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기록과 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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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1 07:47  |  수정 2017-08-21 07:47  |  발행일 2017-08-21 제18면
[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기록과 각인

‘10월 14일 맑음, 새벽 두시 경에 꿈을 꾸니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로 가는데 말이 실족하여 냇물 속으로 떨어졌으나 쓰러지지는 않고, 막내아들 면이 끌어안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을 꿈꾸다가 깨었으니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늦게 조방장과 우후 이의득이 보러 오다. 배(裵)의 종이 경상도에서 와서 적의 정세를 전하다. 황득중들이 와서 보고하기를 내수사의 종 강막지라는 자가 소를 많이 치기 때문에 12마리를 끌어간 것이라 한다. 저녁에 사람이 천안으로부터 와서 집안의 편지를 전하는데 봉한 것을 뜯기도 전에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혼란하다. 겨우 겉봉을 뜯고 차남 열의 편지를 보니 겉에 통곡(痛哭) 두 자가 씌어 있어 면이 전사한 줄 알았다. 낙담상혼(落膽喪魂)하여 실성통곡(失聲痛哭)함을 깨닫지 못하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 한고!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은 이치의 마땅함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사니 이런 어그러진 이치가 어디 있느뇨! 천지가 깜깜하고 햇빛이 안 보이네. 슬프다, 내 아들아! 날 버리고 어디 갔니? 남달리 영특하여 하늘이 시기함인가? 내 지은 죄가 네 몸에 미침인가? 이제 내 세상에 살아 있으나 누구에게 의지할고? 너를 따라 같이 죽어,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건마는 네 형, 네 누이, 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아직은 참고 연명이야 한다마는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아 울부짖는다. 통곡, 통곡하노라. 하룻밤 지내기가 1년 같구나. 밤 9시경에 비가 오다.

10월 15일 종일 비바람이 치다. 누웠다 앉았다 하며 종일 뒹굴다. 여러 장수들이 위문 오니, 어찌 얼굴을 들고 대하랴. 임홍, 임중형, 박신 등이 적정을 탐정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타고 홍양, 순천 등지의 바다로 나가다.

10월 16일 맑음, 우수사와 미조항 첨사를 해남으로 보내다. 해안 현감 유형도 보내다. 나는 내일이 막내아들의 죽음을 들은 지 나흘째 되는 날인데, 마음 놓고 통곡하지 못하므로 본영 안에 있는 강막지의 집으로 가다. 밤 열 시경에 순천 부사, 우후 이정충, 금갑도 만호, 제포 남호 등이 해남으로부터 돌아왔는데, 왜적 열세 명과 적에게 투항한 자 송만봉 등의 머리를 베어 오다.

10월 17일 맑음. 종일 센바람이 불다. 새벽에 흰 띠를 묶고 향을 피우고 통곡하다. 새벽에 아들의 복(服)을 입으니 비통함을 어찌 참으랴? 우수사가 와서 인사하다.

10월 18일 맑음. 바람도 자는 것 같다. 우수사는 배를 부릴 수 없어 바깥 바다에서 자다. 강막지가 보러 왔다. 임계형과 임준영이 들어오다. 자정에 꿈을 꾸다.

10월 19일 맑음. 새벽에 고향집의 종 진이 내려왔기에 죽은 아들을 생각하여 통곡하는 꿈을 꾸다. … 어둘 무렵에 코피를 되 남짓이나 흘리다. 밤에 앉아 생각하고 눈물지었다. 어찌 다 말하랴. 이제는 영령이라 불효가 여기까지 이를 줄 어찌 알았으랴. 비통한 마음이 가슴 찢어지는 듯하여 누를 길 없다.’(-이순신, ‘난중일기, 1597년 정유년’)

이순신의 난중일기 엿새 간의 기록입니다. 오백여 년이 지난 오늘 아침에도 그의 슬픔이 절절하게 제겐 와 닿습니다. 시공을 초월해 위로를 그에게 보냅니다.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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