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엔 언제나 청바지 물결…전 세계 일상을 지배하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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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2   |  발행일 2017-08-12 제16면   |  수정 2017-08-12
청바지 인류학
거리엔 언제나 청바지 물결…전 세계 일상을 지배하다
저자 중 한 사람이 세계 대도시를 다닐 때마다 무작위로 지나가는 사람 100명의 옷차림을 관찰했는데, 언제나 절반이 넘게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한다. 미국 LA의 거리 모습. <눌민 제공>


미국서 발명…다양한 의미·개성 표현
전 세계 고유문화 파괴 ‘오명’ 얻기도
美 대공황시대 작업복서 패션으로 변화
평등주의·고통분담 상징으로 자리잡아
편안함 느끼는 동시에 불안·저항 표출
청바지로 규정된 여러 사회관계 밝혀


가장 비정치적이지만 가장 정치적인 옷, 가장 글로벌하지만 가장 개인적인 옷, 가장 비개성적이지만 가장 개성적인 옷,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세련된 옷, 세계를 연결하고 세계를 지배하는 옷. 이 청바지에 대한 날카로운 철학적 사유와 인류학적 분석이 돋보이는 책이다.

책에 등장하는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이 책의 저자 다니엘 밀러는 서울, 베이징, 이스탄불, 리우데자네이루와 같은 세계의 대도시를 다닐 때마다 무작위로 지나가는 사람 100명의 옷차림새를 관찰했는데, 언제나 절반이 넘게 청바지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청바지는 전 세계의 일상을 지배하는 옷 중의 옷이 되었다.

거리엔 언제나 청바지 물결…전 세계 일상을 지배하다
다니엘 밀러 외 지음/ 오창현 외 옮김/ 눌민/ 368쪽/ 2만1천원

한때 청바지는 미국에서 발명되어 가장 미국적인 아이콘으로, 때로는 전 세계 각지의 고유 문화를 파괴하는 제국주의의 첨병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오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청바지만큼 다양한 의미와 개성을 표현해주는 옷은 없다. 그리고 청바지야말로 가장 글로벌하면서 가장 사적인 옷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지적처럼, 이런 청바지임에도 불구하고 청바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청바지가 어떤 특성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는지,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청바지를 택하고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지, 그리고 청바지가 어떻게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문화를 만들어내는지를 폭넓고 다양한 인류학적 사례 연구를 통해 밝히고 있다. 청바지의 다양한 의미를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파헤친 첫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청바지가 가지는 여러 사회적 맥락을 탐색한다. 컴스톡은 청바지가 미국 대공황 시대 작업복에서 패션으로 변화하고 수용되는 원인과 과정을 밝힌다. 그는 상업 확장기가 아닌 대붕괴 시기에 청바지가 널리 퍼진 이유는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과 사회변혁 움직임 속에서 평등주의와 고통 분담의 상징으로 청바지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웨버는 인도 발리우드 영화 속에서 청바지가 어떻게 세련되고 매력적이고 자유로운 인도인을 표현하는 데에 친숙한 요소가 되었는지 탐색한다. 그러면서 자유로움과 에로티시즘을 상징하는 영화 속 청바지와 국제적 청바지 산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밝힌다.

올레슨은 청바지가 어떻게 미국에서 친환경 재생산업의 일부가 되었는지, 자선사업과 기부행위의 표상이 되었는지를 연구한다. 이를 토대로 청바지가 전 세계 사람들이 입어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서 특수한 가치를 창조하고 유지시키는 매개체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런가 하면 청바지 공유를 통한 애인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섹시함을 극도로 드러내는 청바지를 통해 파티와 사교 생활을 향유하는 모습, 보수주의와 전통주의를 해친다는 이유로 청바지에 반기를 들고 저항하는 인도 칸누르 사람들, 캐럿컷 청바지를 통해 드러나는 베를린 저소득층 젊은 노동자들의 과격함 등이 사례로 등장한다. 이를 통해 청바지에 의해 규정되는 여러 사회 관계들을 발견하게 된다.

어떻게 해서 청바지가 전 세계에 퍼졌는가? 어떻게 해서 사람들이 청바지를 통해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동시에 불안, 저항, 거부를 표출하는가? 청바지는 몸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어떻게 해서 청바지가 사회마다 지역마다 다양한 문화 양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청바지를 통해 지역적인 것과 지구적인 것이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질문과 해석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구체적인 모습을 만나게 된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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