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공론화委 험로…첫 현장 방문 진입로서 주민과 30여분 대치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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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9 07:13  |  수정 2017-08-29 07:13  |  발행일 2017-08-29 제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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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현장을 찾은 김지형 신고리원전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공사 재개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저지로 진입로가 막히자, 버스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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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현장은 공사가 중단되면서 철근 부식을 막기 위한 보수 작업만 이뤄지고 있어 적막감이 감돌았다.

28일 오전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현장은 현지 주민들의 분노로 가득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엔 ‘국익’이란 이름으로,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엔 ‘에너지 민주화’란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현지 주민들의 억울함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여부를 결정지을 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화위)가 이날 출범 후 처음으로 공사 현장을 찾았다. 공론화위는 오전 11시 현장에 도착했지만, 공사 재개를 요구하는 서생면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며 30여분간 진입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서생면 주민들은 공론화위 위원들을 향해 “물러가라”란 구호를 반복했다. 특히 일부 주민들은 공론화위 관계자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진입로 한복판에 드러눕기도 했다.


서생면 주민
“들어올때 나갈때 모두 일방적
40여년간 참아온 보람도 없어”

김지형 위원장
“주민-관계자 공론화작업 참여
의견수렴 등 원만히 해결해야”



물론 경제 문제가 표면적 이유다. 공론화위와 대치를 벌인 한 50대 남성은 “한수원이 발전소를 짓겠다며 부지를 매입하고,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인데 건설사업이 중단되면 각종 재산권 피해보상이 취소되고, 지방세수도 줄어들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주민들이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경제적 문제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진입로에 드러누워 “나를 짓밟고 가라”고 외친 주민 중 한 명은 “과거 정부는 우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신고리 3·4호기를 지었다”며 “공론화위도 언제 우리에게 물어봤나. 물어보지도 않고 밀실에서 자기들끼리 건설 중단 여부를 논의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주민은 “우리도 답답하고 너희(공론화위 위원)도 답답하다. 내려와서 얘기 좀 하자. 원전도 속아서 들어온 것”이라며 “에어컨 빵빵한 버스에 앉아 있는 것이 현지 주민들을 존중하는 자세가 맞나. 우리는 40년간 참아왔다. 우리 의견을 묻지 않고 건설을 중단한다면 40년간 참아온 보람이 없어진다. 우리와 얘기 좀 해 달라”고 호소했다. 중앙정부 위주의 에너지 정책으로 현지 주민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반면, 서생면 밖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입장은 좀 달랐다. 울산 KTX역에서 만난 한 30대 남성은 “서생면 사람들은 경제적 보상이라도 받겠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특별히 혜택을 보는 것도 없지 않나”라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경주 지진 등으로 주민들의 불안감은 아주 커졌다. 신규 원전 건설에 부정적인 주민들도 많다”고 말했다. 과거 천지원전 건설을 두고 찬반으로 갈렸던 영덕주민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주민들과의 실랑이 끝에 김지형 공론화위원장 등은 한국수력원자력 새울본부 관계자들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은 뒤 건설현장을 찾았다. 당초 건설에 투입된 인원은 200여명이었지만 현장은 적막했다. 대여섯 명의 근로자들만이 철근 부식을 막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만난 한 현장 근로자는 “건설에 처음 참여할 때는 최소 2~3년은 일할 것으로 보고 숙소를 개인 돈으로 임차한 근로자들이 많다”며 “우리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에겐 큰돈인데, 공사가 갑자기 중단돼 앞날이 막막하다. 건설 중단 여부가 빨리 결정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현장 근로자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최종 건설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정부가 호소하고 있지만, 일부 협력업체 직원들은 불안감에 공사 현장을 떠나고 있다”며 “만일 영구 중지로 결론이 내려질 경우 건설사와 협력업체 모두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김지형 위원장은 “지역 관계자분들과의 만남을 갖지는 못했지만 계속해서 노력해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현장에 와서 보니 느낌이 많이 다르다. 더 많이 이행해야 할 부분들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또 주민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역주민과 관계자들이 공론화 작업에 적극 참여해 의견 수렴에 애써주셔서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글·사진=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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