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영화 ‘장산범’ 희연役 염정아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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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8   |  발행일 2017-08-18 제43면   |  수정 2017-08-18
“모성애에 끌려 출연…시나리오 보고 많이 울었다”
20170818

배우 염정아는 이목구비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다. 차가울 것 같단 선입견이 인터뷰를 시작하기도 전 깨진 것은 애교. 스스로를 ‘동탄댁’이라고 밝히며 호탕하게 수다를 이어가는가 하면, 개봉 후에도 계속된다는 홍보 일정에 “우리 애들이랑 놀아야 하는데”라는 귀여운 투정을 부린다. 절친 문정희가 염정아를 일컬어 ‘엄청난 인격체의 소유자’라고 말한 것은 괜히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1991년 미스코리아 선으로 데뷔한 그는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서구적인 외모로 섹시함과 함께 어딘가 묘하게 신비로움을 풍겼다. 데뷔 후 여러 작품에서 호연을 펼쳤지만 그가 배우로서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알린 건 2003년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부터다. ‘범죄의 재구성’(감독 최동훈)에서는 팜므파탈 사기꾼, ‘카트’(감독 부지영)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간첩’(감독 우민호)에서는 생계형 남파간첩 등 장르를 불문하고 독보적인 연기력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구축하고 있는 염정아. 그 중에서도 관객들의 뇌리를 사로잡은 역할은 바로 2003년 ‘장화, 홍련’의 새엄마 역이다. 이 캐릭터를 통해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기억되고 있다.


허정 감독 “염정아 상상하며 쓴 시나리오”
‘장화, 홍련’ 이후 14년 만에 스릴러 출연
남편役 박혁권·아역 신린아와 연기호흡

“장산범서 ‘스릴러+모성애’ 연기 소화
배우이기 이전에 엄마였기에 가능한 일
시사회 때도 내 연기 보면서 내가 울어”



염정아는 영화 ‘장산범’(감독 허정)으로 오랜만에 스릴러 장르로 돌아왔다. ‘장산범’은 목소리를 흉내내 사람을 홀린다는 장산범을 둘러싸고 한 가족에게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올 여름 극장가 유일한 스릴러로 주목받고 있다. 염정아, 박혁권, 신린아, 허진이 출연했다.

염정아가 연기한 주인공 희연은 숲 속에서 자신의 딸과 목소리가 똑같은 소녀를 만나 알 수 없는 사건을 마주하며 불안해하는 인물이다. 실제 아이를 두고 있는 엄마이기도 한 염정아는 가족을 지켜내야 하는 초조하고 슬픈 감정부터 알 수 없는 사건에 휘말려 불안해하는 감정까지 탁월하게 표현해 내며 극에 팽팽한 완성도를 불어넣었다. 허정 감독이 “염정아는 예민하고 불안한 감정은 물론 정반대의 따뜻한 모성애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작업하면서부터 그를 상상하고 썼다”고 밝혔을 만큼, 염정아 없는 ‘장산범’은 상상하기 힘들다.

집에 돌아오면 여배우 염정아가 아닌, 평범한 동탄댁이 된다는 그는 스스로에 대해 “아주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는 엄마, 아내”라고 설명했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따뜻하게 차오르는 게 바로 가족. 그가 ‘장산범’ 시나리오를 읽고 몇 번이나 오열했던 것도, 스릴러와 모성애 두 마리 토끼를 완벽하게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배우이기 이전에 엄마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소름끼치게 무섭고도 슬픈 영화 ‘장산범’의 염정아를 만났다.

▶모성애 코드가 작품 선택에 큰 영향을 끼쳤나요?

“일단, 감독님의 전작 ‘숨바꼭질’을 재밌게 봤습니다. 그 영화 보고 한동안 집 문단속을 철저히 했죠.(웃음) 제작자 김미희 대표님과도 워낙 친하고요. ‘장산범’이라는 영화가 있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장산범’ 시나리오가 지닌 모성애에 많이 끌렸던 것도 사실이고요. 희연은 여러 가지 마음이 들 거예요. 아들을 잃어버린 게 본인 탓일 수도, 어머니 탓일 수도 있어 죄책감 때문에 괴로움 속에 살았겠죠. 아이를 더 이상 찾지 않는 남편이 미울 수도 있고요. 어디에도 기대지 못해 정신적으로 굉장히 나약한 상황이잖아요. 그 상황에 만난 여자애(신린아)를 보며 홀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 아이에게서 아들을 보는 거죠.”

▶촬영 후 감정적 후유증이 컸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희연의 마지막 선택이 주는 감정이 남아 있었어요. 시나리오를 읽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시사회 때도 제가 제 연기를 보면서 울었다니까요.(웃음) 그만큼 희연의 감정이 와 닿았어요.”

▶아이를 구하려는 모습에서 세월호 참사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한참 말을 잇지 못하더니)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사실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해석입니다.”

▶어찌 보면 열린 결말이에요. 감독이 속편에 대해 귀띔해준 게 있습니까.

“열린 결말로 볼 수 있죠. 이번 작품이 흥행하면 시리즈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직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오간 건 없습니다.”

▶공포영화 장르 안에서 모성애를 보여줘야 했습니다. 균형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을 것 같아요.

