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고령 개경포 공원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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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1   |  발행일 2017-09-01 제36면   |  수정 2017-09-01
‘팔만대장경의 포구’…강화도서 뱃길로 와 해인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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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포주막. 자전거길의 오아시스고, 주민들의 일터이자 쉼터다.

쭈뼛쭈뼛 땀에 젖은 청년들이 주막으로 들어선다. 빈 물통을 껴안은 그들은 쉬이 말을 꺼내지 못한다. 말 배우는 아이들처럼 한 음 한 음을 삼키듯 뱉는다. ‘저… 물… 좀…’ 홀로 막걸리를 드시던 노인이 급기야 큭 하고 웃으신다. 손자에게 감자전을 먹이던 여인도 ‘하하하’ 웃음이 터진다. 이미 몇 분 사이 수차례나 이어진 일이었다. “학생들인가?” “넵! 대학생입니다! 낙동강 종주 중입니다!” 주모는 익숙하다는 듯 사람 좋게 말한다. “저기 정수기 물 떠가소. 마이 떠 가이소.” 청년들은 “감사합니다”를 거듭 소리 높여 외친다. 떠들썩한 청년들이 떠난 뒤 주막 안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한동안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1970년대까지 제기능 한 낙동강변 나루
대장경 거쳐간 뒤 개산포→개경포 불려
2001년 조성 공원엔 이운 행렬 조형물
2014년 문 연 주막 ‘길손들의 오아시스’


◆주막이 있는 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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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포 공원 앞 낙동강. 강 건너는 달성이다. 낙동강 자전거길 사이로 자연습지와 갈대 군락, 산책로 등이 있다.

옛 개경포 터에 주막이 있다. 꼼꼼하게 이은 초가지붕을 얹은 작은 집이다. 2014년에 문을 열었다는데 3년여의 시간이 지났어도 마치 어제 것처럼 멀끔하다. 강 따라 달리는 사람들에게 주막은 허허로운 강변의 오아시스다. 평상 있는 점방 보기가 어려워진 세월이라 인근 주민들에게는 한 잔 목 축일 수 있는 쉼터다.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오는 부지런한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경험이다.

개경포는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와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를 잇는 나루였다. 낙동강이 서쪽으로 흐르다가 남으로 꺾여 흐르는 자리다. 나루는 ‘가혜진(加兮津)’ ‘가시혜진(加尸兮津)’ ‘개포진(開浦津)’ ‘개산강(開山江)’ ‘개산포(開山浦)’ ‘개산진(開山津)’ 등으로 불렸다. 개경포가 된 것은 조선 초, 강화도에 있던 팔만대장경을 합천 해인사로 옮길 때다. 대장경을 실은 배가 서해와 남해를 거쳐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이후 뫼산(山)자 대신 글경(經)자를 넣어 개경포라 했다. ‘개포’가 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개포나루. 언제나 개포나루라고 불러왔다. 그게 익숙한 이름이었다. 개경포, 개경포. 자꾸 되뇌어 본다. 자꾸 부르면 익숙해질 것이다.

주막의 이름은 ‘개포주막’이다. 개포1리 부녀회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약간의 지역농산물과 과자, 살짝 허기를 채울 전과 묵, 컵라면 등을 판매하고 있다. 몇몇 음료와 물도 팔고 있지만 공짜 물 인심이 좋다. 개진은 감자가 유명하다. 탁자마다 놓여 있는 감자전이 인기를 보여준다. 세 여인이 우아하게 들어서며 감자전을 주문한다. “점심을 먹고 왔다” “감자전 먹으러 여기까지 왔다”는 말들을 덧붙인다. 그 말에는 여럿이서 달랑 하나만 주문해서 미안하다는 마음과 개진 감자의 명성은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을 게다. 막걸리를 마시는 노인의 귀가 쫑긋한다. 내 귀도 쫑긋한다. 낯선 사람의 말소리를 듣는 일은 고요한 일상을 훈훈하게 한다.


◆개경포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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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 이운 행렬을 재현한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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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포 공원의 표지석. 옛 포구의 유래를 전해준다.

