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사로잡은 김천포도…고급포도 시장 주도 일본과 ‘맞짱’

  •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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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14 07:47  |  수정 2017-09-14 07:57  |  발행일 2017-09-14 제12면
(샤인머스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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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품종 포도 샤인머스캣은 수출에 앞서 까다로운 선별 과정을 거친다. 새김천농협에서 선별 과정을 거친 샤인머스캣 포도를 상자에 담고 있다. <김천시 제공>

김천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포도가 출하되는 지역으로 알려진 배경에는 불안정한 국내 농산물시장이 있다. 아무리 우수한 농산물일지라도 ‘홍수 출하기’에 내놓으면 제값은 고사하고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내다 팔 수밖에 없는 게 농가의 현실이다. 김천 포도농가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출하하고, 다른 지역보다 앞서 신품종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조기 출하에 따른 문제(미숙에 따른 신맛)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농업인들은 다른 지역보다 일찍 도입한 시설재배를 노지재배와 병행하며 연중 6개월에 걸쳐 출하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한 발 앞서 도입한 신품종(거봉 계열)은 소비자의 기호를 바꿔 놓을 정도로 경쟁력을 확보했고, 안정적인 소득도 보장해 주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는 김천포도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시장개방에 따라 ‘수입과일’이 대거 상륙하면서 포도를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수입포도는 생소한 품종이 연중 공급돼 국내 포도시장을 위협했다. ‘김천포도 수출’은 이 과정에서 등장한 자구책이다. ‘외부에서 들여오는 만큼 외부에 내다 팔겠다’는 역발상인 셈이다. 포도수출은 품질관리와 시장확보가 필수적이며, 고차원적 생산술과 마케팅을 기반으로 하는 국제 무역의 영역이다.

"일본산과 품질면 차이 없어"
현지 바이어 반응도 폭발적
철저한 선별로 1등급만 선적
상자당 높은 파격 가격 요구
새김천농협 올해 350t 목표
싱가포르 등 8개국 수출 계획
캐나다·中시장 개척도 박차


김천포도의 수출 가능성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타진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까지 농협이 주도한 포도수출은 본격적인 시장 확보라기보다는 시장성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전기를 가져다 준 게 바로 ‘샤인머스캣’이다. 이용택 새김천농협장은 지난해 8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등지의 과일시장을 돌아보던 중 큰 충격을 받는다. 일본산 샤인머스캣이 송이당 7만원에, 그것도 인기리에 판매되는 장면을 목격한 것.

샤인머스캣은 일찍이 김천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재배되던 품종으로, 국내에서도 ㎏당 1만원까지 거래될 만큼 ‘고급포도’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송이당 7만원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아무리 현지 부자들이 드나드는 고급 백화점에서 팔리고 있다 하더라도 믿기지 않았다. 당시 이 농협장은 일본산 샤인머스캣 맛을 보고 난 후 ‘정말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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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농협 산지유통센터 전경. 김천시는 일찍부터 농산물 수출에 대비해 농협별 유통센터 건립을 지원해 왔다. <김천시 제공>

귀국한 이 농협장은 농협 내 수출전담 직원을 배정하고, 샤인머스캣 작목반의 작황을 점검하는 등 수출을 서둘렀다. 새김천농협 포도수출 담당 손상필 과장은 “그땐 시설 재배분이 전량 출하된 상태라 노지 재배분을 수출할 수밖에 없었다. 바이어에게 2㎏들이 상자당 3만원을 제의했는데 처음엔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다소 당황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손 과장은 ‘그래도 샘플로 소량이나마 보내 현지 반응을 살펴보자’고 설득해 20상자를 보냈다. 바이어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일본산과 품질면에서 차이가 없다는 평가까지 받았다며 물량을 확대해 달라는 답이 왔다. 이렇게 수출한 게 50t이다. 손 과장은 “나중에는 수출할 포도가 없어 오더를 이행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로써 일본이 독주하던 동남아 고급포도(샤인머스캣) 시장에서 김천포도의 경쟁력이 확인됐다. 올들어 새김천농협은 조금은 이른 시기인 지난 7월 중순부터 포도 수출에 나섰다. 이는 김천 포도농가들이 일찍이 시설재배 노하우를 터득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신감이 있었던 새김천농협은 수출 재개에 앞서 바이어와 수출가격을 놓고 한 판 승부를 펼치기도 했다. ‘올해부터 수출가격은 우리(새김천농협)가 결정한다. 2㎏들이 상자당 4만원은 받아야겠다’며 바이어에게 통보한 것. 바이어는 자신없다며 거부했다. 새김천농협은 “우리는 철저한 선별과정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포도만 수출하겠다. 비록 1등급이라도 조금이라도 기준에 미달하면 과감히 선적 대상에서 빼겠다”는 논리로 맞섰다. 바이어가 수긍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손 과장은 “일본과 생산환경이 다른 상황에서 2㎏들이 상자당 4만원은 파격적으로 높은 가격이다. 바이어 형편을 감안해 상자당 4천원 낮춰 줬지만, 이도 김천포도의 경쟁력이 없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격”이라고 말했다. 새김천농협은 거봉 계열(자옥 등)도 2㎏들이 상자당 1만3천원에 수출하는 추가 성과를 냈다. 새김천농협은 11월까지 김천포도 350t(샤인머스캣 100t, 거봉 250t)을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대만, 캄보디아, 라오스 등 8개국에 수출할 계획이다. 아울러 캐나다와 중국 시장 개척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포도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편 과일수출 전문업체인 그린빌 장탁중 대표는 “지난 6일부터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과일박람회’에서 보듯 과일에 있어 ‘핫(Hot)하고 큰 시장’은 아시아다. 특히 과일 소비량이 많은 인도네시아, 홍콩,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에는 한국 대표과일인 포도, 사과, 복숭아 등이 생산되지 않는다”며 충분히 승산이 있음을 설명했다. 장 대표는 “포도는 수출하기에 가장 유망한 과일이다. 현지에는 미국과 남미산 포도가 널려있지만, 우리나라 포도는 품종이 다르고 무엇보다도 맛이 좋다”며 “김천포도의 품질은 전반적으로 우수하다. 특히 시설재배와 노지재배를 통해 6~11월 끊임없이 수출할 수 있다는 게 김천포도의 경쟁력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현재도 김천포도가 많이 수출되고 있긴 하지만 우수한 생산 기반이 마련된 상태라 수출 물량을 확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앞으로 가격 등락이 있을 수 있지만 수출물량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천=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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