영국판은 좀더 따뜻해 보인다. 이 가련한 여인이 사실을 알고 쓰러지는 건 같다. 하지만 눈을 감기 전, 명배우 메릴 스트립의 입을 통해 멋진 대사를 남긴다.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못한다고 할 순 있어도, 노래를 안했다고는 못할 거예요.” 듣고 있던 남편 베어필드는 “브라보”를 외치고, 플로렌스는 편안히 눈을 감는다. 이런 그녀의 초긍정은 인간승리로까지 보인다. 어쨌든 그녀는 노래를 했고, 음반을 냈고, 카네기홀의 꽉 찬 객석을 향해 자신만만하게 연주를 했다. 그것도 ‘밤의 여왕 아리아’와 같은 고난도의 노래를.

그녀를 응원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을 안고 산다는 것이다. 그녀가 늘 갖고 다니는 서류 가방은 유언장이었고, 그만큼 그녀는 죽을 준비를 항상 하고 있었다. 남편 베어필드가 딱하리만치 그녀의 환상을 지켜주려 애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플로렌스에게 유일한 기쁨이자 살아가는 이유가 음악이었으니.

‘1퍼센트의 재능과 99퍼센트의 자신감’이란 수식어가 붙은 여인. 하지만 플로렌스가 99퍼센트 자신감이 있었던 건 아니다. 열정과 용기로 헤쳐 나갔을 뿐이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음악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는 미덕이 있었다. 사실 그녀의 지독한 음치는 병으로 인한 청력상실의 결과라는 말도 있다. 어쩌면 이 여인은 훌륭한 성악가는 아니지만, 음악을 사랑해서 음악으로 퍼포먼스를 벌인 최초의 행위예술가가 아니었을까?

마지막 장면, 플로렌스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아름답게 노래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환상 속의 장면이다. 메릴 스트립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노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한다. 따지고 보면 아무리 훌륭한 예술가라도 자신의 이상에 도달한 자는 없을 테니, 크게 보면 결국 거기서 거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정확한 음정, 박자 이상으로 소중한 게 결국 음악과 인생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니까 말이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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