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문경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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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8   |  발행일 2017-08-18 제37면   |  수정 2017-08-18
옛 선비들처럼…흙길 타박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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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과거길의 입구에 해당하는 주흘관과 포곡식 성벽의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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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경상감사의 인수인계식이 이루어진 교귀정과 신비의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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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재에 있는 영남대로 옛 과거길의 아름다운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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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재길에 있는 인위적인 풍수비보 조산의 모습.

문경은 ‘신석호 고장’이다. 신씨 성이, 돌이, 호랑이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옛 이야기가 되고, 한국관광 100선에서 1위를 차지한 문경새재가 랜드마크가 됐다. 문경새재는 역사도 전설도 많다. 백두대간 마루를 넘는 이 고개는 조선시대 영남과 한양을 잇는 영남대로였다. 모든 문물의 교류지이며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새재라는 말에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억새가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우릿재(이화령) 사이의 고개’ ‘새로 만든 고개’라는 뜻이 담겨 있다. 조선팔도 고갯길의 대명사로 불리며, 한양 과거길을 오르내리던 선비들의 청운의 꿈, 그리고 백성의 피와 땀, 숱한 전설과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 남아 있는 곳이다. 조선 태종 때 이 고갯길이 열렸고, 1594년 선조 때 제2관문(조곡관)을 설치했고, 1708년 숙종 때 제1관문(주흘관)과 제3관문(조령관)을 만들어 군사적 요새로서 역할을 하게 됐다.

새재 초입에 해당하는 하초리를 지나면 열녀비인 일심각이 보인다. 이 비각은 문경의 정절을 상징한다. 때는 조선시대, 비각이 서 있는 이 자리 부근 어딘가에 홀로 사는 노총각과 젊은 부부 두 집이 아래위로 이웃해 살았다. 아랫집의 노총각은 지독한 가난뱅이였다. 윗집은 부자였고, 그 부인은 아주 미인이었다. 재물과 여자가 탐난 노총각은 친구인 윗집 남자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어느 날 산약을 캐러 가자고 유인했다. 둘은 새재 깊숙한 골짜기에 들어갔는데 큰 바위 밑에 있는 산삼을 캐려고 엎드렸을 때 노총각은 미리 준비해 둔 바위를 굴려 윗집 남자를 눌러 죽였다. 그때 흘러내리던 붉은 피는 석양에 반사돼 더 붉게 보였다. 노총각은 태연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해가 바뀌어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윗집 부인은 노총각의 계략에 넘어가 그와 같이 살게 됐고 세 아이까지 낳았다. 어느 해 여름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었다. 마당에 빗물이 콸콸 흘렀다. 이때 점심을 먹다 말고 남자가 미친 듯이 껄껄 웃었다. 이를 괴이하게 여긴 부인이 남자에게 다그쳐 물었다. 남자가 부인에게 옛 이야기를 실토했다. 예전에 산약 캐러 가서 전 남편을 바위로 눌러 죽일 때 쏟아지던 피가 지금 마당에 콸콸 흘러가는 저 빗물과 같아 웃었다고 했다. 남자에게 속은 것을 안 부인은 부엌의 식칼로 악인인 남편을 죽이고, 악의 피라고 해 세 아이까지 죽였다. 그리고 자살했다. 이 사실을 관청에서 알고 열녀비를 세웠다. 하초마을 뒷산에 열녀 윤소사(尹召史)의 무덤 자리가 있었다는 소밭등이 있다. 전 남편이 죽었다는 장소인 응기뜽이라는 서들(돌무더기 언덕)도 주흘산 쪽에 있다. 참으로 처참한 전설이다. 그러나 전설은 우리의 참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 속에서 끝없이 싸우는 욕망과 이성의 갈등이 잘 드러난 전설이다.


조선때 영남∼한양 잇는 영남대로 관문
제1관문인 주흘관과 천년 고찰 혜국사
제2관문인 조곡관과 조령원터·교귀정
발걸음마다 역사·경관 어우러진 명소


◆영남대로를 걷다

제1관문 가기 전, 아리랑 비와 옛길 보존비 그리고 옛길 박물관에 들른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 구부야 눈물이로구나.” 세마치장단 진도아리랑을 나직이 불러본다. “사람이 살면은 몇 백 년을 사나 개똥 같은 세상이나마 둥굴둥굴 사세, 세월이 흐르기는 시냇물 같고 인생이 늙기는 바람결 같네.” 소박하고 흥취 있는 가락이다. 진도아리랑 첫 소절에 나오는 새재, 그만큼 애환이 서린 곳이다. 이럭저럭 제1관문 주흘관을 지난다. 우측에 타임캡슐 광장이 눈에 띄어 다가간다. 1996년 경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앞으로 400년 후, 500주년이 되는 해인 2396년 10월23일에 개봉해 후손들에게 현재 경북인의 생활 풍습·문화 등 삶의 표본을 보여주고자 100품목 475종의 생필품을 분류 선정해 첨성대형 캡슐에 담아 영남제일문인 주흘관 뒤 지하 6m에 매설했다.

