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반갑다 가을아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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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6   |  발행일 2017-08-16 제31면   |  수정 2017-08-16

안 덥다. 덥지 않아서 좋다. 특히 밤에 더워서 잠 못 이루는 일이 없어져서 좋다. 새벽에 덥고 답답해 비몽사몽 중에 목에 고인 땀을 훔쳐내던 게 몇 번이던가. 선선한 날씨가 절기(節期) 덕인지 연일 이어지는 강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덥지 않은 것만 황감하다. 이 시기에 낮 최고 기온이 30℃를 밑도는 날이 연속되는 데는 절기와 비, 두 가지가 함께 작용하는 덕분일 것이다.

절기는 황도(黃道·태양이 1년 동안 하늘을 한 바퀴 도는 길)를 15도씩 분할,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 지방의 기상 상태에 맞춰 붙인 이름이다. 360도를 15도로 나누니 24절기가 되고, 양력으로 매월 4~8일 사이와 19~23일 사이에 절기가 생긴다. 햇빛이 지표면에 떨어지는 각도에 따라 단위 면적당 전달되는 열에너지가 다르다. 그러니 절기의 이름이 신비한 힘을 갖고 있을 리 없다. 그저 태양 빛의 각도에 따라 계절이 바뀌는 것을 나타낼 뿐.

그럼에도 절기라는 날이 닥치면 바로 날씨가 변하는 데는 경외감이 느껴진다. 비와의 합작에 의한 우연일지라도 삼복더위를 단번에 무력화시킨 입추가 신기하다. 입추보다 4일이나 늦게 찾아온 말복은 힘도 못 쓰고 지났다. 말복은 입추로부터 첫 번째 경일(庚日·10간 중 일곱 번째 천간인 경(庚) 자가 들어가는 날)이다. 그러니 하지를 기준점으로 하는 초복·중복과 달리 여름의 절기가 아닌 가을의 절기인 셈이다.

뜨거운 여름이 공포스러운 것은 혹독한 더위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여름은 그 전해보다 더웠고 이번 여름은 지난해보다 더 더웠다. 이렇게 매년 폭염기록을 갈아치우는 데서 불안을 느끼게 된다. 현 시대를 간빙기(間氷期) 중 기온이 올라가는 시기라고 규정하는 학자들의 주장에 동의하더라도 안심이 안된다.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에 의한 것이든, 빙기(氷期)와 빙기 사이에 기온이 올라가는 현상이든 너무 빠르다. 뜨거운 햇볕이 아스팔트 위에 작열할 때는 지구가 이대로 계속 데워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미망에 빠지기도 한다. 근년과 같은 속도로 지구가 데워지면 언제까지 우리가 견뎌낼 수 있을까?

더위가 한풀 꺾이니 나뭇잎의 색깔도 달라 보인다. 짙푸른 색이 좀 바랜 것 같다. 어느새 길게 솟아 오른 벼 이삭도 고개가 무거운 양 땅을 바라보려 한다. 착각일지 몰라도 반갑다, 가을아.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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