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그림편지] 양향옥 作 ‘You resemble a rose’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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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8   |  발행일 2017-08-18 제40면   |  수정 2017-08-18
한지를 겹겹이 겹치고 분채한, 어머니에게 보내는 고운 그림편지
[김수영의 그림편지] 양향옥 作 ‘You resemble a rose’
[김수영의 그림편지] 양향옥 作 ‘You resemble a rose’

혹시 2002년 개봉된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 ‘디 아더스’를 보셨는지요. 이 영화를 본 분 상당수는 영화에서 반전(反轉)이 주는 그 섬뜩한 아이디어와 가슴 아린 모성애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 많은 영화를 보지 않아서인지 저는 이 영화를 반전영화의 으뜸으로 꼽습니다. 반전의 묘미에 진한 모성이 곁들여져 가슴 찡한 여운을 남기지요.

화가들을 만나다 보면 가끔 이런 반전의 순간을 느낍니다. 그 대표 작가를 꼽으라면 저는 양향옥 화가를 꼽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처럼 저는 양 작가보다 그의 작품을 먼저 만났습니다. 그의 작품은 한지를 겹겹이 겹침으로써 우러나오는 묘한 색상들의 조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화사한 듯하면서도 은은함을 주는 색상과 한지라는 소재가 갖는 특성 때문인지 저는 그의 작품을 보고는 무의식 중에 양향옥이라는 작가를 한국적, 즉 전통적 멋이 풍기는 여성이라는 생각을 가졌나 봅니다. 그런데 전시장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고는 작품과 너무나 다른 이미지에 내심 놀랐으니까요.

몇년 전 처음 마주한 그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즘 젊은 남성들이 즐겨 하는 투블럭 헤어스타일에 바닷빛보다 더 진한 남색 옷을 입고 있었지요. 특히 헤어스타일이 시선을 멈추게 했는데 긴 머리가 3㎝도 안 될 정도로 짧았고 짧은 머리는 거의 삭발을 한 것에 가까웠습니다. 화장을 별로 하지 않았는데도 하얀 피부에 걸친 남색 옷 또한 강렬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제가 봐온 전통적 한국의 여인상은 아니었지요. 아주 세련된 현대 여성의 모습이었습니다.

대화를 나눠보니 그의 의식 역시 반전이었습니다. 범상치 않은 외모라서 나이를 묻자 웃으며 밝히지 않았습니다. “예술가는 나이가 없잖아요.” 나이를 알려주면 보는 이에게 선입견을 주고 자신 역시도 사고의 틀이 좁아지기 때문에 나이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그의 작품을 설명 없이 보면 오묘한 색의 합주쯤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제작방식을 알고 나면 더 새롭게 다가오는 것도 그가 만든 매력입니다. 그의 작품은 노동집약적 작업과정을 거칩니다. 큰 화면에 한지를 붙인 뒤 색을 입히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됩니다. 색깔은 돌가루로 만든 분채로 냅니다. 얼마나 많은 한지를 붙이는지 궁금해 물으니 작가 스스로도 잘 모를 정도라고 합니다. 한지를 붙인 뒤 색을 입히는 반복된 과정 속에서 화려했던 색깔들은 제 빛깔을 잃고 다른 색들과의 화합을 일궈냅니다. 강한 것들이 모여 부딪치고 겹쳐지는 과정을 통해 부드러운 것이 탄생하는 것이 마치 모난 돌이 세상 풍파를 겪으면서 둥근 돌이 되어가는 과정을 닮은 듯합니다. 인간의 삶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는 여러 작품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는데 매일 작업실의 문을 열었을 때 첫눈에 들어오는 캔버스에 작업을 해 나간답니다. 마치 작품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달라고 자신을 부르는 착각에 빠져 그 작품에 몰입합니다. 그래서 그는 작업을 생명 탄생의 과정이라 합니다.

양 작가는 작업을 하면서 10여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인터뷰하는 날도 어머니라는 단어를 읊조리기도 전에 눈가에 눈물부터 고입니다. “무척 보고 싶어서 그리움을 작품에 쏟아내고 있다”는 말을 눈물 섞인 언어로 전합니다.

“딸까지 낳고 뒤늦게 그림공부를 하는 저를 위해 늘 애를 봐주셨다. 막내라서 엄마 사랑을 특히 많이 받고 자랐는데 그만큼 그리움도 크다”며 어머니를 그는 눈물로 되살려냅니다. 그의 눈물 속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가득 고여있습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그는 자신만 보던 삶의 시야가 넓어졌다고 합니다. 주위를 살피게 되고 자신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는 말도 전합니다. 그의 작품이 마치 어머니에게 보내는 고운 그림편지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들리지 않는 사모곡이 왠지 보는 이의 가슴에 울려퍼집니다.

“세상에는 늘 빛과 그림자가 있지요. 빛이 있어 그림자가 자리하고 그림자가 있어 빛이 더욱 환해집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이것을 제게 알려주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주말섹션부장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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