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대의 시간을 담은 건축] 계명대학교 대명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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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8   |  발행일 2017-09-08 제38면   |  수정 2019-03-20
‘붉은 벽돌건물 캠퍼스’의 역사를 만들다

건축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대학캠퍼스는 교육연구 목적이란 영역 안에서 일정한 건축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밖에서의 캠퍼스는 보편적인 교육연구시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듯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업무시설, 강당, 체육관, 음악당, 기숙사, 박물관, 채플까지 실로 다양하다.

대학의 기원은 헬레니즘 문화를 일깨웠던 지식의 보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시작한다. 이 도서관이 유럽의 대학 탄생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학문의 전당은 그리스 로마의 신고전적 건축양식과 이미지가 많이 보인다. ‘아테네 학당’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라파엘로의 대표작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 60여명의 당대 철학자가 아치와 볼트 구조의 건축공간 아래에서 토론과 사색에 빠져 있다. 당시 학문의 전당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화가는 성베드로 성당건축의 설계도를 참고해 작품을 그렸다.

오랜 역사를 지닌 캠퍼스 건축일수록 시간의 켜가 쌓여있다. 시차를 두고 세월이 지나서 건물이 세워져도 건물마다 전통을 입히고 학문의 권위를 표현했다. 대학의 전통과 역사, 학문적 권위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것이다.

1955년 완공 규모 2층의 콘크리트 건물
붉은 벽돌 일색 대명·성서캠퍼스 시작점
상부 돔 철거로 초기 위용 상실 아쉬워

서양기독교 분위기 대학의 요청 반영
광복후 최초 美 유학생 건축가 조자용
모교 하버드대처럼 고전주의 양식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종합대학 서울대학교는 광복 이후 1946년 설립됐다. 전란으로 뿔뿔이 흩어져있던 학부들은 30여년이 지난 1979년에 관악캠퍼스 마스터플랜으로 종합화됐다. 잦은 데모를 통제하느라 관악산 기슭 아래에 집단화했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캠퍼스의 전통과 시간의 역사를 쌓아나갈 수가 없는 여러 상황을 맞고 있다.

대학도시를 이루고 있는 미국 동북부 명문 사립대 그룹을 아이비리그라 한다. 대학캠퍼스 건물이 담쟁이덩굴(Ivy)로 덮일 만큼 오래된 전통에서 나온 말이다.

◆계명대학교 대명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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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기독학관으로 출발해 1호로 지은 계명대학교 대명본관 건물. 중앙상부 큐폴라 첨탑돔이 사라져 원형을 잃었다. 작은 사진은 대명본관 건물이 준공된 1955년 당시의 모습. 바위산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위용과 품위를 지닌 건물이었다.


대구지역의 종합대학들은 출발의 계기가 다르지만 시기가 엇비슷하다. 1954년 ‘계명기독학관’으로 출발한 계명대학교는 국립대학 다음으로 역사가 깊은 지역의 사학이다. 먼저 떠올리게 되는 대학의 이미지는 붉은 벽돌건물의 캠퍼스다. 대명캠퍼스, 성서캠퍼스, 문화대학 등 백수십 개가 넘는 건물이 붉은 벽돌건물 일색이다.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드물 것이다. 그 독특한 캠퍼스 분위기로 인해 많은 TV드라마와 영화 촬영지가 돼왔다.

붉은 건물 캠퍼스건축의 원조가 있다. 대명캠퍼스 대명본관 건물이다. 55년 2월 기공해 12월에 준공한 3천308㎡(1천28평) 규모 2층 콘크리트 건물로, 환갑이 넘은 62세의 나이다. 그 당시 황무지 바위산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 위용있게 배치한 건물이며 주요 자재들은 미국의 원조를 받았다.

T자 대칭형 배치로 정면은 북측을 향하고 있으며 붉은 벽돌 2층 건물 중앙 현관은 화강석 주량이 있어 지금에도 비례가 조화롭고 아름다운 건축미를 유지하고 있다. 르네상스식 건축 특징인 중앙상부에 작은 돔 큐폴라(cupola)가 설치돼 당시 수준으로는 최고급 품위를 표현한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에서는 종교건축이나 공공주택에까지 표현해온 신조지안 건축기법이다. 국내 대학들이 이러한 양식을 내세우는 것은 건립 당시 광복을 맞은 데 이어 6·25전쟁을 치러냄으로써 서구 이외에는 건축 표본이 없고 당시 유학을 했던 외국 대학들이 거의 이러한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오랜 시간을 거쳐도 불변인 학문의 진리를 표상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 ‘아테네 학당’처럼서구 고전주의 건축양식이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아담스관 상부의 큐폴라 돔이 철거되며 우아한 위용 일부가 사라졌다. 2006년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유산 문화재 등록을 예고했으나 대학은 상부 돔을 철거하며 문화재등록에서 비켜나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철거 당시의 종은 행소박물관 2층 홀에 전시돼 있다. 김영삼정부시절 역사 바로 세우기 명분으로 중앙청 돔을 철거했듯 건축의 우두머리 격인 돔의 상징성과 존재감은 지대한 것이다.

대명본관 건축스타일은 수십 년 후에 건립된 성서캠퍼스 본관 건축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돼 일맥상통한 계명대학교 캠퍼스건축의 이미지로 전통을 이어나갔다. 성서캠퍼스의 여타 건물들도 붉은 벽돌 이미지를 주제로 해 현대적 기능들을 수용했다. 정문은 유일하게 백색의 화강석건물이지만 도리아식 기둥과 파르테논식 지붕의 신고전주의적 모습이다. 도서관, 체육관, 채플아트센터(공연장)까지 붉은 벽돌을 사용했다. 의료원 고층건물까지도 붉은 벽돌 색상을 유지하고 현대적 AL패널 디자인이 가미된 건물에도 유사한 맥락성을 가진다.

◆대명본관의 건축가 조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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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 건물의 성서캠퍼스. 대명본관 건축의 역사적, 시간적 맥락의 전통을 이어간 성서본관 건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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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본관의 설계자는 하버드대 출신인 조자용 건축가이다. 본관 이외에 백학관, 경북대학교 본관, 동산병원 옛 본관, 계성학교 대강당, 서울정동 미국대사관 등 수많은 작품을 설계했다.

광복 후 최초의 미국유학생으로 밴더빌트대학에서 토목공학을, 하버드대학원에서 구조공학을 전공했다. 그가 유학한 하버드대와 아이비리그 대학 캠퍼스들은 18세기 고전주의(신조지안 양식) 분위기였고 서양기독교 분위기의 대학이 그러한 요청을 했을 것이다.

조자용은 1926년 황주 태생으로 건축가이자 민족문화 연구가의 삶을 살았다.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민화, 전통 민예품, 도깨비, 호랑이, 민간신앙에 심취했다. 설계일이 없을 때면 전국을 돌며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민화와 민간미술품을 재산을 털어 수집하였다. 후일 속리산에 ‘에밀레박물관’을 설립 운영하며 절을 만들어 은둔생활을 하다 2000년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한터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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