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전7기 ‘오뚝이 농업인’…칡상추 개발해 富農 꿈 이뤄

  • 배운철
  • |
  • 입력 2017-09-02 06:57  |  수정 2017-09-02 09:25  |  발행일 2017-09-02 제2면
[토요인물 - 이 세계] 영양 수비면 상추재배 권상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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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전7기 끝에 성공한 농업인으로 우뚝 선 권상환씨가 하우스 내 상추를 수확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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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배우고 할 일이 없어 농사를 짓는 게 아닙니다. 농사야말로 더 연구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최고 엘리트 직업입니다.” 영양군 수비면에서 상추를 재배하고 있는 권상환씨(58)에게 농사는 다른 어떤 첨단산업보다 더 유망한 미래산업이다. 그렇기에 그는 농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만큼 노력과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권씨는 어떻게 농사와 농업에 대해 이토록 강한 신념을 갖게 된 것일까.

30대에 귀향 고추·버섯 재배
폭설·화재 피해로 빚 수억원
실패 겪은후 과학영농 눈 돌려
칡즙 액비 사용, 끊임없는 연구
농협 새 농민상 등 잇따라 수상


◆연구하는 과학 농군

수비면이 고향인 권씨는 사실 농사짓기가 싫어 18세 때 고향을 떠나 산업기계자동화시스템 공장에 기술자로 취업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오랜 공장생활로 기관지가 나빠진 데다 고향의 흙냄새도 그리워진 그는 귀향을 결심하고 30대 초반인 1993년 수비면으로 돌아왔다.

자란 곳이 시골이었을 뿐이지 농사 경험이 거의 없었던 그에게 ‘고향행’은 처음 대도시로 갈 때만큼이나 모험이고 도전이었다. 그는 첫 농사로 청양고추를 선택했지만 하필이면 그해 엄청난 눈이 내려 3천300㎡ 규모의 고추 재배용 비닐하우스가 폭삭 내려앉는 불운을 맞았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실망감을 극복하면서 그는 다시 느타리버섯 재배에 도전했다. 하지만 겨우 자리 잡을 무렵 이번엔 버섯재배사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는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두 번의 실패를 겪은 그가 다시 도전한 작물은 수경재배 상추였다. 하지만 시련은 운명처럼 또다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권씨는 “상추 생산을 눈앞에 둔 2002년 태풍 ‘루사’가 비닐하우스 30여 동을 휩쓸고 지나갔다. 남은 것은 수억원의 대출금과 좌절뿐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귀향 후 그는 10년간 6차례의 크고 작은 재난을 겪었고 형제들에게는 빚 보증만 남겼다. 포기할 만도 했지만 권씨는 망가진 골재를 주워 다시 비닐하우스를 지은 뒤 상추 재배에 나섰다. 주민들이 그를 6전7기의 ‘오뚝이 농업인’으로 부르는 이유다.

그는 몇 차례의 실패 끝에 과학영농에 눈을 돌렸다. 특히 칡즙을 수경재배용 액비로 사용하는 ‘칡상추’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마침내 잎이 아삭아삭한 상추 특유의 맛 이외에도 칡향이 잘 어우러진 칡상추를 개발해냈다. 특허 및 상표등록도 마쳤다. 칡상추로 인기를 얻으면서 권씨의 일반 상추도 덩달아 가치가 높아졌다. 현재 비닐하우스 40동 1만3천200㎡와 노지 3만3천㎡에서 사계절 상추를 수확한다. 하루 평균 수확량이 400상자(상자당 2㎏)로 판매금액으로 따지면 800여만원 정도 된다. 농촌에 억대 농군이 늘고 있지만, 이 정도면 부농이라 할 만하다.

◆베트남에도 농업 전수

수비면 수비파출소에서 왼쪽으로 난 농로를 따라 10여 분 걸어 올라가면 소나무로 둘러싸인 넓직한 계곡에 비닐하우스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비닐하우스를 둘러싼 노지 상추밭은 시골의 흔하디 흔한 풀밭처럼 보인다. 가까이 가야만 상추밭임을 알 수 있다.

4만9천㎡의 드넓은 상추밭은 권씨 부부의 현재이자 미래다. 권씨 부부는 외국인 근로자와 함께 상추를 수확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상자에 담긴 상추는 1t 차량에 실려 쉴 새 없이 날라졌다. 수년 전부터 권씨 부부는 상추 수확을 위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올해는 베트남 계절근로자가 부족한 일손을 메워주고 있다. 사실 기자가 권씨를 취재하고자 했을 때는 7년 전이었다. 당시에도 권씨는 남다른 생각으로 농사를 짓고 있어 눈길이 갔다. 하지만 그는 “누구에게 자랑할 수 있는 농군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때 취재에 응하겠다”며 손사래쳤다. 그런 그를 이번에 다시 만난 것이다. 자신의 정확한 소득을 밝히지 않았지만, 8∼10명의 외국인 계절근로자 월급으로만 1천500만원이 지불되는 것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한 달 1천500만원이면 이들 근로자를 고용하는 봄·가을 6개월만 합쳐도 9천만원이다.

아직도 그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끝없는 연구와 성실함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농협중앙회로부터 새농민상을, 경북도로부터 경북도농민상을, 영양군으로부터는 영양군민상(산업부문)을 받았다.

권씨는 삶의 목표를 “모두가 잘사는 농촌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베트남 계절근로자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상추 재배에 도전하겠다고 하면 재배 전 과정을 아낌없이 알려주고 있다. 또 수경재배를 배우려는 귀농인과 농업후계자들이 찾을 때면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없으면 절대 귀농에 성공할 수 없다"면서 경험담과 더불어 성심껏 지도한다.

글·사진 = 영양 배운철기자 baeu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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