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보수정권엔 없고 ‘진보’에는 있는 것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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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9   |  발행일 2017-08-29 제30면   |  수정 2017-08-29
역대 진보정권은 두고 있는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을
보수정권은 왜 폐지했을까
의회와 긴장관계 대통령제
대국민 이벤트정치도 필요
[화요진단] 보수정권엔 없고 ‘진보’에는 있는 것

최근 보수 야당을 중심으로 문재인정부의 이른바 ‘코드 인사’와 ‘포퓰리즘 정책’을 ‘신(新)적폐’로 규정하며 연일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문재인정부가 부럽다’는 소리도 나온다. 적잖은 논란을 예측하면서도 팍팍 밀어붙이는 ‘코드인사’에 따른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출범초기에 타 지역 사람들의 반발을 의식해 대구·경북 출신은 뒤로 물러나 있게 했고, 이명박정부 때는 이른바 ‘고(고려대)·소(소망교회)·영(영남)’ 논란으로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과는 너무나 비교가 되는 일이다.

이런 중에서도 필자가 이번에 언급하려는 것은 왜곡된 성의식으로 사퇴압력이 이어지고 있는 탁현민 행정관이 부각되면서 퍼뜩 떠오르는 ‘문제 의식’이다.

김대중정부 초기의 일이다. 당시 대구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필자에게 출입처 한 인사가 “조만간 김 대통령 대구 방문을 앞두고 있는데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이 사전 답사 겸 의견 청취를 위해 들렀다”고 귀띔했다. 청와대의 직제에 대해 지식이 별로 없었던 때에 행사기획비서관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역시 ‘대통령 행사’는 뭔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이후 2002년 대선 때 서울 정치부로 이동해 국회와 청와대를 취재하게 된 필자는 DJ정부를 잇는 노무현정부 때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의 역할을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에 행사기획비서관 자리가 사라졌다. 그 뒤를 이은 박근혜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분야별 담당 비서관이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대통령 행사를 핸들링했다. 우파 정부에서는 ‘일만 잘하면 되지 겉포장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판단한 듯했다.

이번에 문재인정권이 수립되면서 행사기획비서관 직제가 다시 복원됐다. 앞서 언급한 탁현민 행정관이 행사기획비서관으로 발표가 났다가 의전 비서실 선임 행정관으로 갔다. 지금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 한 자리가 유일하게 공석으로 남아 있는데 업무 중복성 우려 때문에 당분간 의전비서관이 총괄하는 식으로 교통정리가 됐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속사정은 논란이 많은 탁 행정관을 비서관으로 임명하려니 부담이 되어 행정관으로 보내면서 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그의 연출 능력을 믿고 있는 게다. 실제로 셔츠 차림의 청와대 커피타임부터 5·18 유가족 안아주기까지 사람들을 웃고 울린 문재인 대통령의 이벤트는 모두 그의 솜씨라는 전언이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지지율은 탁현민 덕분’ ‘안 자르는 게 아니라 못 자르는 것’ ‘탁현민 청와대’라는 말까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역시 과유불급이다. 높은 지지율의 바탕이 되는 문 대통령의 ‘소통 정치’가 사실은 탁 행정관의 ‘이벤트 정치’ 때문으로 평가절하되기 때문이다. ‘막후’에 있어야 할 사람이 전면에 드러나면서 빚어지는 부작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념 대국민 보고대회가 ‘실패’로 규정되면서 야당도 공격 태세를 강화하는 모양새다.

다만 우파 측에서 주시해야 할 것은 ‘탁현민’이라는 존재가 아니다. 문재인정부와 청와대가 이전 정권과는 차별화된 행사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지지층을 견인해 내고 있고, 그 바탕에 ‘행사기획비서관’이라는 직제가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 대통령은 ‘친구 같은 대통령’을 원하는데 기존 청와대 방식으로는 그것을 표현할 수 없어 탁 행정관이 필요했다”는 고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진보정권에서는 중시한 ‘포장술’을 이명박-박근혜정부 등 보수정부는 왜 홀대한 걸까. 보수진영이 체질적으로 ‘포장’을 싫어해선지 자유한국당도 홍보엔 극히 약하다. 의회와 긴장관계에 있는 대통령제에서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국민을 겨냥한‘이벤트 정치’를 필요로 하고, 문 대통령의 ‘소통 정치’는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야당 보수가 어떻게 대응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영란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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