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영화, 낯설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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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6 07:50  |  수정 2017-09-08 11:40  |  발행일 2017-09-06 제23면
20170906
김현정 <영화감독>

대개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에 관해 주변인과 대화를 나눌 때면 가장 먼저 ‘이야기’에 대한 것을 언급하기 마련이다. 영화를 이루는 요소는 굉장히 다양하지만, 이야기는 그만큼 영화에서 강력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 영화에서는 그러한 성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하지만 영화라는 큰 줄기에서 이야기란 결국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이 말은 이야기가 영화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선호하고 언급하는 이야기라는 것이 문학에 가까운 ‘고전주의 내러티브’에만 대부분 치중되어 있다는 의미다.

주인공과 조연이 설정되고, 그들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과 대립, 해결 등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진행 방식을 ‘고전주의 내러티브’라고 한다. 이러한 방식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매우 당연하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실상 허구적 이야기라는 큰 축의 끝에는 ‘사실주의적 내러티브’와 ‘형식주의적 내러티브’가 있으며, 그 중간쯤에 고전주의 내러티브가 존재할 뿐이다.

사실주의와 형식주의 내러티브는 최대한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 하되 갈등이 다소 뚜렷하지 않은 이야기와 그와 반대로 상상의 세계, 환상적이며 현저하게 인위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영화 속 이야기들은 사실주의와 형식주의 내러티브 사이 어딘가에서 각자의 자리를 찾는다.

영화를 잘 보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려는 글에서 새삼 ‘이야기’를 화두로 꺼낸 이유는 한 편의 영화를 보면서 설령 이야기가 쉽게 이해가지 않더라도, 그 작품이 추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당장 익숙하지 않을 뿐 분명 영화적 가치가 있을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때론 개연성이 부족하더라도, 때론 지나친 생략과 비약이 있더라도, 때론 너무나 느린 진행에 지루함을 느낄지라도, 그 작품은 이야기적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추구하는 이야기의 범주와 목표가 고전주의의 그것과는 전혀 다를 뿐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데 있어 다양한 영화에 대한 취향은 강요해서도, 강요받아서도 안 된다. 다만 각자의 영화 취향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거부감을 느끼고 무시해버리기엔 우리를 기다리는 보물 같은 영화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야기의 넓은 스펙트럼을 이해하고, 낯설게 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러한 보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현정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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