주흘산 방향으로 혜국사 가는 이정표가 있다. 주흘산 중턱에 자리 잡은 이 절은 신라 문성왕 8년에 창건됐다. 비경인 여궁폭포를 지나 도착하는 이 절은 탈속의 고승 같은 청정한 화첩의 경치다. 그리고 고려 말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공민왕이 주흘산으로 몽진해 이곳 위에 있는 지금의 대궐터에 임시 행궁을 지어 머물렀는데, 당시 혜국사는 이런 상황에서 나라의 은혜를 입게 돼 혜국사로 부른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 후 문경새재를 넘나드는 유생, 봇짐장수 등 민생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이름난 기도처가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새재는 전략적인 요충지였으므로 서산·사명·영규 등 승장들이 이곳에 머물러 절 이름이 더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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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순한글비석 ‘산불됴심비’.

◆제1관문에서 제2관문까지 트레킹

제1관문에서 제3관문까지의 새재길은 지압보도이므로 여기서부터 맨발로 걷는다. 맨발로 걸으면 원시의 본능이 살아난다. 자연과 하나가 되고, 문명은 큰 재앙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혈액순환 촉진, 면역기능 강화, 피로 회복, 뭉친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풍수지리적으로 취약한 지점을 보강하는 조산 앞을 지난다.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촬영세트장인 등룡정을 둘러본다. 이순신의 장인이자 스승이고 당대 최고의 강궁이었던 방진이 후학을 양성한 곳, 당시 류성룡과 원균이 함께 무술을 익힌 곳으로 소개됐다. 조령원터도 관람한다. 조선시대 출장 중인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한 장소다. 무주암도 본다. 누구든지 올라가 쉬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바위다. 영남대로 옛 과거길로 걸어본다. 마당바위도 지난다. 타원형의 이 바위는 아름답지만 옛날에는 도적들이 숨어서 행인들의 봇짐을 털어가기도 한 곳이라고 한다. 상처난 소나무를 관찰한다. 일제 말기에 자원이 부족한 일본이 에너지원으로 소나무의 송진을 채취한 자국이 있다.

주막이 나타난다. 선조들이 새재를 넘다가 노독에 지친 몸을 한 잔 술로 풀면서 서로의 정분을 나누며 쉬어가던 곳이다. 조금 더 지나 새재를 넘어 ‘시골집에 묵다’는 옛 시를 새긴 바위를 본다. 여기서부터 문경 시목(市木)인 물박달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조선시대 새로온 경상감사와 전임 경상감사가 업무를 인수인계하며 관인을 주고받던 교귀정도 들른다. 드라마 ‘왕건’의 촬영지로 경관이 수려한 용추도 지난다. 꾸구리 바위, 소원 성취 탑, 조령 산불됴심비도 살펴본다. 조선조의 한글 비석은 4점이나 새재 산불됴심비를 제외하고 모두 국한문 혼용이라서 이 비석은 순수한 우리나라 한글비로 유일한 것이다.

드디어 제2관문 조곡관에 도착한다. 난공불락의 요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부장 김여물 장군의 조령에 진을 치자는 전략을 듣지 않고 충주 달천에 배수진을 쳐 크게 패했다. 그리고 광해군 때 강변 칠우의 한 사람인 서양갑 무리의 반란 모의 사건과 조선조 말 이필제 민란 거사가 실패한 곳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문경새재는 설화와 전설이 너무나 많다. 이번 트레킹은 여기까지고, 이제 되돌아가는 길만 남았다. 저 고개 마루까지 가서 고개를 넘지 못하고 흰 구름 푸른 하늘이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밤하늘을 수놓는 별이 되어 밤마다 별똥별을 이야기처럼 쏟아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좀 더 높은 자리, 남보다 뛰어난 명예와 재물, 그까짓 것이 다 무엇인가. 다 부질없는 뜬 구름 아닐까. 이제 맨발로 흙을 밟으며 돌아간다.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흙의 아들이다.

글=김찬일<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대구힐링트레킹 사무국장>


☞ 여행정보


▶트레킹코스: 옛길 보존비·아리랑 비-옛길 박물관-제1관문(주흘관)-타임캡슐광장-영남대로-조령원터-마당바위-주막-교귀정-산불됴심비-조곡폭포-제2관문(조곡관)-원점 회귀


▶내비게이션 주소: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932


▶주위 볼거리: 진남교반, 토끼비리, 고모산성, 진남터널, 철로자전거, 문경 석탄박물관, 운강 이강년기념관 및 선유동 계곡, 불정자연휴양림, 문경도자기박물관, 주흘요, 장수황씨종택 호산춘(가양주), 문경 대하리 소나무, 경천호, 문경관광 사격장 및 집라인, 운달계곡 대승사·김용사, 쌍룡계곡 심원사


▶문의: 문경새재관리사무소 (054)57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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