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이것은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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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1 07:43  |  수정 2017-08-21 07:43  |  발행일 2017-08-21 제15면
[행복한 교육] 이것은 사랑일까

후배 교사의 이야기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이 자꾸 선생님 가방에 손을 댄다는 것이다. 잔뜩 움츠린 아이를 보면 직장에 다니는 것이 죄스러워 안고 달랬던 것이 전학을 가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유치원 시기는 선생님의 예쁜 가방에 호기심이 발동해 뒤지기도 한다지만 초등학생 정도면 남의 물건을 몰래 가져오는 것이 나쁜 행동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 나이다. 그런데도 후배는 직장 때문에 잘 돌보지 못했던 자기 탓이라고 울었다. 잘못을 저질러 눈치를 보는 딸의 모습에서, 어머니가 새벽부터 일을 나가 초등학교 때부터 밥을 지어 먹고 혼자 숙제하고 학교에 다녔던 자신의 어릴 때가 떠올라 따끔하게 혼을 내지 못한 것이다.

몇 년 전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국 로맨틱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과거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중요한 삶의 순간으로 되돌아가 다시 살아보는 영화였다. 누구나 한 번씩 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는데, 그 점을 모티브로 일상의 행복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영화관을 나오는데 남편이 생각에 잠기더니 “우리 아이가 5학년 때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 그때부터 둘 다 학교 일로 바빠져 아이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후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전한답시고 청년이 된 아들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아들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아버지는 제가 많이 아쉬운가 봐요. 저는 제 나름대로 잘 컸다고 생각하는데….”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실제로 많은 부모가 주체적으로 살아갈 소중한 자녀의 삶을 일일이 관여하고 결정하면서 진정으로 사랑하고 헌신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중학생 아들의 방과후학교 수강도 부모가 정하고 휴일 친구를 만나는 것도, 자유학기제 주제 선택 수업도, 방학 중 학교 도서관에서 책 읽는 시간도 엄마가 정한다. 학교에 찾아와 담임에게 항의하는 엄마 중에는 “걔가 이렇게 했을 때 네 기분이 이랬지?” “그리고 이런 생각까지 들었지?” “그래서 이렇게 행동한 거지?” 별 생각 없는 아들은 엄마의 채근하는 말투와 자세한 상황극으로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그 현장에 같이 있지도 않았던 어머니의 추정으로 생각과 감정이 리셋되는 것을 본다.

부모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한 가정 내에서 엄청난 폭력이 가해지는 셈이다. 가히 폭력적인 사랑이다. 기질이 약한 아이는 무기력해지고 기센 아이는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으며 어깃장을 놓는다. 행복하지 않은 우리 아이들, 자녀 키우기가 버거운 부모가 아름답고 소중한 시절이 다 흘러간 후에 ‘어바웃 타임’을 떠올리는 것이다. 7월 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크레이그 톰슨은 그래픽노블이라는 장르의 천재적인 만화 작가다. 가정과 학교에서 숨 막혔던 한 소년의 서늘한 성장통을 그린 자전적 이야기 ‘담요’를 쓴 톰슨은 학교 부적응으로 소심해진 아이들은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말고 넓은 세상에서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부모와 학교의 단선적인 시선이 아닌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만남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알아가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또한 부모는 아이의 일상을 관리하는 삶이 아니라 부모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분명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보다 더 기적이며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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