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문재인 책임총리’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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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6   |  발행일 2017-08-16 제30면   |  수정 2017-08-16
취임 100일 맞은 文 대통령
만기친람식 국정운영으로
민생공약 줄줄이 쏟아내며
지지율도 고공행진 하지만
책임총리 공약 퇴색 아쉬워
[동대구로에서] ‘문재인 책임총리’
임성수 정치부장

4년 전 취임 100일을 맞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우리 국민 3명 중 2명이 지지를 보냈다. 이후의 국정 수행에 대해서는 무려 5명 중 4명이 낙관적 기대를 나타냈다. 일부 언론에서는 ‘100일간의 몸풀이를 거쳐 이제부터 본게임에 들어간다’고 호평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24시간이 모자란다. 제2 한강의 기적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취임 100일쯤 140개 국정과제를 확정하고, 경제적 약자의 권익보호 등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내일(17일)이면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이 된다. 숨 가쁘게 달려온 석 달 열흘이었다. 취임식부터 파격을 보였던 문 대통령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낸 각종 정책은 또 한번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비정규직 제로화, 건강보험 혜택 확대, 모든 학교에 미세먼지측정기 설치 등은 각각 공항, 병원, 학교 현장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다.

파격 행보는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았고 지지율 또한 70%대를 계속 유지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정가에선 “대통령에 가려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임금이 온갖 정사(政事)를 친히 보살핀다는 의미의 ‘만기친람(萬機親覽)’이란 단어까지 등장했다.

국무총리 이낙연의 이름은 매스컴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가끔씩 등장하는 이 총리의 모습은 공장, 저수지, 전통마을, 호우피해 현장 등에서였다. 문 대통령이 대선 때 약속한 ‘책임총리’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국무총리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해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는 국정의 권한과 책임을 국무총리가 실질적으로 분담하게 해 총리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책임총리제다.

문 대통령은 공약에서는 물론 선거기간 수차례, 심지어 이 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도 책임총리를 구현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일상적인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책임총리를 비롯한 내각이 담당하고, 총리와 장관이 하나의 팀으로 공동책임을 지도록 하는 ‘연대책임제’를 구현하겠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복안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31일 이 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도 “헌법상 총리의 권한을 보장하겠다. 일상적 국정은 총리의 책임이라는 각오로 전념해 달라”며 책임총리의 역할을 주문했다. 이 총리에게 내치에 관한 실질적 권한을 주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이에 총리 역시 같은 날 정부서울청사로 첫 출근하면서 “민생 문제는 제가 최종적으로 권한을 가진 책임자라는 마음가짐으로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책임총리’란 단어는 이후 찾을 수 없다. 문 대통령 취임 후 시작된 인사정국부터 이 총리의 존재는 없었다. 심지어 총리실 내부 인사조차도 총리가 아닌 청와대가 좌지우지한다는 뒷말까지 나왔다.

정책 이슈에서도 총리실은 뒷전이 됐다. 사드 환경영향평가와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영구중단 논란은 물론, 급기야 증세 문제에서는 “법인세 증세는 현 단계에서 생각하지 않고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이 총리의 기존입장과 배치되는 정책이 당(黨)·청(靑) 주도로 이뤄졌다. 당·정(政)·청에서 정부의 의견은 무시된 셈이다.

이러다 보니 이 총리는 민생 현장만 열심히 돌고 있다. 언뜻 보면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역할이 바뀐 것 같은 착각도 든다. 장관들도 마찬가지다. 일부 부처 장관은 행사 참석 장관 역할로 전락한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가 너무 강하다 보니 국회의 역할도 보이지 않는다고들 한다.

대통령이 먼저 결론을 내리고 정부가 따라가는 식의 정책 결정은 실패한 박근혜정부와 다를 것이 없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챙기고 청와대가 이슈를 선점하는 것은 불통이다. 소통이 없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시키는 대로 해) 식의 정책은 화를 부르는 단초가 된다. 이미 우린 탄핵정국에서 경험한 바 있다.

이 총리는 지난 9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책임총리가 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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