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세프를 찾아서-대구 평리동 ‘복들어온날’ 김지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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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1   |  발행일 2017-09-01 제41면   |  수정 2017-09-01
날마다 손님상에 ‘福’을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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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알바인생’이었고 한때는 영업의 세월이었다. 쓰레기통도 뒤지고 단기간 6개의 자격증까지 따낸 치열한 지난날 덕분에 이젠 가장 단아한 모습으로 웰빙복어탕을 손님에게 내놓을 수 있게 된 김지현 셰프.

이번 주에는 복어(鰒魚)에 청춘을 다 건 대구 서구청 맞은편 복어 전문점 ‘복들어온날’ 김지현 오너셰프의 눈물 겨운 요리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서구청 입구 육교 남쪽 계단 바로 맞은편 골목에 있어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에겐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모르긴 해도 대구의 이런저런 식당 중에 가장 열악한 곳에 위치해 있는 것 같다. 벽엔 2015년 대구음식박람회 요리경기대회 최우수상 기념 현수막이 붙어 있다. 구석 자리에 앉았다. 맹물 대신 노루궁뎅이버섯 달인 물을 준다. 한 그릇 1만4천원짜리 밀복매운탕을 시켰다. 적당한 식초 맛, 그리고 육중한 육수의 보디감. 주당 해장국으로 딱일 것 같다.

오후 2시30분. 손님이 다 빠질 시각이다. 여긴 오후 4시부터 1시간 브레이크타임이다. 주방 정리를 마친 김 셰프가 조리복 차림으로 앉는다.

구두닦이 등 알바로 근근이 학업·생활
평생 業 찾다 운명적 재료 ‘복어’서 발견
“복어라는 이름의 복이 福자로 보여…”
30代 요리 문외한서 오너셰프 삶 준비

5년간 복어전문 20여곳서 기본기 습득
쓰레기통 뒤지며 육수 레시피 분석도
반년 만에 복어요리 등 6개 자격증 취득
2012년 개업…‘흰밀복’ 등 특화된 메뉴


◆난 알바를 위해 태어났던가

그녀의 인생 1막은 알바에서 시작해 알바로 저물었다.

대구 도심지 동성로에서 태어난 그녀에게 식당은 가난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절규한 끝에 거머쥔 ‘지푸라기’ 같은 것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알바로 학업을 이어가야만 했다. 구두닦이, 신문배달, 방문판매, 화장품 영업, 의류숍 매니저, 식당, 다단계 사업 등을 경험했다. 오전 5시에 나가서 알바 4개를 뛰기도 했다. 고교 2학년부터 25세까지 계속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다.

알바로는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절감했다. 그럼 한 단계 올라가 영업인생을 살자고 다짐한다. 10여년간의 영업사원 시절을 보낸다. 한때 ‘보험왕 ’소리도 들어봤다.

하지만 영업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사업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여자가 영업 말고 평생 할 수 있는 사업은 뭘까. 고민 결과, 바로 ‘식당’이란 답이 나왔다.

목돈이 없었다. 그 이전에 요리가 뭔지에 대한 기본기도 전혀 없는 처지였다. 무작정 뛰어들었다. 그녀가 찾은 운명의 식재료는 ‘복어’. 그녀는 이미 30대로 접어들었다. 청국장집, 국숫집, 찜집, 일식집 등 얼추 20군데의 식당을 돌았다. 식당일, 이건 노가다 판 저리 가랄 정도다. 하지만 이미 20대 때 단련된 ‘깡’이 몸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복어로 정한 이유는 뭘까?

“이상하게 복어집 주인은 하나같이 푸짐하고 넉넉해 보이고 복이 있어 보였어요. 복어의 복(鰒) 자가 복 복(福) 자로 보였습니다.”

‘복집 사장은 다들 60대 정도였는데 30대 여사장의 출현이라면 자못 손님들한테 어필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그건 세상 물정을 모른 나만의 ‘몽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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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복에 가장 어울리는 식초의 양과 고춧가루의 맵기를 조절해 완성시킨 육개장처럼 화끈얼큰한 밀복매운탕.

◆기술 배우기 위해 복집 순례

일단 복어요리를 경험해 보고자 청해복어, 성당복어 등 5년간 지역 복어 전문점만 20여 업소를 다녔다. 설거지에서 시작해서 정직원, 홀 매니저까지 거쳤다. 그런데 기술의 세계란 이론만 갖고는 어림없었다. 일단 요리에 대한 기본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늘 적자의 나날이라 전문대학 조리학과는커녕 요리학원도 언감생심이었다.

문제는 레시피인데 공짜로 가르쳐줄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편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쓰레기통을 뒤지면 답이 나올 거야.’ 모 복어식당의 경우 육수 만들 때 갖은 재료를 넣을 수 있는 큼지막한 망이 있었다. 어느 날 사장이 그녀더러 망에 들어있는 찌꺼기를 버리고 오라고 했다. 하늘이 준 기회였다. 몸을 통 안으로 집어넣고 손으로 재료를 헤집어가면서 재료 이름을 다 외워버렸다. 그날 육수량과 재료의 비율을 유추해서 수첩에 몰래 적어두었다. 퇴근해 집에 오면서 외워 둔 재료를 사와서 망에 넣고 육수를 뺐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식당의 육수 맛이 아니었다. 뭐가 부족한 거지? 의문은 또 다른 의문을 낳았다. 불면증이 닥쳤다. 항상 잠이 부족했고 식당에 오면 약에 취한 것처럼, 구름처럼 붕붕 떠다니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았죠. 식당마다 맛의 비결을 식당주만이 독점하고 있다는 걸요. 복어 국물의 원천인 육수의 맛은 망 안에 들어 있는 재료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장의 머릿속에만 있었어요. 때론 극미량의 화학조미료일 경우도 있고. 직원들이 알까 걱정돼 사장은 모두 퇴근한 뒤 자신의 비법을 그 육수에 섞죠.”

