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굿바이, 동네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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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2   |  발행일 2017-08-22 제31면   |  수정 2017-08-22
[CEO 칼럼] 굿바이, 동네가게?

우리 동네 미장원은 ‘오래가는’ 뽀글뽀글한 파마를 원하는 동네할매들 덕택에 가격이 저렴하다. 간판도 허접하고, 미용실 안의 시설도 새로운 것은 없지만, 그래도 항상 동네주민으로 북적인다. 머리의 취향을 구태여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라준다. 미용사의 역량이 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싼 것은 단골들의 집안팎 사정을 알아 가격을 올리기가 어려워서란다. 뜨내기 손님은 별로 없다고 한다. 손기술과 단골과의 관계, 저렴한 가격으로 버티는 가게다. 그 건너편의 카센터도 마찬가지다. 언제라도 차가 시원치 않으면 그냥 손봐준다. 이미 사고가 몇 번 난 적이 있는 내게는 단골정비사 아저씨다. 연세가 많아 설명과 계산이 아둔하긴 하지만, 40년 경력의 숙련기술로 자동차에 관한 한, 뭐든지 척척이다. 그 몇 집 건너 얼굴 시커먼 아저씨가 운영하는 고깃집도 참 인정많은 가게다. 가격이 마트에 비해 약간 비싸기는 하지만, 용도와 돈에 맞게 적당한 양으로 고기를 맞춤식으로 판다. 한가로운 날 아주머니는 가게 한편에 놓인 기타연습을 하고 아저씨는 가게앞의 화분과 동네 길냥이들 밥을 챙긴다.

도시를 도시답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오래된 동네가게의 존재감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수시로 필요로 하는 물건과 서비스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가게가 멀지 않은 동선안에 있다는 것은, 비상시에 부탁할 누군가가 주변에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오고가는 길에 단골을 만나고 노닥거릴 이웃을 본다는 것 역시 소소한 기쁨이다.

그런데 가게가 다시 비었다. 퇴근길에 이용하던 김밥집이 2년 만에 또 문을 닫았다. 최근 6개월동안 문방구 겸 서점이, 또 얼마 전엔 튀김집이, 그리고 과일가게가, 만두집이, 컴퓨터수리점이 폐업하고 이사했다. 고만고만한 슈퍼마켓도 계속 주인이 바뀐다. 새 주인, 새 이웃은 얼마나 버틸까.

빈 가게가 생길 때마다 가슴이 썰렁하다. ‘또 망했구나.’ 어디로 갔을까? 거기선 잘 버틸까? 한동안 회자되던 ‘동네빵집이 사라진다’는 얘기가 생각난다. 사람들의 소비패턴이 바뀌고, 동네가게가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해도, 동네가게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의 이웃인 동네 골목에서 보는 가게 사람들 99%가 재벌 1%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간다. 쇼핑몰이 생기면 작은 가게들이 없어진다. 고(故) 김기원 교수는 우리 사회 문제점을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이라고 정의하였다. 생계를 유지할 수단이 없어진다는 것처럼 비인간적인 것은 없다. 같이 사는 사람들이 ‘적당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결국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듯싶다.

이미 우리는 저성장사회로 진입하였다. 저성장이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한다면 경기가 언제 좋아질지 고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저성장이라는 시대를 수용하고 새로운 삶을, 생활방식을 고려해야 할 때이다. 이제 성장에서 성숙으로, 경쟁에서 공생으로 옮겨가야 한다. 1등을 밀어주는 것이 아닌, 상생의 시스템과 구조로 옮겨가야 한다.

나의 소비가 이웃의 수입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면 좋겠다. 자영업자들에게 골목상권은 무덤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우리가 생활하는 동네주변에서 우선적으로 발굴, 이용하면 좋겠다. 또한 지역에 애착을 가진, 더불어 골목이 살아나는 사회적 경제 기업들이 곳곳에 만들어지면 좋겠다. 생산자도 조직하고 소비자 관계망도 만들어져 ‘얼굴있는 관계’ 속에서 좋은 제품이 더 많이 생산, 유통, 판매되면 좋겠다.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인생이 너무 궁핍하거나 ‘꽝’이 되지 않도록 한발씩 움직여나가는 길에는 동네가게에 기울이는 관심이 그 시작일지 모른다. 김재경 (<사>커뮤니티와 경제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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