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광복절 기념 ‘칠곡 독립운동가의 길’ 라이딩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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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5   |  발행일 2017-08-25 제37면   |  수정 2017-08-25
독립운동가 채충식 선생 ‘3대째 푸대접’ 현장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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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들이 왜관철교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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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들이 매원마을 박곡종택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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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쾌대 생가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라이더들.

경북은 독립운동의 성지라고 한다. 그런데 독립운동의 성지에 걸맞은 사회문화적 인프라를 제대로 갖춘 것 같진 않다.

‘경북을 독립운동의 성지로 만든 사람들’(김희곤)에 수록된 독립운동가들을 살펴보면 석주 이상룡, 동산 류인식, 백두산 호랑이 김동삼, 권오설, 육사 이원록, 심산 김창숙 정도만 낯익고 나머지 인물들은 잘 모른다. 독립운동가의 기념공간마저 매칭펀드로 지어야 되는 국고보조금사업 원칙 때문에, 2011년 서울 심산기념문화센터 개관식에 참석해 구청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을 얻어먹온 것이 아직 기억난다. 이런저런 이유로 안동에는 작은 독립운동기념관을 지었고 심산선생 기념사업은 사실상 서울로 넘겨주게 됐다. 경북의 독립유공자가 2천125명이라고 자랑에 그치지 말고, 혁혁한 독립운동을 하고도 미등록 독립운동가로 빛을 못보고 있는 열사의 현양사업을 추진해 보길 바란다.


 청산 못한 권력자에 대한 우상화 현장
 대구 달성공원앞 순종동상서 첫 페달질
 용산교 넘으니 낭만적 풍경 칠곡 지천역
 이쾌대 생가는 ‘월북’ 탓에 흔적도 없어


‘왜관 독립운동가 마을’로 불리는 매원리
 父子 독립운동가 이수목·두석 생가에다
 박곡종택·이석고택 등 영남3대 班家 면모
 조선銀 폭탄의거 장진홍 의사비서 마침표


작년에 이어 2017년 광복절기념 라이딩을 준비하는 마음 역시 무거웠다. 중구는 대구의 미래로 흐르지 못하고 과거에 갇혀있는 듯하다. 특히 2011년 국토해양부 주관 도시활력증진 지역개발사업 공모에 대구읍성 상징거리 조성사업이 선정돼 추진한 순종어가길 달성공원 앞 순종동상을 보고는 청산되지 못한 권력자에 대한 우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광복절기념 라이딩의 출발점을 달성토성 길목 순종동상 앞으로 잡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지 꽤 오래되었으나 친일파 후손들이 여전한 지배집단으로 득세를 하고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은 사회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회 모든 분야가 현실의 지배집단 중심으로 쓰이고 기념되는 현실이 불편하다. 우리의 독립운동사 또한 승자독식주의로 점철돼 있는 것 같아 유감스럽다. 우승열패의 신화와 소통하는 국사는 역사도 왜곡시킬 수 있다.

조지 오웰은 소련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담은 ‘동물농장’에서 “기록된 모든 자료가 당시의 정통성과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단순히 기계적 행동이다. 과거의 사건들이 바람직한 양상으로 일어난 것은 수정한 탓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국 독립운동사는 애국계몽운동을 넘어선 무장투쟁론을 정통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현대사의 스타 독립운동가는 백범 김구, 안중근 의사, 윤봉길, 김원봉 등 무장투쟁가들이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MTB친화도시 칠곡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서 만나는 왜관 독립운동가의 길은 어떤 인맥지도를 그리고 있을까?

비가 온다는 예보에도 라이딩을 강행한다는 공지를 보고 몰려든 광복절 경축 라이더들은 10명이었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마음으로 파이팅을 하고 40㎞ 칠곡라이딩길에 올랐다. 손바닥 태극기를 자전거 핸들바에 장착하고 일부는 대형 태극기를 온 몸에 두르고 광복절의 의미를 경축하며 달렸다.