주막 일대는 개경포 공원이다. 개포리의 이웃 마을인 오사리의 초입 야산 아래에 자리한다. 공원이 조성된 것은 2001년이다. 기억하고 있는 공원의 모습은 커다란 표지석 하나가 전부인데 16년이 흐르는 사이 조금씩 더해지고 바뀌어 지금은 여러 조형물과 쉼터, 소공연장, 수로와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팔만대장경 이운 행렬’을 재현한 조형물이다. 이곳에 도착한 대장경은 하나하나 사람들에 의해 해인사로 옮겨졌다. 대장경 운반을 감독하는 관리, 독경을 외우며 행렬을 인도하는 스님, 머리에 경판을 이거나 등짐을 진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 이곳에 멈춰 서 있다. 화강암으로 조각된 사람들은 뜨거운 햇살 속에서 영혼처럼 투명해 보인다. 행렬 앞에는 이규보가 1232년 구국을 염원하며 쓴 기도발원문인 ‘대장각판 군신기고문’을 각자한 기념비가 있다.

산 아래 그늘이 시원한 산책로에는 정자와 벤치가 띄엄띄엄 놓여 있고 개포리 시례골에 있는 관음보살좌상이 재현되어 있다. 고려 성종 때인 985년에 만들어졌다는 불상이다. 손에 연꽃을 들고 앉아있는 관음의 뒤에는 배 모양의 광배가 조각되어 있다. 먼 옛날 낙동강을 이용해 개경포를 왕래하던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했던 보살상으로 여겨진다. 산 위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는 팔만대장경을 옮기는 데 사용되었던 조운선 모형이 있다. 조운선은 조세로 거둔 쌀을 운반하던 배로 깊이가 얕은 강을 따라 내륙으로 이동하거나 해변을 항해하는 데 적합한 구조였다고 한다. 바람은 살랑 부는데 돛은 어디로 갔을까. 학생들은 산책로 그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고, 수십 대의 자전거는 주막 앞 강변에서 뜨겁게 익어간다.

◆개포와 오사 사이

개경포 표석에는 포구의 유래가 적혀 있다. 이곳에 공원을 조성했지만 ‘원래 포구는 이곳에서 200m 지점, 제방 끝 개산 아래’라 한다. 공원에서 서쪽으로 강변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개포마을이다. 나루터 상회가 있는 개포마을을 옛 포구라 믿고 있었는데 개포리와 오사리 사이 어딘가가 진짜 나루터인 셈이다.

개포마을의 나루터상회 옆에는 강둑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양 옆으로 몇 그루 백일홍이 화사하다. 둑 위에 오르면 남쪽으로 굽이지는 물길이 한눈에 보이고 하얀 자전거길이 물길과 나란하다. 자전거 탄 사람들이 태양을 뚫고 달리는 모습이 보인다. 마을은 노곤하고 고요하다. 조선시대까지 개경포는 큰 포구였다. 소금과 곡식들이 이곳을 거쳐 갔고 가을이 되면 세납으로 받아들이는 곡식이 수만 섬이었다. 주막이 30여 채, 가옥은 200여 채가 넘었고, 덩달아 화적떼도 많았다. 나루터의 기능은 1970년대까지였다.

개포와 오사 사이에 ‘사진 찍기 좋은 명소’가 있다. 여기가 옛 터일까. 수풀이 우거져 내려가 보기 어렵다. 먼 산꼭대기들이 정적으로 흐른다. 강물은 동경과 고뇌와 매혹으로 넘치고, 떨리는 기슭과 빛나는 들판은 창조된 생명으로 넘친다. 낙동강. 참 좋은 강이다. 진짜 나루터는 어디인가 라는 집요한 물음은 강물에 흘려보내야겠다, 이제는. 물을 좋아하는 이는 현명한 사람이라지 않나.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현풍 방향 5번 국도를 타고 가다 박석진교를 건너 좌회전해 고령 개진면으로 간다. 개진 우체국 지나 조금 가면 개경포 공원이 나온다. 공원에서 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개포리다. 12번 고속도로로 갈 경우 동고령IC에서 내려 26번 국도를 타고 가다 양전삼거리에서 왼쪽 직리 쪽으로 간다. 열뫼삼거리에서 개경포로를 따라 계속 가면 개포리를 지나 오사리 개경포 공원이다. 개포주막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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