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장년 아들이, 며느리가…장사 3代 “원하면 아들·딸도 시키겠다”

  • 이연정 김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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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9   |  발행일 2017-09-09 제3면   |  수정 2017-09-09
소상공인 가업승계…대구지역 100년기업 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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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이상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의 모임인 ‘3대집합소’가 지난 8월 대구 중구의 한 카페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3대집합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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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상인 최규현씨가 어머니의 가게를 물려받으면서 오픈한 ‘빤스생각’ 홈페이지. 최씨는 홈페이지 개설로 매출도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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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의 견과류 가게 ‘대원상회’ 이명희 사장은 시할머니, 시어머니에 이어 3대째 가게를 운영해오고 있다.

소상공인 가업승계인들은 오랜기간 소비자들과 쌓아온 신뢰가 ‘약(藥)’이 될 수도, ‘독(毒)’이 될 수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기존에 구축된 소비층이 있기에 남들보다 비교적 쉽게 시작할 수 있지만, 오랜기간 쌓아온 명성과 기대감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배로 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노하우와 어려움 함께 공유

지난 8월21일 저녁, 대구 중구 향촌동의 한 카페에 다소 들뜬 표정의 사람들이 모였다. 3대 이상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이 뭉친 ‘3대집합소’의 첫 모임이었다. ‘포럼창조도시를 만드는 사람들’의 지원으로 소셜다이닝 형태로 진행된 이날 모임에서는 약전골목, 수제화골목, 북성로 공구골목, 서문시장 등 대구지역 전역에 흩어진 3세대 소상공인 9명이 뜻을 모아 시민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단체로 거듭날 것을 다짐했다.

3대집합소 모임 결성을 제안한 박신호 중앙한약방 대표(51) 역시 3대째 한약방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그는 80여년의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스토리를 어떻게하면 조금 더 오래 유지하고, 갈고닦아 가치를 빛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모임을 꾸리게 됐다. 특히 대구는 6·25전쟁 때 피란민들이 많이 모여 가업을 이어나간 경우가 많아 3대 이상이 가업을 지키는 가계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가업승계인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한자리에 모으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막상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면 모임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 당황스러워하거나, 특별할 게 없다며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이들이 많다. 모임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다가도 막상 참여를 권하면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지금은 우선 모임의 취지를 알리고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가업승계인들이 서로의 노하우와 어려움을 공유하고, 그들이 가진 고유한 스토리를 모아 시민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모임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 과정에서 지역 전통산업에 대한 친숙도와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 그는 “현재 모임 구성원 대부분이 30대 초반~40대 후반이다. 이들이 가업승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세대간 갈등과 그것을 극복해낸 사례를 서로 공유하며 위로할 수 있다”며 “지금까지는 이같은 가업승계 스토리텔링과 관련된 자료가 없었고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도 극히 적지만, 앞으로 활용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하나의 콘텐츠”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게임업체에서 일해오다 6년전 한약방을 물려받았다. 당시 박대표는 한약이 단순히 제품이 아닌 ‘서비스’로 제공돼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 곧바로 고객 리스트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카톡이나 홈페이지 등을 이용해 고객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고객층은 젊어졌고, SNS 등을 통해 입소문이 퍼지면서 매출도 상승곡선을 그렸다. 4년 전부터는 한약방 2층에 공진단 만들기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꾸며,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자수성가한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물려주면서 자신의 생각을 따르길 고집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야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실천에 옮겼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3대집합소의 회원을 50명 정도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모임을 전국으로 확대해 일종의 ‘가업승계 업체 지도’를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 “일본이나 대만, 독일은 대를 이어 한 사업체를 이끌어오는 장인정신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도 부러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서 있는 모임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나아가 해외 가업승계 민간단체와의 교류를 통해 오랜기간 모임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3대집합소
한약방 운영 박신호씨 첫 제안
3세대 9명 모여 정보 등 공유
代를 이은 사업에 자부심 느껴

