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작품과 작가의 관계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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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9   |  발행일 2017-09-09 제23면   |  수정 2017-09-09
[토요단상] 작품과 작가의 관계를 생각한다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최근 사람들의 이목을 끈 문학계의 두 가지 사건으로, ‘미당 서정주 전집’(은행나무, 2017) 발행과 소설가 마광수 선생의 운명을 들 만하다. 경사와 애사로 사건의 성격이 다른 만큼 사람들의 반응 또한 같을 수 없음은 당연한 것이지만, 실제 차이는 다른 방식으로 드러났다. 한국 현대시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시인의 전집이 여러 양식의 글쓰기를 망라하여 총 20권으로 발간되었지만 문단 안팎의 반응은 신통한 것이 없었고, 문학의 외설 문제로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작가의 죽음을 두고서는 추모와 애도의 말에 더해 그의 문학이 끼친 영향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들이 표명된 것이다.

이 두 사태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의 반응에 있어서 작가를 앞세워 작품과 작가를 갈라 보지 않는 양상이 확인된다. 한편에서는 서정주의 친일 및 독재 미화 행적에 대한 비판의식을 앞세워 전집 발간의 의의를 돌아보지 않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작품 활동으로 구속되고 대학에서 쫓겨났던 마광수의 고난을 떠올리며 그 작품들의 문제는 생각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의 바탕에는 ‘훌륭한 작품이란 위대한 작가에게서 나온다’는 식의 판단이 깔려 있는 듯싶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이 지속되는 데는, 어두운 시대에 맞서온 지식인 작가에게 찬사를 보내며 그러한 행적을 기리고자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맥락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저간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해도,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는 데서 나아가 문학작품의 특성 자체에 주목하는 방식을 폄훼하기까지 하는 데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앞의 사례들을 좀 더 깊이 보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이 하나요, 대체적인 상황을 볼 때도 그러한 동일시론이 보편성을 띠지 않는다는 점이 다른 하나다. 천 편에 이른다는 서정주 시 중 정치적으로 문제적인 것이 있고 후기 시 상당수는 태작에 가깝지만, 첫 시집 ‘화사집’(1941)에서 ‘질마재 신화’(1975)에 이르는 전기 시의 상당수는 시적 형상화 방식이나 시 세계의 개척면에서 한국 현대시의 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오랜 기간 한국문학 연구를 통해 축적되어온 이러한 평가를 존중한다면 향후 연구에 도움이 될 전집 발간의 의의를 인정해야 마땅하다. (방대한 전집이면서 ‘시집으로 묶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친일시 등을 누락한 것은 엄연한 잘못이지만)

마광수의 경우는 반대에 가깝다.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1989)와 소설집 ‘즐거운 사라’(1992) 등을 통해서 성에 관해 한국 사회가 보여온 이중성 및 위선에 도전하다 투옥에까지 이른 행적이 자유의 신장이라는 면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작품 세계를 보면 앞의 평가까지도 재고해야 마땅하다. 성을 다루는 그의 작품은 대체로 남성중심주의적 환상에 기초하거나 여성을 객체화하고 성을 사물화하며 그러한 맥락에서의 교설을 빠뜨리지 않아, 사실상 포르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제를 돌보지 않고 작가의 행적을 앞세운 단선적인 평가가 지속된다면 이는 문화적으로 불행한 일인데, 작가와 작품의 불일치 현상이 일반적이라는 점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톨스토이나 토마스 만의 경우처럼 작가의 올바른 행적과 작품의 우수성이 일치하는 사례들이 물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반대 사례 또한 많다. 노르웨이 문학을 대표하는 크누트 함순은 나치주의자였고, 널리 사랑받는 괴테 또한 민주주의와 진보의 견지에서 보면 반동적이었다.

넓게 보아 자본주의 체제를 기준으로 삼으면 작가들 일반이 비루한 존재일 뿐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보들레르나 에드거 앨런 포, 랭보는 물론이요 우리나라 문인 대부분이 사회경제적으로 그러했다. 이념적으로도 특별할 것 없는 보잘것없는(!) 생활 속에서 훌륭한 작품을 남긴 이 작가들의 존재야말로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는 경향의 잘못을 알려준다.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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