수차례 연습하고 버리고, 그런 과정을 반복해가면서 끝내 복어 기본 육수의 패턴을 알게 된다. 집집마다 다 분석해보니 비슷했다. 대충 무, 다시마, 대파 등이 필수였다. 복잡하게 많이 들어가면 육수는 정체불명이 된다. 양파·생강·건새우 등은 선택, 멸치와 한약재도 안 넣는 집이 더 많았다.

“그런데 정말 바보같이 나중에 그걸 알았어요. 정말 좋은 식재료는 아무런 육수, 아무런 양념이 필요 없다는 것. 정말 하늘이 준 미인은 화장을 안 해도 예쁘잖아요. 복어왕으로 불리는 고가의 참복 같은 경우에는 정말 육수가 필요 없습니다. 워낙 진한 즙이 스며나와 맹물로 끓여도 감칠맛이 나죠. 그런데 1만원 미만의 대중적인 복어탕은 어쩔 수 없이 중국산 냉동 은복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 퍽퍽한 고기 맛을 가리기 위해선 반들거리는 육수와 갖은 양념이 첨가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참복을 매운탕으로 먹는다는 것, 그건 고급 벤츠 차량을 허접한 스티커로 도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바보짓이죠. 세상 이치가 다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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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껍데기무침.

◆단기간 최다 자격증 취득

육수 레시피는 어느 정도 정리됐다. 복어는 위험한 요리. 이참에 조리사자격증은 따놓아야겠다 싶어 나라에서 무료로 지원해주는 기술교육학원과 시내 요리학원 등을 찾았다. 집에 가면 공부가 안될 것 같아 툭하면 밤늦게까지 학원에 남아 있었다. 관계자들도 그녀의 독한 근성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단 복어 전문점 오픈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매일 복어와 사투를 벌였다. 퇴근길에 칠성시장 가서 복어 10여 마리를 사 들고 집에 와선 밤샘 연습. 몸엔 항상 비린내가 고여 있었다. 덕분에 6개월이란 초단기간에 한식·양식·중식·일식·복어요리·아동요리지도교사 자격증을 모두 따버렸다. 학원에선 초유의 사태, 다들 난리가 났다.

“시험을 준비할 땐 초능력자인 것 같았습니다. 하루 2~3시간 자고 오직 자격증에만 미쳐 있었어요. 구름 위로 떠다닌 반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손가락 마디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워낙 일 때문에 시달려 손관절이 조금씩 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난관을 붙들고 2012년 8월1일 생애 첫 식당을 연다. 그날 참 많이도 울먹거렸다.

일단 복어 전문점이라서 참복, 밀복, 청복, 까치복, 은복, 졸복 등 7가지를 내놓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상권에 맞아야 된다. 참복국을 2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내놓았는데 서구에선 그것도 비싸게 받아들였다. 고급노선을 수정했다. 특별한 마니아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복어라인을 찾고 싶었다. 예약인 경우를 제외하곤 참복, 까치복 등은 뒤로 밀리고 대신 밀복, 청복, 흰밀복 등이 전면으로 나선다. 특히 리모컨 크기만 한 ‘흰밀복’은 여느 복어집에선 보기 힘든 이 집만의 메뉴다. 은복보다 두 단계 높은 가격인데 한 그릇에 8천원이다. 초창기엔 몸에 가시가 있는 청복으로 불고기도 만들었다. 가끔 영덕 강구항에서 활복을 가져올 때면 단골에게 연락한다. 활복일 경우는 1천원이 추가된다.

◆이색 메뉴 이야기

밥에 정성이 담겨 있다. 병아리콩 세 개를 고명으로 올린 ‘미나리밥’도 건강을 염두에 둔 것이다. 미나리를 세척해 말리고 그걸 강황가루처럼 갈아 넣는다. 이 집은 특이하게 버섯전문점보다 더 많은 버섯을 사용한다. 복어샤부샤부를 개발할 때 웰빙버섯구이를 선별해 올렸다. 노루궁뎅이, 동충하초, 만가닥, 백만송이, 숫총각버섯, 은이버섯 등 12종이다. 버섯은 10월부터 동절기에만 예약 손님에 한해 낸다.

그녀가 좋아하는 복라면. 라면이 복과 잘 어울린다는 걸 식당일을 하면서 알게 됐다. 손님도 없고 출출하면 곧잘 혼자 끓여 먹던 것이다. 어느 날 그 광경을 엿보던 단골의 성화에 못 이겨 메뉴라인에 가세하게 된다.

대다수 복집은 하절기 메뉴가 취약하다. 그녀도 그래서 하절기 특별메뉴를 짰다. 그게 ‘복껍질물국수’. 식후에 나온 단호박감주는 삼대가 다 좋아하고 하트 모양의 계란찜은 너무 예쁘게 생겨 인증샷 1순위 메뉴다. 매주 일요일 휴무. (053)561-1255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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