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영화 ‘VIP’ 국정원 직원(박재혁)役 장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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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1   |  발행일 2017-09-01 제43면   |  수정 2017-09-01
“생활인으로 ‘감정 빼는 연기’ 재밌고 신선했다”

그야말로 ‘VIP’다. 장동건 이야기다. 장동건만큼 오랜 세월 톱스타 자리를 지키는 이도 드물다. 작품이 흥행하는 순간에도,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든 순간에도, 장동건은 장동건이었다. 1992년 MBC 공채 탤런트 21기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 MBC 드라마 ‘아들과 딸’로 데뷔해 1994년 드라마 ‘마지막 승부’로 그야말로 스타 반열에 올랐다. 훤칠한 키와 서구적인 외모는 당시로서는 드문 비주얼이었다. 모두가 장동건을 보며 환호했고 사랑했다. 이후 드라마 ‘모델’ ‘의가형제’ ‘이브의 모든 것’과 영화 ‘연풍연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필모그래피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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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초에는 외모 도움을 많이 받았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어렸을 땐 조각 미남이라는 수식어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고마워요. 바람이 있다면 대중과 20년 넘게 함께한 만큼 외모보다는 분위기, 인상으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장동건의 말대로 ‘조각 미남’ 비주얼은 배우로서 그의 성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데뷔하자마자 톱스타 자리에 오르게 한 것도, 때로는 아쉬운 연기력 평가를 받아야 했던 것도 모두 이 지나치게 잘생긴 외모 때문이었다. 장동건이 눈물을 흘려도, 감정을 쏟아내도, 울부짖어도 사람들은 그의 조각 외모에 주목했다. 하지만 이제 외모가 주는 한계와 대중의 시선을 인정하기로 했다는 그. “잘생겼다는 소리 익숙하다”는 능청스러운 유머로 맞받아칠 여유마저 생겼다.

“잘생겨서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늘 받잖아요, 제가(좌중폭소). 그때마다 겸손한 대답을 하는 스스로에 제가 질리더라고요. 설마 사람들이 제가 제 외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겠어요? 그냥 장난삼아 이야기하는 거죠. 잘생긴 외모에 대한 인정은 아주 예전부터 했어요. 하하. 물론 절대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는 제가 봐도 30대 때 얼굴이 훨씬 더 괜찮지만(웃음). 이목구비의 생김새를 떠나서 이젠 좀 더 유연하고 편안한 태도가 멋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1년 ‘친구’·2004년 ‘태극기…’로
배우인생 최고 전성기 뒤 잇단 흥행 敗
“연기 재미없어지고 자기애도 없어져
3∼4년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
‘7년의 밤’ 찍으며 연기 初心 다시 찾아”

“3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VIP’도 설레”
김명민·박희순·이종석과 멀티캐스팅
“전작들과 달리 마음의 부담감도 덜어”



조각 외모 수식어를 깨려 부단히 노력한 장동건은 2001년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로 배우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니가 가라, 하와이”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임에도 800만 관객을 끌어 모으며 그야말로 ‘친구 신드롬’ ‘장동건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잘생긴 스타인 줄만 알았던 장동건에게서 배우의 들끓는 욕망을 엿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작품을 통해서다.

‘친구’로 재평가받은 장동건은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로 천만 관객 진기록을 세우며 또다시 정점에 올랐다. ‘친구’와 ‘태극기 휘날리며’ 모두 장동건의 스타성과 연기력을 입증한 기회였다. 더불어 그의 연기 인생 최고의 흥행작이기도 하다.

“과정과 결과가 모두 좋으면 최고지만, 지나고 보면 결과가 좋았던 작품에 아무래도 애정이 많이 가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태극기 휘날리며’에 애정이 많이 가긴 하죠. 개인적으로는 애정이 가는데 관객이 많이 안 보면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작품이 ‘위험한 관계’거든요. 이 작품 찍으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허진호 감독님 연출 스타일도 처음 경험해봤고, 장백지, 장쯔이와 함께하며 느낀 점도 많았고요. 작업 자체에 공을 엄청나게 들였는데 관객에게 전달이 안 됐죠.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운 작품입니다.”

‘친구’와 ‘태극기 휘날리며’로 전성기를 누린 장동건은 이후 흥행면에 있어서는 다소 아쉬운 행보를 보였다. ‘무극’ ‘태풍’ ‘마이웨이’와 같은 대규모 상업영화가 줄줄이 흥행에 실패했다. 물론 그 사이 12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인 SBS ‘신사의 품격’으로 변치 않는 저력을 과시하긴 했지만 유독 스크린에서의 성적표는 씁쓸했다. 이 시기 장동건은 지독한 슬럼프에 허우적댔다.

“연기가 재미없어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죠. 매너리즘인가, 슬럼프인가. 다른 영화들도 안 보게 됐습니다. 생각해 보면 배우에게는 어느 정도 나르시시즘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게 전혀 없었어요. 저에 대한 애정이 확 사라졌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스스로 매력을 못 느끼겠고, 그런 것에 관심도 사라졌어요. 연기도 신이 안 나고. 한 3~4년 정도 그랬습니다.”

