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한정식 이야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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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8   |  발행일 2017-09-08 제35면   |  수정 2017-09-08
20170908
순천의 갯벌 기운이 물씬 풍겨나는 한정식 전문점 ‘명궁관’의 상차림.

남도한정식도 권역이 있다. 여수 순천 벌교 장흥 강진 해남 목포 등이 1순위, 광주 전주 담양 순창 등이 2순위다. 음식전문가들은 한국 최강의 남도한정식의 고장으로 ‘강진’을 점찍었다. 강진의 ‘해태식당’은 한동안 묻지마 남도한정식 전문점으로 호황을 누렸다. 이젠 경쟁자가 많아 예전 같지 않다. 남도한정식이 너무 다양해졌다. 서남해안권 고장은 모두 자기식 남도한정식을 자랑할 수 있게 됐다.

남도한정식을 먹기 전에 예행연습으로 백반집을 순례해야 된다. 그래야 남도손맛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다. 그다음에 여유가 되면 한정식을 공략하면 된다.

특산물들의 큰잔치 같은 남도한정식
곰삭은 제철 식재료로 차린 情 밥상
멍게젓은 순천만 갯벌을 옮겨놓은 듯

순천시청 바로 옆에 순천한정식 양대산맥이 있다. ‘명궁관’과 ‘대원식당’이다. 대원식당은 예전 요정처럼 한 상에 모든 음식을 세팅해서 낸다. 명궁관은 개량한복을 입은 여직원이 직접 음식을 차례로 설명하면서 코스식으로 서빙한다. 명궁관의 역사는 1994년 시작되지만 2004년부터 유명해진다. 명사들이 많이 찾았다.

차가운 음식부터 뜨거운 음식 순으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음식이 쏟아졌다. 대구에서도 볼 수 있는 메뉴는 빼고 순천스러운 것만 선별해 사진을 찍었다.

반토막 낸 묵은 통무, 순천에서만 빛을 발하는 말린 대겡이와 문저리(일명 ‘문절구’) 무침, 금풍쉥이·조기구이, 고들빼기와 갓김치, 토하젓, 갈치속젓, 어리굴젓 앞에는 ‘톡톡’이란 수식어를 붙여야 된다. 자리돔젓갈과 멍게젓, 돌게장, 전복젓갈과 바지락젓갈까지 참으로 다양한 젓갈이다. 이게 남도식이다. 멍게젓갈은 순천만 갯벌의 펄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박하향처럼 흙냄새가 입 안에서 오래 머물렀다. 고단한 세월이 말투에 내려앉은 정영란 사장. 그녀의 노모는 여든을 앞두고도 딸의 밥상을 발치에서 지켜주고 있다.

전통음식의 전승은 감각도, 마케팅도 아니다. 혈통의 간절함이 녹아들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그걸 누군가는 알아줘야 된다.

갑자기 ‘남도한정식은 남도특산물의 총사령탑, 곰삭은 제철 식재료를 모두 꺼내놓은 정 묻은 밥상’인 것 같았다. 단품 메뉴에 더 무게중심을 두는 미식가에겐 남도의 질펀한 밥상이 때론 ‘정체불명밥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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