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만명 증발…日 어두운 단면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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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2   |  발행일 2017-09-02 제16면   |  수정 2017-09-02
인간 증발
20170902
레나 모제 지음/ 이주영 옮김/ 책세상256쪽/ 1만5천원

20대의 가즈후미씨는 능력있는 금융맨이었다. 그는 어느날 집을 나와 그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잘못된 곳에 투자를 했다 4억엔을 날렸고, 고객의 비난과 상사들의 질책을 들어야 했다. 막다른 벼랑 끝에 몰린 그의 마음 속에서 깊은 수치심이 샘솟았다. 1970년 어느날 아침, 그는 아무 말 없이 열차를 타고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가즈후미씨처럼 ‘사라지는’ 사람은 일본에서 드물지 않다. 이 책은 일본에서 매년 10만명 가까이 생겨나는 이른바 ‘증발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프랑스 저널리스트인 저자와 사진작가인 그의 남편은 일본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들여다본다. 저자는 5년에 걸쳐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증발을 선택한 이들, 증발을 도와주는 사람, 실종자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만났다.

‘증발’하는 사람들은 1989년 도쿄 주식 시장이 급락, 일본이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생겨났다. 빚, 파산, 이혼, 실직, 낙방과 같은 실패에서 오는 수치심을 견디지 못한 이들이다. 저자가 만난 증발한 사람 중 한 명인 이치로씨는 “사람이란 비겁하다. 어느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라졌다가 아무도 알아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일본의 이야기이지만 읽어내려가다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한국 경제가 일본과 비슷한 수순을 밟을 거라는 예측이 오래 전부터 있어온 만큼, 그에 따른 사회 현상 또한 한국이 답습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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