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금액 마련할 길 없어”…실수요자도 매매계약 포기 속출

  • 진식 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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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7   |  발행일 2017-09-07 제6면   |  수정 2017-09-07
대구 수성구 투기과열지구 지정 후폭풍
20170907
정부가 대구시 수성구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를 투기과열지구로 추가 지정한 5일, 대구시 수성구 범어네거리 부근의 아파트 단지 모습.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대구 수성구가 14년 만에 다시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자 부동산 시장은 혼돈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자녀 교육 및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수성구로 이사를 가려는 실수요자들이 대출규제의 벽을 넘지 못해 포기하는가 하면, 거래가 끊기면서 이삿짐센터 등 연관 산업엔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수성구에 내달 시행 예정인 ‘분양가 상한제’ 적용도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여서 시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수성구는 ‘넘사벽’

국토교통부가 대구 수성구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한다고 발표한 지난 5일 저녁 만촌동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주부 A씨(43)가 침울한 표정으로 “계약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달서구에 사는 A씨는 불과 일주일 전 만촌동 전용면적 67㎡형 아파트를 매수하기로 마음먹고 계약금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수성구가 투기과열지구로 묶이면서 대출한도가 줄어드는 바람에 수성구 진입을 접은 것이다.


▶거래절벽 현실화
주택담보대출비율 70%→50%

▶이사업체 직격탄
인테리어 등 일감 줄어들어
중계업자 수수료 기대 하락

▶분양가 상한제까지
내달 도입시 수성구 적용대상
주변시세보다 분양가 낮아져
시세차익 노린 투기바람 우려



A씨는 “주택담보대출이 70%에서 50%로 줄어 부족한 금액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고 했다.

수성구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돼 대출이 막히면서 주택매매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8·2 부동산대책’에 따르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에선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낮아진다.

A씨처럼 이사를 가는 실수요자도 LTV가 기존 70%에서 50%로 줄어든다. 기본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이 없는 세대주는 LTV와 DTI가 각각 40%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이 1건 이상 있다면 LTV·DTI는 30%로 떨어진다.

이로 인해 5~6일 대구시내 은행권에선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문의하는 전화와 방문객이 잇따랐고, 수성구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는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만촌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자녀 교육을 위해 수성구로 이사 오려는 실수요자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 정부가 보완책을 마련해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사 업체 ‘어떻게 하나’

부동산중개업소, 이삿짐센터, 인테리어업체, 입주청소업체, 법무사 등 주택매매와 관련된 업종들은 긴 한숨을 내쉬고 있다. 거래 절벽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당장 수성구에서 거래가 실종되면서 일감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인테리어업체 한 관계자는 “벽지, 장판, 도배, 마루, 싱크대, 목공 등 이사 수요로 먹고사는데 거래가 끊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지역 한 법무사는 “주로 수성구에서 등기 업무가 많은 편이어서 걱정이 크다. 직원을 줄여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중개업소 관계자도 “이제 수성구에서 매매 수수료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전·월세 쪽으로 기대를 걸고 있으나 임대료 상승이 예상돼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분양가 상한제’→‘로또 분양’

고분양가를 잡기 위해 유명무실했던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도 부활해 수성구에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로또 분양’으로 흐를 것이란 부정적인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국토부는 이번에 발표한 ‘8·2 부동산대책’ 후속조치를 통해 분양가 상한제 적용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개선안은 최근 3개월간 집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한 지역을 전제로 △최근 12개월간 평균 분양가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한 곳 △기준이 되는 분양이 있었던 달에 앞선 두 달에 걸쳐 공급된 청약경쟁률이 일반주택은 5대 1, 국민주택규모(85㎡) 이하는 10대 1을 초과한 곳 △3개월간 주택 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한 곳 가운데 한 가지만 충족하면 상한제 대상지역으로 지정한다.

국토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주택법시행령 개정안을 8일 입법예고를 거쳐 이르면 내달 말 도입할 예정이다.

완화된 기준을 6~8월 물가상승률(0.7%)로 적용하면, 2배는 1.4%(집값 상승률)가 된다. 이를 초과하면 상한제 적용 대상의 첫째 조건을 충족하는데, 한국감정원의 통계에 따르면 수성구는 6~8월 3개월 집값 상승률이 1.63%다.

올해 4~5월에 수성구에서 공급된 ‘효성해링턴플레이스’와 ‘범어네거리 서한이다음’의 1순위 청약 평균 경쟁률은 각각 35.85대 1과 271.92대 1을 기록했다. 내달 상한제 도입에 앞서 수성구는 이미 적용 요건을 갖춘 셈이다.

상한제가 적용되면 아파트 분양가격이 택지비와 건축비를 합한 금액을 넘지 못한다. 이에 따라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낮아질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상한제 적용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큰 시세 차익을 볼 수 있다.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도입한 상한제가 오히려 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역 건설사 한 관계자는 “분양가 상한제는 ‘로또 분양’을 야기할 수밖에 없어, 해당 분양시장에선 투기 광풍이 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식기자 jin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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