“감독님께선 듣기 좋은 칭찬으로 하신 이야기겠지만, 모성애와 스릴러를 같이 표현할 수 있는 배우로 저를 떠올리셨다고.(웃음) 처음부터 공포와 모성애 둘 다 염두에 둔 영화였죠.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연기했죠. 저는 우리 영화가 다른 공포영화와 다른 점이 바로 이 모성애라고 생각해요. 여운이 짙잖아요.”

▶‘장화, 홍련’ 이후 14년 만에 스릴러 장르로 돌아왔습니다.

“저를 대표하는 장르가 어쩌다 보니 스릴러가 됐네요. 책임감이나 부담감은 없어요. 다만, 신기하긴 해요. 14년 전에 딱 한 편 찍은 영화 하나가 이토록 오랫동안 각인될 수 있다는 게요. 유독 ‘장화, 홍련’의 이미지가 강한 건, 김지운 감독님이 영화를 정말 잘 만들었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저를 진짜 극중의 은주처럼 만들어줬잖아요.”

▶남편 역으로 호흡을 맞춘 박혁권과는 어땠나요.

“사실 최근에 친해졌어요. 영화 홍보하면서.(웃음) 촬영 자체도 각각 혼자 연기하는 촬영이 많았잖아요. 같이 나오는 장면에서도 감정적, 신체적으로도 너무 힘든 순간들이라 웃고 떠들 여유가 없었습니다. 공기도 안 좋고, 여러모로 열악한 상황이라 나중엔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였습니다.”

▶아역배우 신린아의 연기는 가히 압권이었습니다. 호흡은 어땠나요.

“아역이 아니라, 우리랑 똑같은 배우였어요. 쉬는 시간에 아기처럼 장난치는 것 말고는, 그냥 배우였어요. 감독님의 디렉션도 따로 설명할 필요 없이 바로 알아듣고 연기하더라고요. 린아 때문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거나 지체된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정말 깔끔하게 연기를 잘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동굴이 주는 공포감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정말 말도 안되게 넓어요, 그 동굴이. 또 어찌나 깜깜하던지. 박쥐도 있더라니까요. 여름에도 추울 정도였어요. 동굴 촬영이 시작되면서부터 체력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액션 아닌 액션 연기도 해야 했고, 눈이 안 보이는 연기도 해야 했고, 감정도 쏟아부어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이준혁은 ‘장산범’의 히든카드였습니다. 관객들이 괴성을 지를 정도로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는데요.

“함께 촬영하는 저희도 무서웠습니다. 알면서도 무서웠으니 관객분들이 놀라실 만하죠. 이준혁씨가 그런 분장(?)을 하고 갑자기 튀어나올 땐 정말이지, 어휴….”

▶데뷔 초에는 화려한 이미지가 강했지만, 어느 순간 배우로 자리 잡았습니다. 긴 세월 연예계 생활을 이어오며 어느 순간 가장 힘들었나요.

“20대 때는 뭘 어떻게 하는 게 잘하는 건지 몰랐어요. 막연히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연기가 뭔지, 영화가 뭔지. 아마도 ‘장화, 홍련’이 계기였던 것 같아요. ‘이런 게 바로 연기구나. 배우가 캐릭터를 갖고 놀 수 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죠.”

▶얼마 전 정우성 소속사인 ‘아티스트 컴퍼니’로 이적했습니다.

“대표님(정우성)이 엄청나게 든든해요. 응원도 많이 해주시고. 얼마 전에 제가 아티스트컴퍼니 여배우들만 따로 모아서 밥 먹고, 한잔 했죠.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는데, 좋았어요. 후배들에게 최대한 많은 작품을 해보라고 조언도 해줬고요. 사실 요새 남자배우 영화는 많은데 여자 영화는 적잖아요. 남자 배우들은 차기작으로 2~3개씩 정해져 있는데 여자들은 쉽지 않죠. 안타까운 현실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최대한 기회가 있을 때 많이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스릴러 장르 외에 가장 자신 있는 분야가 있다면?

“자신 있는 건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건 있어요. 코미디 연기할 때 정말 즐거웠습니다. 좋아하기도 하고, 제 실제 성격과도 잘 맞았죠. 예전엔 제가 액션을 잘하는 줄 알고 액션 영화 제안이 정말 많이 들어왔는데, 전 사실 잘 뛰지도 못하거든요. 차기작으로 또 스릴러가 들어온다면? 안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작품만 좋다면요.”

▶얼마 전 김우빈의 암 투병으로 영화 ‘도청’의 촬영이 잠정 중단됐습니다.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상황이죠. 일단은 다들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촬영 준비기간에 중단된 거라, 김우빈씨를 따로 만난 적은 없어요.”

▶가정에서는 어떤 엄마인가요

“남편도 워낙 가정적이라 가족끼리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집에 있으면 정말 바빠요. 아이들과 키즈카페도 가고. 사실, 배우로서 고민이나 슬럼프가 크진 않아요. 가정 안에서도 정말 바쁘거든요. 아이들 학원 데려다 줘야지, 마트에 장도 보러 가야지. 할 일이 얼마나 많다고요. 물론 예전엔 촬영장 나와서 집 생각에 힘들고, 집에 있으면 일하고 싶은 생각에 우울했죠. 이젠 그런 고민이 배우 염정아나 엄마 염정아 어느 하나에도 도움이 안된단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가족이 모두 행복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거죠. 저한텐 가족이 제일 중요해요.”

글=TV리포트 김수정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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