해답은 의외로 쉬웠다. 영화 ‘7년의 밤’(감독 추창민)을 찍으며 연기 초심을 되찾았단다. 장동건은 정유정 작가의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7년의 밤’에서 딸을 죽인 범인을 향한 복수를 꿈꾸는 남자 영제를 연기했다. 기존의 젠틀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와 전혀 다른 변신에 나섰다. 힘들고 고된 작업을 끝내자 어느 새 슬럼프라는 길고 긴 터널은 끝이 났다. 그리고 이 연기의 설렘은 영화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7년의 밤’은 엄청나게 고생스럽게 찍은 영화예요. 고생을 했지만 예전에 느꼈던 연기의 설렘이 다시 찾아왔죠. ‘7년의 밤’ 이후 덜어내는 작업이 수월해졌어요. 제가 감정에 너무 도취돼 있으면 관객이 어느 순간 구경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죠.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국정원 직원으로 변신한 ‘브이아이피’에서도 더하기보단 빼는 연기를 했어요. 조직 내 스트레스, 생활인으로서의 국정원 직원을 연기했는데 재밌고 신선했죠. 처음엔 전작들과 달리 육체적으로 너무 수월하다보니 이렇게 해도 되나 싶었지만(웃음). 멀티 캐스팅이다 보니 마음의 부담감도 덜 수 있고 말이죠.”

장동건은 3년 만에 ‘브이아이피’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브이아이피’는 국정원과 CIA의 기획으로 북에서 온 VIP가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이를 은폐하려는 자, 반드시 잡으려는 자, 복수하려는 자,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네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신세계’로 청불 영화 흥행 신드롬을 거둔 박훈정 감독의 야심작이다. 국정원 직원을 연기한 장동건은 보수적인 집단에서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캐릭터를 통해 일상적 연기를 선보인다. 주로 선굵은 연기를 선보여온 장동건의 연기 변신이 작품에 안정감을 더한다. 장동건의 첫 멀티캐스팅 작품이기도 한 ‘브이아이피’. 장동건, 김명민, 박희순, 이종석 등 세대별 쟁쟁한 배우들이 모인 ‘브이아이피’ 현장은 그 어느 영화보다 화기애애했다.

“네 명의 배우들 성격이 다 달라요. 다 다른데도 모난 사람이 없어서 부딪힐 일이 없었죠. 특히 김명민씨가 현장 분위기를 많이 띄웠어요. 진중한 이미지와 달리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스스로 어색한 분위기를 못 견뎌서 웃긴 농담도 많이 하고. 배우로서도 정말 훌륭하죠. 돌발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굉장히 부러웠어요. (이)종석이는 애교가 정말 많아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하죠. 저하고는 딱 두세 장면 함께 등장했는데 그때마다 제가 심하게 때리는 연기를 해서(웃음). 제가 부담이 많이 됐죠.”

장동건은 스케줄이 없는 날엔 주로 집에서 아이들과 보낸다. 친구들과 만날 일이 있어도 아이들 재우고 저녁 무렵 나가 밤 12시 전에는 귀가한단다. “늦게 들어온다고 고소영씨에게 혼날 시기는 지났지만, 요즘엔 피곤해서 늦게까지 못 있겠어요.” 장동건의 인생 1순위는 좋은 가정, 좋은 아빠다. 2010년 고소영과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후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장동건은 스크린 밖에서는 가족과 함께 키즈카페에 가는 평범한 일상을 즐긴다.

“저는 원래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걸 싫어해요. 신비주의가 아니라 성격 때문이죠. 고소영씨랑 열애 사실을 밝히고 나서 편하게 데이트할 법도 한데, 안 하던 일이라 그런지 어렵더라고요. 오죽했으면 (고)소영씨랑 연습도 했다니까요. ‘우리 손잡고 밖에 나가서 동네 한 바퀴 돌아보자’라고요(웃음). 그런데 직업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젠 키즈카페를 가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막상 하다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고소영은 한 인터뷰에서 “장동건은 빵을 사와도 꼭 크림빵을 사온다. 필요 없는 것을 비싸게 사오는 재주가 있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천하의 장동건도 아내에게는 못 미더운 남편이라는 사실이 인간미를 안겨 댓글창을 뜨겁게 달궜다. “크림빵이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요(좌중폭소). 남자와 여자가 잘하는 게 다른 것 같아요. 이병헌, 이민정씨 부부와도 자주 만나는데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은 것 같아요. 2세 외모요? 제 눈엔 당연히 저희 아이들이 더…(웃음). 이병헌씨 부부 2세는 딱 엄마, 아빠를 반반씩 닮았더라고요. 저희 첫째 아들은 제 얼굴보다는 소영씨를 닮아서 훈남이에요. 얼마 전에 큰 아들에게 소영씨와 함께 출연한 ‘연풍연가’를 틀어줬더니 오글거린다며 부끄러워하더라고요. 하하.”

데뷔 이후 별다른 스캔들 없이 늘 톱스타 위치를 지켜온 장동건이지만 25년 연예계 생활에서 나름의 부침이 없을리 만무하다. 장동건은 “나도 나름대로 혹평의 순간도, 호평받은 순간도 있다. 대중은 막연하게 장동건은 순탄하게, 별 부침 없이 배우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오해라면 오해”라고 털어놨다.

자극이 되는 배우로는 이정재, 정우성을 꼽았다. 활발한 활동을 하며 배우로서 생명력을 이어가는 동년배 배우들이 부러운 한편 쉬지 않고 필모그래피를 꾸리고자 하는 건강한 질투심을 느끼게 한다고.

“이정재, 정우성씨가 다시 활발히 활동하는 걸 보면 자극도 되면서 한편으론 기분이 좋아요. 박중훈 선배가 ‘안성기 선배 다음이 바로 나야’라며 외로워하더라고요(웃음). 나는 정우성씨나 이정재씨 같은 또래 배우들이 있으니 외롭진 않아요. 서로 자극이 되고 경쟁도 되는 셈이죠. 어떤 때는 누가 앞서기도 하고 뒤처지기도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좋습니다.”

글=TV리포트 김수정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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