◆빤스생각
어머니 경험과 IT 기술 접목
온라인 판로 확대 매출 5배 ↑
연매출 10억원 목표로 일해

◆대원상회
시할머니로부터 60여년 이어져
가족옆에서 보고 듣고 내공 쌓여
아들이 원한다면 도와주고 싶어



◆온라인으로 판로 확대

기존 오프라인 가게를 물려받아 온라인으로 시장을 넓힌 청년상인도 있다. 최규현씨(28)는 어머니 손영미씨(51)가 1995년부터 20여년간 지켜온 속옷가게를 지난해 물려받았다. 최씨는 2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을 졸업하고 대구지역의 한 IT회사에 취직을 한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야근과 출장이 생활화된 노동강도를 버티기 힘들었고, 일을 그만두게 됐다. 그는 1년 동안 다양한 아이템들을 구상하며 자신만의 사업을 꿈꿨다. 그러다가 번뜩 어머니의 장사 노하우와 자신의 IT 기술을 합쳐 온라인 쇼핑몰을 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곧장 어머니 가게에서 함께 일하며 장사를 배워갔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 북구 침산동에 위치한 오프라인가게와 이름이 같은 인터넷 쇼핑몰 ‘빤스생각’이 개설됐다. 집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이지웨어, 수면바지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최씨는 “내가 가진 강점을 활용해 온라인으로 시장을 넓혔다는 것에 큰 뿌듯함을 느꼈다. 매출도 꾸준히 올라 1년새 5배가량 많아졌다”고 말했다.

최씨는 가업승계의 장점으로 ‘시너지 효과’를 꼽았다. 그는 “어머니도 온라인 시장을 알게 되면서 젊은 세대에 맞는 새로운 물건과 새로운 납품처를 알게 됐다”며 “어머니가 경험으로 체득한 영업 노하우를 바로 옆에서 배울 수 있고, 젊은 세대와의 소통 방식도 어머니께 알려드릴 수 있어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장사의 ‘꿀팁’을 곁에서 고스란히 전해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큰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시작하는 친구들이 어디서 물건을 구매해야 하고 어떻게 수익을 높일 수 있는지를 몰라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어머니 곁에서 날씨, 계절별 매출에 따라 제품을 구비해 놓는 방법을 배웠다. 또 열심히 일한 만큼 얻는 결과를 보면서 자신감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은 업무가 많아 가족 얼굴보기도 어려웠지만, 이제는 같이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지다 보니 대화의 주제도 다양해졌다. 최씨는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보다 CEO 수준의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며 웃었다.

그는 어머니가 일궈놓은 사업을 튼튼하게 키워갈 생각이라며, 속옷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도 도전하는 업체가 되고 싶다는 것. 뿐만 아니라 사회공헌 활동도 목표로 생각하고 있다. 최씨는 “목표를 크게 잡고 싶다. 연매출 10억원을 목표로 열심히 일할 것”이라며 “나아가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60년 신뢰·명성 무너지지 않도록

서문시장 ‘대원상회’는 이명희씨(50)가 시할머니, 시어머니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60여년간 이어오고 있는 견과류 가게다. 이씨는 “시할머니가 처음 장사를 할 당시엔 좌판에 사과나 떡을 놓고 파는 정도였는데, 시어머니가 물려받으면서 견과류, 건어물을 팔기 시작했다”며 “지금은 100여종의 견과류를 취급하는 규모가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열심히 장사하는 가족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기술을 배웠다. 좋은 제품을 고르는 눈이 생기고, 손님들을 배려하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갖추게 됐다. 그는 대원상회를 더욱 알리고 싶은 마음에 고령의 고객을 위해 배달을 하거나, 홍보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등 다양한 시도도 했다.

가업을 이어 받으면 사업을 비교적 쉽게 시작할 수 있고 거래처와 손님들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고충도 있다. 가끔씩 시어머니와 자신을 비교하는 손님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혹시나 자신으로 인해 손님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고 했다. 이씨는 “가족들이 몇십년에 걸쳐 이뤄놓은 명성에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한다”며 “특히 그동안 신뢰를 쌓아온 거래처와 단골손님들을 잃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주려고도 생각했지만, 최근 그 생각을 접었다. 시장에서 가족 대부분이 장사를 하다 보니 함께 정성스러운 식사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씨는 “하지만 아들이 하고 싶다는 의사가 있다면 도움을 줄 생각이 충분히 있다”며 “다만 장사는 노력한 만큼 가져갈 수 있다.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게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마음가짐이 갖춰져 있다면, 아들도 언젠가는 가업을 이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연정기자 leeyj@yeongnam.com
김미지기자 miji469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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