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옹달샘과 물고기

  • 장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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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5   |  발행일 2017-08-15 제26면   |  수정 2017-08-15
박정희사업 줄줄이 좌초
딸이 밉다는 이유만으로
부모에게 분풀이 옳은가
기계적인 이념 갈등은
사회를 극단으로 몰아가
[화요진단] 옹달샘과 물고기
장용택 중부지역본부장

오늘은 광복 72주년이 되는 날이다. 일본에 주권을 빼앗겼다가 36년 만에 독립한 날이다. 하지만 1974년 광복절 기념행사 도중 육영수 여사가 피격당한 날이기도 하다. 광복절은 참으로 질곡이 많은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올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정확히 말하면 1917년 11월14일 태어났으니 딱 3개월 후가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리는 관련 행사는 몇 년 전부터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의 고향인 구미시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행사를 준비해 왔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국정농단으로 국회 탄핵에 이어 특검에 의해 구속되면서 뒤틀리고 말았다.

수년 전 박지만 EG 회장이 지인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누나가 잘못하면 아버님이 욕을 먹게 된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박 회장의 예언처럼 되고 말았다. 우선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 과정을 보자. 지난해 5월 우정사업본부에서 만장일치로 기념우표 발행을 승인했다. 그러나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우정사업본부는 발행 불가로 돌아섰다. 이에 남유진 구미시장이 우정사업본부 정문에서 우표발행 취소의 부당함을 호소하면서 1인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지난달 18일 서울행정법원에 ‘기념우표 발행 철회를 취소해 달라’며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이제 국가가 공인하는 박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은 전무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업이 모두 부정되는 쪽으로 그 불똥이 튀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박정희 대통령 생가공원화 사업’과 ‘역사자료관 건립’ 및 ‘새마을테마공원 조성사업’이다. 구미시의 아이덴티티인 박정희 네임을 활용한 지역개발사업이며, 구미시민들에겐 여가와 관광, 교육을 통한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유익한 사업인데도 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선 부친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에 수감생활을 하면서 모친의 기일조차 챙기지 못하는 얄궂은 처지에 놓여 있다. 한술 더 떠 육영수 여사의 고향인 충북 옥천군에서 해마다 열렸던 육영수 추모행사에 대한 지원이 최근 중단된 데 이어 ‘박정희 기념 도서관’ 표지석이 스프레이 욕설로 엉망이 됐다. 지난해 12월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 훼손에 이어 생가가 방화로 전소됐다.

물론 자식의 잘못으로 부모가 큰 욕을 먹는 경우는 허다하다. 세상인심이라곤 하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폄훼는 지나친 듯하다. 그에 대한 공과(功過)는 이미 판가름이 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당시 박 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산업화 세력과 김대중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세력 간에 화해와 용서를 한 바가 있다. 이런데도 딸이 밉다는 이유만으로 부모에게 분풀이를 해대는 것이 옳을까.

김대중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근무했던 남 시장은 “공과는 있지만 국민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대통령에 대한 배려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면서 “7년 후에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 사업 행사가 열리면 꼭 가서 그분의 업적을 기릴 것”이라고 말했다.

남 시장의 말에 공감이 가는 부분도 적지 않다. 우리는 그동안 뺄셈에만 익숙해져 있다. ‘누구는 이래서 안된다’는 식으로 편을 가르다보면 극단으로 치닫는다. 국민과 정치인의 의식 수준이 이래서는 안된다. 역사적 인물의 공과를 인정함으로써 기계적인 이념 갈등에서 벗어나서 통합을 이루는 통 큰 국민이 돼야 한다. 선박이 무게 중심을 잡고 험한 파도를 헤쳐나가는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평형수다. 평형수의 기능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일전에 들은 옹달샘에 관한 우화가 떠오른다. 옹달샘에 물고기 두 마리가 살았다고 한다. 욕심 많은 물고기가 먹이와 영역을 독차지하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동료를 죽였다. 그러고는 옹달샘에서 혼자 흔전만전 지냈다. 그러나 그 풍요도 잠시였다. 죽은 동료의 사체가 부패하기 시작했다. 결국 옹달샘이 오염되면서 자신도 죽고 말았다. 장용택 중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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