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의 산] 기양산(연악산, 해발 706.8m, 구미시·상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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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1   |  발행일 2017-09-01 제38면   |  수정 2017-09-01
‘우중산행’…수채화 같은 풍경 속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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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에서 정상을 오르는 능선에는 대부분 참나무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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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사 배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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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 군락지에서 만난 영지버섯.

늦장마라고 해야 할지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산행 들머리인 수다사 입구에 들어서면서 산을 올려다보니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산에서 비를 만나는 것은 다반사지만 산행 시작부터 비를 맞으며 오르려니 서글퍼진다. 이대로 계속 비가 내린다면 풍경은커녕 산 그림자도 못 볼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 수다사 주차장 가운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환하게 웃어주는 포대화상 조각이 일행을 위로하는 듯하다.

주차장에서 몇 계단을 오르면 바로 수다사 경내인데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왼쪽에 보이는 아름드리 배롱나무다. 안개 속의 회색빛 산사와 붉게 핀 배롱나무 꽃이 보색으로 대비된다.

수다사는 신라시대 진감국사가 절 뒤의 연악산 정상에 한 송이 흰 연꽃이 핀 것을 보고 창건했다고 전하며, 창건 당시에는 연화사로 부르다가 몇 차례 화재와 홍수 피해로 여러 차례 중건하고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중건해 수다사로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수다사 ‘포대화상’ 배웅받으며 나선 길
희뿌연 계곡 더듬어 오른 가파른 능선
숲길 곳곳 바위 틈 와송과 영지버섯들
아직 손타지 않은 태초 비경 맛보는듯

정상엔 방향따라‘연악산’‘기양산’표석
기양산 표석 뒤엔 ‘조양산’…다소 혼란


명부전과 대웅전에 모셔진 목조 아미타여래좌상과 후불탱화 등이 경북 유형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고 들머리를 찾는다. 배롱나무 옆 극락교를 건너 농로를 따라 오르면 자그마한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얼마 오르지 않아 농로는 끝나고 계곡을 따라 오르도록 안내리본이 몇 장 걸려있다. 계곡에 들어서니 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해 등산로가 잘 보이질 않는다. 내리는 비와 나뭇가지에 맺힌 물방울까지 떨어지면서 잠시 만에 온몸이 흠뻑 젖는다. 희미한 계곡 길을 30분 정도 오르니 계곡에서 능선으로 오르도록 이정표가 방향을 가리킨다. ‘연악산 1.6㎞’. 여기서 정상까지는 연악산으로 표기하고 있고, 정상에서 수선산으로 이어져 하산을 하게 되는 임도 갈림길까지는 ‘기양산’으로 표기하고 있어 혼란스러운데 미리 알고가면 전혀 문제가 없다.

계곡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무척 가파르다. 산 사면을 따라 비스듬히 오르다가 능선을 만나기 직전에는 바위구간이 있어 로프를 매어둔 구간도 두어 곳 있다. 잔뜩 물기를 머금고 있어 발 디딤이 조심스럽다. 20분 만에 능선에 오르니 왼쪽 아랫마을 상송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 오른쪽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완만한 능선 길을 따라 100m쯤 가면 헬기장을 지난다. 잠시 안부에 내려섰다가 다시 가팔라지는 지점에 오른쪽으로 ‘백길바위 50m’ 이정표가 있다. 수다사에서 보면 하얀 연꽃처럼 보인다는 백길바위. 이름 그대로 백길이 넘는 바위벼랑이겠는데 빗길에 바위구간을 지나야 하고, 구름에 가려 조망도 없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그냥 지난다. 가파른 비탈에 놓인 나무계단을 5분 정도 오르면 정면으로 바위를 올라야 하고, 왼쪽으로 우회길이 나있다. 정면으로 오르는 바위 아래에 사명대사가 수행했다는 송암지(수불암) 안내판이 있다. 크게 두 덩이의 큰 바위구간을 힘겹게 오르니 작은 바위봉우리 위에 서게 된다. 맑은 날이면 구미 방향의 산들이 한눈에 보이는 지점이겠지만 구름에 가려 상방 분간이 어렵다. 딱히 이정표나 표석은 없지만 이 봉우리가 기양산 서봉이다. 바위틈에 와송이 자라고 있고, 구절초가 방울방울 물방울을 달고 싱그럽게 자라고 있다. 와송뿐 아니라 산행 중에 몇 번이나 영지버섯을 만났으니 아직 손 타지 않은 산임에는 분명하다.