달성공원 노상 주차장을 활용하여 새벽부터 아침 출근시간대까지 노점상들 첫장이 서는 달공시장(달성공원~인동촌시장 앞길)을 지나 달성공원 네거리를 횡단, 경부선철로변 남쪽 도로를 따라 평리네거리 방향으로 서진을 했다. 북비산로81길 상 1㎞ 거리 날뫼 언덕에 위치한 비산성당을 만난다. 날뫼당산 근방에 뿌리를 내린 비산성당 일대는 이윤일 요한 성인이 묻혀 있었던 곳으로 알려진 천주교 성지다. 비산동에 내려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디자인 벽으로 꾸민 성당담 벽면을 따라가면 이 길이 서울로 가던 길이란 걸 알게 된다. 성당 담장에서 본 비산동 세형동검 사진 한 장으로도 북유라시아에서 한반도 날뫼마을까지 이어진 문명교류사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뒷골목 언덕길에서 마주친 마을의 역사, 이쯤 되면 자전거라이딩은 스포츠가 아니고 길 위의 인문학으로 날아오른다. 경부선 철로변 이면도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무정차 가능한 동서간 자전거고속도로다. 이 도로를 통해 북비산지하차도, 평리지하차도가 어딘지 모르고 서평지하차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염색공단중앙로 인도로 갈아타고 달서천로를 따라 비산교, 달서교를 지나 이현램프교에 이르니 서재로가 나왔다. 평소에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차도를 10명이 뭉친 힘으로 도전해서 안전하게 돌파했다. 금호강 위에 우뚝 솟아오른 중부내륙고속도로 금호대교와 금호지구를 잇는 와룡대교, 경부고속철로가 금호의 신교통 풍경을 이룬다. 낙동강을 만나러 깊어져 가는 금호강은 고속철로 밑에서 넓어졌다 서재문화센터 앞 해랑교에서 아담한 크기로 좁아진다. 원래 라이딩 코스에 넣었던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자란 박곡리 투어는 비로 인해 건너뛰게 되어, 해랑교 다리 아래로 내려가 용산강가길을 탔다. 용산교를 넘으면 칠곡군 지천역이 있는 용산리다. 이 길을 발견하고는 칠곡군이 칠곡3지구보다 가까이 있어 놀랐다. 지천역 주변의 기찻길 풍경은 속도에 관계없이 낭만적이다. 도로 안내판을 보고 지천역 ~ 지천초등 ~ 하납실 방향으로 나아가니 ‘칠곡호국평화의 길 라이딩’ 때 본 길이다.

덕산삼거리, 덕산교를 지나 지천로를 따라 신리3리 경로당, 군립지천어린이집, 경수당이 이쾌대·이여성 형제가 살았던 생가터를 찾아가는 중요지형지물이다. 대경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해 디지털칠곡문화대전에 올라있는 생가터는 지천면사무소와 마을이장님의 증언을 종합한 결과 신리 39번지가 아닌 49번지였다. 한국의 미켈란젤로로 불리는 이쾌대의 고향에서 월북화가라는 이유로 아무런 흔적도 볼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 광주에서는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을 기념해 음악축제는 물론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쾌대보다 덜 알려져 있는 형 이여성(본명 명건)과 그의 매부 김세용(대구고보 경성의전, 모스크바대 수학)은 몽양 여운형 계열의 건국동맹과 정부형태로 발전한 조선인민공화국의 핵심인물로 활동했고, 당시 지역독립운동가들은 몽양계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왜관 쪽 인물들은 몽양라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인물색채가 뚜렷하다. 지금처럼 임시정부 지킴이 김구 선생을 중심으로 쓰인 국사와 달리 지역독립운동가 인물 지형도는 몽양계가 대세였다.

미 군정 남조선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 양재하(문경, 경성법전), 박문규(경산,경성제대), 조선인민공화국 군사부장 김세용(대구), 건준 중앙위원 이상백(대구), 건준 선전부장 이여성(칠곡), 자금조달과 관리책 이수목(왜관), 건국동맹 경북지역 결성을 주도한 김관제, 이선장, 정운해, 채충식 선생(왜관) 등은 그 흐름을 주도했던 건국운동의 주역이었다. 건국동맹 사건에 연루된 심산 김창숙 선생은 예비 검속에 걸려 1945년 8월7일 구속수감되어 왜관경찰서에서 광복을 맞이한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장진홍 의사 기업사업회를 만드는 데 앞장섰던 신간회 대구지회 서기장으로 활동한 채충식 선생의 손녀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이 계신 이조명가로 가는 길인 연화리의 신나무골 성지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나무골 대구초대교회를 둘러보고 준비한 간이우비를 껴입고 왜관공단길로 향했다. 비 맞은 몸으로 우리는 독립운동가문의 가풍을 잘 이어오고 있는 이조명가에서 8·15광복절 특식을 먹었다. 왜관철교 사진으로 유명한 채충식 선생은 아직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지 못하고 있다. 3대째 독립운동 푸대접을 받는 현장까지 씁쓸하게 맛보고는 1시경 왜관 독립운동가의 마을인 매원리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에 감호정사를 입력하여 찾아가면 덜 헤맨다).

영남3대반가로 알려진 매원마을 감호당을 마주하는 순간 왜 이제 찾아왔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첫 방문이라 문화관광해설사의 도움을 미리 요청했다. 얼마 전 이낙연 총리가 동네를 방문하고 기념식수하고 간 따끈따근한 소식도 들었다. 박곡종택, 부자 독립운동가 이수목&이두석 생가, 이석고택을 차례로 방문했다. 과거지사로는 3대였는지 모르지만, 현대사의 스토리로 보면 영남의 첫 마을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안에 있는 이석고택에서는 집주인인 황무룡 전 부군수로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근처 고모집을 찾을 때 이석 선생에게 문안인사를 왔다는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게 아쉬웠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져 갔다. 만국기 펄럭이는 왜관철교~낙동강자전거길~낙동강 호국공원을 돌며 칠곡 낙동강자전거길을 라이딩했다. 왜관소방서 앞 네거리 근처 애국동산(석전4리 산 63-4)에 올라 1927년 조선은행 폭탄의거로 구속되어 옥중순국한 장진홍 의사 기념비각 앞에서 참배를 하고 광복절라이딩의 마침표를 찍었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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