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朴 탄핵 첫 뇌관이었던 미르·K재단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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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8   |  발행일 2017-08-28 제30면   |  수정 2017-08-28
대기업에 걷은 출연금은
뇌물아닌 강요라는 판결
사회적파장 감안한 흔적
엄정한 법잣대 적용하되
인위적 줄기 만들면 안돼
[송국건정치칼럼] 朴 탄핵 첫 뇌관이었던 미르·K재단
서울취재본부장

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파면 사태를 낳은 ‘최순실 게이트’는 1년 전쯤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작년 7월26일 ‘TV 조선’은 ‘청와대 안종범 수석, 미르재단 500억원 모금 지원’이란 첫 보도를 내보냈다. 이어 9월20일 ‘한겨레’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에 최순실 개입 정황’이란 기사를 게재했다. 정기국회를 맞아 일부 언론과 당시 야권에선 최순실을 매개로 두 재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연결시켰다. 두 재단을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수렴청정 기구로 만들었던 ‘일해재단’에 빗대며 의혹을 제기했다. 박 전 대통령 퇴임 후 활동공간 마련을 위해 대기업을 압박했다는 논리였다. 두 재단을 둘러싼 시비로 시작된 게이트는 최순실의 대통령 연설문 수정(태블릿PC), 삼성의 정유라 승마지원, 문화계 블랙리스트, 우병우 의혹, 고영태 폭로 등으로 번지면서 결국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으로 이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는 지난 25일 뇌물공여 혐의 가운데 삼성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을 무죄로 선고했다. 특검은 단순뇌물죄인 정유라씨 승마지원(유죄 인정)과 달리 두 재단 출연금은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가 전제가 되는 제3자 뇌물죄를 적용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다른 기업도 요청받은 출연금을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 ‘대가’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재단 설립, 출연과정은 청와대 주도로 이뤄졌고, ‘강압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재용 재판부의 결론이지만 10월 초중순에 1심 선고가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은 청와대의 ‘강요’에 의한 피해자라는 변호인단의 전략이 먹혀들었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은 재단 설립과 관련해선 뇌물을 받지 않았으나 돈을 내라고 강요는 한 셈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을 기소한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제3자 뇌물죄 외에 강요와 직권남용 혐의도 함께 적용한 상태다. 따라서 이 부회장이 두 재단 출연금에 대해선 무죄를 받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강요죄를 적용받을 가능성이 높다. 정유라씨 승마지원금은 단순뇌물죄, 두 재단 출연금은 강요죄가 인정되면서 형량이 크게 높아진다. 특히 강요 부분은 헌법재판소가 지난 3월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문에서도 밝힌 바 있다. 당시 헌재는 “기업들은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취지나 운영 방안 등 구체적 사항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재단 설립이 대통령의 관심사항으로, 경제수석이 주도해 추진된다는 점 때문에 서둘러 출연 여부를 결정했다”고 적시했다. 정권의 강요에 따른 기업의 피해로 판단한 이재용 재판부의 판결과 궤를 같이한다.

박근혜 탄핵의 최초 뇌관이었던 미르·K재단을 둘러싼 논란은 정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처음 제기된 ‘제2의 일해재단’ 주장은 지금 공허해졌다. 대신 헌재가 탄핵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논거가 됐고, ‘피고인 박근혜’를 압박하는 재판부의 법리적 무기가 됐다. 만일 이재용 재판부가 미르·K재단 출연금을 제3자 뇌물로 판단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두 재단에는 18개 그룹 53개 계열사가 총 774억원을 출연했다. 대기업 가운데 청와대 도움이 필요한 현안이 없는 기업이 있을까. 그런 현실과 ‘부정한 청탁’이 연결되면 상황은 엄청나게 복잡해질 수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18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본인과 관련자 재판 과정에서 하나하나 다루고 있다. 위법 행위에 대한 처벌은 당연하다. 다만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재판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큰 줄기를 만들진 말아야 한다. 그건 사회정의에 반한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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