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엘리자의 내일·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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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1   |  발행일 2017-08-11 제42면   |  수정 2017-08-11
하나 그리고 둘

엘리자의 내일
‘오직 내 딸만을 위해’ 아버지의 어긋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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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헬조선’ ‘탈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더니 해외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종종 뉴스를 장식한다. 이민을 고려하는 이들도 많은 것 같다. 작년 한 온라인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1천655명의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이민 의향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10명 중 8명이 ‘갈 수 있다면 가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엇이 대한민국을 살고 싶지 않은 나라로 만들었을까.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그 원인은 같은 것일까.


루마니아의 민낯 담은 크리스티앙 문주 감독 新作
지나친 교육열과 부패 등 흡사 한국 사회를 보는 듯



‘엘리자의 내일’(감독 크리스티앙 문주)은 우리의 모습과도 유사한 루마니아의 현실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1989년에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전 대통령을 퇴출시킨 시민 혁명을 일궜지만 약 30년이 흐른 현재,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중장년층은 루마니아에서 희망을 보지 못한다. 영화의 주인공, ‘로메오’(애드리언 티티에니)도 딸 ‘엘리자’(마드리아 드래거스)가 영국으로 유학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중요한 졸업시험을 앞둔 엘리자가 괴한에게 성폭행 당할 뻔한 사건이 벌어지고 그때부터 이들 부녀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딸에게 늘 정직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로메오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딸을 유학 보내려 하고, 엘리자는 그런 아버지에게 실망하며 자신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연인이 낯선 곳에서의 공부보다 중요하다.

‘엘리자의 내일’은 자식을 위한다는 명분 앞에서 원칙과 양심을 부인하게 되는 로메오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하며 그의 가족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 즉 각 세대와 사회적 계급을 대변하는 루마니아인들의 가치관을 함께 펼쳐놓는다. 직권 남용을 일삼는 고위관리, 비리를 조장하는 경찰과 그에 협조하는 교사들은 로메오와 같은 세월을 겪었으나 재빨리 현실과 타협한 인물들이다. 이들과 다른 삶을 살고자 했던 로메오도 결국 그가 집착하는 딸의 미래를 놓고 덫에 걸리고 만다. 꿈꾸었던 사회를 만들지 못한 좌절감이 부정부패를 낳고 대물림되는 악순환의 서사가 직소퍼즐처럼 오차 없이 짜 맞춰진다. 한편 로메오의 아내는 병약하고 무기력해 보이지만 끝까지 남편을 만류하며 엘리자가 어디에 있든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한다. 진정으로 자녀를 위하고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두 사람의 대비는 자녀 교육에 가정의 사활을 거는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우리에게 연일 보도되는 정계의 비리, 혐오와 분노가 응축된 사건 사고들, 취업난은 ‘엘리자의 내일’이 말하는 루마니아의 오늘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이민에 대한 갈망도 이러한 문제들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사회의 그늘과 무관하다고 치부되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이라는 주제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끝까지 신중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로메오가 당면했던 것처럼 한순간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오염시킬 수 있는 선택지란 그저 유혹의 마수(魔手)일 뿐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졸업(Graduation)’이라는 원제는 즉각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1967년 작, ‘졸업’을 상기시킨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목표 없이 방황하던 중산층 젊은이의 성장을 다루었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 로메오 가족 각자는 엘리자의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인생의 한 산마루를 넘어간다. 그것은 또 다른 능선을 향한 시작을 내포하고 있다. ‘엘리자의 내일’이라는 제목은 그 새로운 출발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영화가 끝난 후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엘리자는 이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선택할 것이다. 그러면 그에 따른 책임도 올곧이 그녀의 것이 된다. 타락한 사회와 개인의 도덕적 결함을 동시에 들추는 집요한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28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첫사랑, 기억과 전혀 다른 과거를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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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전 헤어진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면 어떤 느낌일까. 게다가 그 또는 그녀가 나와 이별한 후 내 절친한 친구와 교제했다면, 그리고 내 친구는 그 부적절해 보이는 교제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옛 연인과의 재회가 더 많이 어색할까. 아마도 그런 만남은 하지 않는 게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감독 리테쉬 바트라)의 주인공 ‘토니’(빌리 하울/짐 브로드벤트)는 한 통의 부고를 받고 어색한 시간을 감수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첫사랑이었던 ‘베로니카’(프레야 메이버/샬롯 램플링)의 어머니가 자살한 친구, ‘아드리안’(조 알윈)의 일기장을 자신에게 주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평범함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왔던 노년의 토니는 첫사랑과의 재회를 통해 이제 전혀 평범하지 않게 된 젊은 날을 돌아보게 된다.


맨부커상을 받은 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스크린에
노년기의 성찰 예리하게 담아…두 번의 반전 눈길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의 소설(원제: ‘The Sense of an Ending’)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각색 과정에서 불가피한 축약 때문에 소설의 모든 서사와 감정, 철학을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두어 가지 점들은 훌륭하게 성취해냈는데 노년의 토니와 베로니카, 토니의 전부인이 이루는 미묘한 삼각관계가 그중 하나다. 오래 전 이혼했지만 가장 친한 친구로 만남을 계속하고 있는 전부인과 예나 지금이나 밀당의 고수로서 신비로움을 간직한 베로니카. 이 두 여성과의 관계 속에 까마득히 몰랐던, 혹은 무의식 속에 꽁꽁 감추어두었던 진실을 찾아가는 토니의 내적 여정이 차분하게 그려진다. 또한 분량은 많지 않으나 미스터리의 중심에 있는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라’의 발랄하면서도 우아한 매력을 단 몇 장면 안에 담아낸 점도 인상적이다. ‘에밀리 모티머’의 캐스팅이 적확했다.

두 번의 반전을 거치는 동안 관객들은 각자 문득 유년기의, 청년기의 어느 날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내가 사랑했던 이가 정말 그 사람이었는지조차 혼란스러워질지 모른다. 그 혼란이 우리의 지각과 감각 안에 이미 잠재해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믿어도 좋다. 노년기에 비로소 이루어진 성찰과 성장을 예리하게 담은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8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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