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방송장악 시나리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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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8   |  발행일 2017-09-08 제23면   |  수정 2017-09-08
[조정래 칼럼] 방송장악 시나리오

자유한국당이 정기국회를 보이콧하고 거리로 나섰다.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를 ‘언론탄압’으로 규정하고 장외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엉뚱하고 생뚱맞다. 정작 거리로 나가야 할 때에는 엉거주춤 눈치만 보더니 특정 방송사의 파업 등을 ‘방송장악 음모’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자가당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탄압과 방송장악은 지난 이명박근혜정부에서 자유한국당이 앞장서서 해 온 흑역사가 아닌가. 불과 몇년 전에 자기들이 했던 일을 벌써 잊었을 리도 없건만 참으로 이보다 더한 이율배반이 없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몰염치가 낯 두껍다.

방송장악이 맞고, 음모론도 틀리지 않다. 김장겸 MBC 사장은 “언론노조가 회사를 전면파업으로 몰고 가려는 이유는 정치권력과 결탁해 합법적으로 선임된 경영진을 억지로 몰아내려는 게 아닌가”라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KBS, MBC 두 공영방송 노조의 전면파업과 향후 경영진의 퇴진 등 거취를 둘러싼 사태의 전개과정을 예상해 보면 김 사장의 진단은 수순상으로 가히 틀리지 않다. 다만 다수 구성원은 이를 방송장악 음모가 아니라 방송의 정상화로 본다. 정권의 방송장악은 이명박정부 당시 정연주 KBS 사장을 강제 퇴임시키면서 노골화돼 왔다. 방송장악 정권의 뿌리인 한국당은 방송장악의 본당이다. 한국당과 공영방송 경영진의 음모론은 피해자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다가 KBS, MBC 두 공영방송이 정권에 의해 농단당하는 지경에 처하게 됐나. 구구한 해석도 구차한 변명도 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공영방송의 추락은 정치권력을 불러들인 방송인들에 의해 초래된 자멸이다. 정권에 의한 유린과 겁탈이 공영방송, 특히 MBC를 몰락 직전으로 몰고 갔다. 이전의 시나리오처럼 두 공영방송 경영진의 퇴진은 그렇게 진행될 터이다. 정권을 등에 업고 일어선 방송사 경영진은 또 다른 정권에 의해 무너진다는 게 반면교사다. 물러나야 마땅할 정치언론인을 탄압받는 언론인으로 둔갑시키는 공영방송의 정치쟁점화는 당장 청산돼야 할 적폐다. MBC를 망친 주범들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공범자들’은 폴리널리스트를 기레기의 전형으로 꼽는다.

공영방송의 독립은 제도에 의해 보장돼야 한다. 방송사 노조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을 요구하고 마침 맞춤한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의원 162명이 발의한 개정안에 의하면 공영방송 이사를 여야가 각각 7명, 6명씩 추천하고, 사장은 이사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 뽑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도록 했다. 개정안은 공영방송 사장에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내리꽂아 온 관행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합리적인 방안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의 반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한국당의 법안 통과 저지 이유가 석연치 않고, 내년 지방선거까지 보수성향의 현 경영진 체제를 끌고 가야 유리할 것이란 정치적 이해타산은 설득력도 없고 또 가능하지도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송관도 논란거리다. 국회에 계류 중인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문 대통령은 “최선은 물론 차선인 사람도 공영방송 사장이 안 될 수 있다”며 “온건한 인사가 선임되겠지만 소신 없는 사람일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바로 재검토에 들어갔고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정치권 입장에서 방송사, 언론사 사장은 소신 없는 사람이 되는 게 맞다. 소신이 너무 뚜렷하니까, 시쳇말로 정치적으로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소신이라면 그건 버리는 게 백번 맞다. 정치권은 진영 논리에 걸맞은 ‘소신’을 내세우지만 그 소신은 다른 쪽에겐 ‘편향’이다. 그래서 언론사 사장은 우파에게도 좌파에게도 동시에 소신 없는 사람이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언론사 사장의 자질이 정치권에 의해 재단되고 있는 현실이 서글프다. 공영방송은 87년 체제 이전 ‘땡 전 뉴스’ 시대로 뒷걸음질을 했다. 정권은 그럼에도 방송장악 기도를 멈출 의향을 보이지 않는다. 공영방송의 신뢰를 회복할 길은 방송장악 시나리오를 무산시킬 제도 확보밖에 없다. 정치언론인들은 덤으로 일소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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