바위구간을 내려서서 완만한 구간을 5분 정도 지나면 기양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구미쪽 무을면발전회에서 세운 ‘연악산’ 표석과 상주 쪽 자연보호 청리면협의회에서 세운 ‘기양산’ 표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기양산 표석 뒷면에는 ‘일명(조양산)’이라고도 적어두었다. 구미에서는 연악산, 상주에서는 기양산, 산 아래 마을에서는 조양산으로 부른다는 이야기다. 다소 혼란스럽지만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기양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니 그대로 따르고, 알고만 있으면 혼란스러울 것도 없겠다.

이어지는 길은 오르던 길에서 오른쪽 마을회관 이정표를 따라 내려선다. 내리막이긴 하지만 완만한 길이다가 작은 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급경사 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오르막인데 정상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민둥한 봉우리 위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작은 삼거리인데 왼쪽으로 내려가면 마공리 마을이다. ‘마공리 4.2㎞, 수선산 1.4㎞’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살짝 비켜난 능선 길을 따른다. 오른쪽 숲 사이에 희미한 길이 보이는데 수다사로 바로 내려가는 지름길이지만 막아두었다. 가파른 내리막에 로프를 매두었다. 진흙 길이라 얼음 위를 지나듯 조심스럽다. 작은 봉우리를 하나 더 넘어도 상황은 비슷하다. 20분 정도 지나니 평지 같은 펑퍼짐한 자리에 나무벤치를 놓아 쉼터를 만들어두었다. 젖은 벤치와 젖은 옷가지라 일행 중 누구도 앉아 쉬지를 않는다. 잠시 서서 쉬고는 다시 15분 정도 긴 오르막을 오른다. 빗방울을 머금은 원추리 꽃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등산로를 가로막는다. 길섶에는 각종 버섯들이 무성하리 만큼 피어있고, 사위는 구름 속이다. 전체적인 산의 생김을 볼 수는 없지만 비 오는 날의 수채화랄까? 생쥐 꼴을 하고서도 어느새 구름 속 풍경에 빠져들었다. 민둥한 봉우리 위에 이정표가 하나 세워져 있다. ‘돌티고개 3.1㎞, 선산임도 1.1㎞’의 이정표 기둥에 ‘수선산 683.6m’로 표기해 두었다. 수선산 정상이라는 이야기인데 봉우리라기보다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갈림길에 불과하다. 임도까지는 불과 1㎞ 남짓이니 편한 길이겠지 하고 능선을 따르는데 야트막하기는 하지만 다시 오르막이 반복된다. 버섯 채취 구역인지 오른쪽으로 빨간 끈이 길게 처진 구간을 다 지나고 임도가 가까워졌지 싶은데 ‘임도 0.6㎞’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 왼쪽으로 바위가 보이는데 맑은 날이면 상주 방향으로 조망이 기가 막힐 것 같은데 역시나 구름뿐이다. 이후 임도까지는 계속 내리막이다. 15분 정도 숲길을 내려서면 수다사에서 이실마을을 잇는 임도가 산허리를 가로질러 나 있다. 임도를 만나면 오른쪽 내리막으로 길을 잡는다. 시멘트 포장이다가 비포장 이다가를 반복하는 임도 가장자리에 아직 칡꽃이 달려있어 달콤한 향기를 뿜어낸다. 키를 훌쩍 넘는 산초나무, 사방사업이나 철둑에 많이 심었던 족제비싸리가 무성히 자라 임도를 침범하고 있다.

종일 내린 비는 굽이굽이 휘어진 중간 중간 사방댐을 넘어 작은 폭포를 만들었다. 바짓단을 타고내린 빗물은 등산화 속으로 파고들어 질퍽거린다. 그렇게 30분을 내려서니 수다사 주차장이다. 포대화상이 또 빙그레 웃고 있다. 익살스럽게.
대구시산악연맹 이사·대구등산아카데미 강사 apeloil@hanmail.net

☞ 산행길잡이

수다사-(30분)-계곡 갈림길-(20분)-능선 갈림길-(10분)-헬기장-(60분)- 정상-(60분)-수선산-(50분)-임도 갈림길-(30분)-수다사 주차장

구미와 상주 경계에 솟은 이 산은 상주 쪽에서는 기양산으로 부르고, 구미 쪽에서는 연악산으로 불린다. 곳곳에 이정표가 있으나 각기 표기를 달리하고 있어 혼란스럽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산이어서 호젓한 산행을 즐기기에는 좋다. 수다사를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내려오는 코스를 잡으면 약 9㎞의 거리로 5시간 정도 소요된다.

☞ 교통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김천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선산IC에서 내린다. 68번 국도를 따라 상주 방면으로 가다가 무을면사무소를 지나 약 3.5㎞를 더 가면 수다사 이정표를 만나고, 이 길을 따라 약 1.5㎞를 가면 수다사 입구 주차장에 닿는다.

☞ 내비게이션

구미시 무을면 수다사길 183(수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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