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학교 이름’ 지을 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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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2   |  발행일 2017-08-22 제30면   |  수정 2017-08-22
신설 경북도청 신도시내 고교
교명 ‘경북제일고’로 결정 후
‘영주제일고’ 반발로 재논의
과학적 근거 유무 상관없이
‘인재육성’도민의 염원 담은
좋은 학교이름 짓기를 기대
[3040칼럼] ‘학교 이름’ 지을 땐

이 학교의 ‘이름 짓기’가 쉽지 않네요. 내년 3월 경북도청 신도시에 문을 여는 고등학교입니다. 이 학교는 그동안 알려진 대로 교명을 짓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었지요. 그러다 경북도교육청이 지난달 교명선정위원회를 열었습니다. ‘경북제일고등학교’로 결정했습니다. ‘경북 새 천년을 이끌 인재 육성과 명문고 설립에 대한 도민의 염원을 담은 교명’이라 설명했습니다. 마무리됐다 싶었지요. 그런데 뜻밖에 ‘영주제일고등학교’ 총동창회가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총동창회는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경북제일고등학교 교명사용 변경요청서’를 경북도교육청에 제출했습니다. ‘경북제일고등학교’ 때문에 ‘영주제일고등학교’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경북제일고등학교 교명 사용반대’ 서명운동에 들어가는 등 ‘교명 변경’ 관철을 위해 이 학교 동문들은 물론 영주지역 각 사회단체 및 정치권과 힘을 모아 적극 나서겠다고 했지요. 안되면 ‘영주제일고’를 ‘한국제일고’로 아예 교명을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도교육청에서는 “영주와 경북으로 지명을 다르게 사용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는데…”라며 난처해 하다가 최근에 “재심의를 거쳐 적정한 교명을 다시 선정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각급 학교 이름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영주나 경북처럼 그 지역 명칭을 딴 학교가 흔하지요. ‘○○동’에 있으면 ‘○○초등학교’, ‘△△군’에 있으면 ‘△△중학교’, ‘□□시’에 있으면 ‘□□고등학교’…. 이렇듯 지명을 딴 학교 이름들 가운데는 간혹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사례들이 나옵니다. ‘대변초등학교’라는, 부르기도 듣기도 좀 민망한 이름으로 소문난 학교가 있지요. 부산시 기장군 ‘대변리’라는 지역 명칭을 딴 교명입니다. 이 학교 본관 앞에는 ‘푸른 꿈을 가꾸는 대변 어린이’라는 슬로건이 크게 걸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 학교를 6년 동안 다녀야 하는 어린 학생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래서 이 학교는 개교 반세기 만에 교명 변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즐거운 야동어린이…어디서나 떳떳한 야동어린이…’ 충북 청주시 야동에 있는 ‘야동초등학교’ 교가입니다. 전남 영광군 백수읍에 가면 ‘백수중학교’도 있지요.

그런가 하면 가끔씩은 잘 지었다 싶은 교명들도 있습니다. 거창의 ‘샛별초등학교’ 같은 이름입니다. 이 학교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름값’을 하는 사학 명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이름만 들어도 이 학교엔 ‘샛별처럼 반짝이는 총명한 아이들’이 모여 있을 것이라고 느껴진다면 ‘오버’일까요.

예로부터 아기를 낳으면 작명가를 찾아갔습니다. 생년월일시 등 사주를 짚고 성명학이라는 기준(?)에 맞게 글자 획수까지 따져가면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름 짓는 게 이처럼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눈빛초롱초등학교’ ‘선한중학교’ ‘바른마음중학교’ ‘슬기로운고등학교’ ‘새천년고등학교’…. 이름이 좀 길면 어떻습니까. 이런 이름의 학교가 있다 가정하고, 그 학생들을 상상해봅니다. 이름처럼 항상 눈빛이 초롱초롱할 아이들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학업 성적은 몰라도 인성만큼은 늘 어질고 선할 것 같습니다. 또한 반듯하고 슬기롭게, 열정적으로 성장해 나갈 것 같지 않습니까. 적어도 이런 학교에선 학생이 선생님에게 난폭하게 대들거나, 교사가 제자에게 이상한 손버릇을 저지르는, 어처구니없는 일들로 신문에 나지는 않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경북제일고등학교’. 그동안 훌륭한 분들이 지혜를 모아 심사숙고 끝에 결정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네요. ‘이 나라의 미래를 희망으로 열어갈 인재 육성에 대한 도민의 염원’을 보다 뜨겁게 담은 이름을 다시 찾아내야만 하는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틀을 깨는 용기’와 ‘획기적 발상’이 기대됩니다. 이현경 (밝은사람들 기획제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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