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화의 패션스토리] 해체주의와 빈티지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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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15   |  발행일 2017-09-15 제40면   |  수정 2017-09-15
정형화된 패션계에 반기
[정미화의 패션스토리] 해체주의와 빈티지

패션이 다양화되면서 유행패션을 무엇 하나로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 패션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2개의 큰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바로 해체주의와 빈티지다. 패션리더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해체주의적 패션이 대중화되고 빈티지를 이용해 새로운 멋을 창출하려는 시도도 주목받고 있다.


옷의 구조 해체 앞장선 레이 가와쿠보
옷의 기능 해체 선뵌 마틴 마르지엘라
실밥·솔기 노출 등 경계를 허문 디자인
가발과 깨진 접시 등 소재 역시 파격적

최근 빈티지도 색다른 패션 아이템 주목
현재 트렌드 아이템과 매치 땐 더 매력
모자·주얼리만 바꿔도 레트로무드 물씬


◆해체주의

패션의 디자인은 무궁무진하기에 어쩌면 옷에는 정해진 기준과 틀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옷이라는 것은 우리의 몸이라는 지극히 한정적인 틀 안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틀을 무너뜨리고 파괴하고 재해석해 창조해내는 이른바 해체주의에 끌린다. 신체의 일반적인 비율과 기준을 철저히 무시한 채 형태와 틀을 재구성한 해체주의 패션. 이제 해체주의는 더 이상 마니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최근 떠오르는 디자이너로 수많은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디자이너 ‘베트멍’의 실루엣이야말로 해체주의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런 베트멍의 스타일이 우리의 일상 속으로 다가오기까지 패션계에는 뿌리 깊은 해체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해체주의하면 떠오르는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 그녀가 이끄는 일본의 대표적인 브랜드 ‘꼼데 갸르송’은 브랜드가 탄생했던 당시 여성스럽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회적 경향과는 반대로 무채색의 톤다운된 계열의 컬러를 사용해 헤지고 구겨진 해체주의 옷들을 선보이며 파격적인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옷이라는 틀의 존재성 자체를 망각할 만큼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패션계에 해체주의라는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레이 가와쿠보가 틀의 정체성을 재창조하는 디자이너로 유명했다면, 틀이라는 개념을 살려두고 획기적인 해체주의 디자인을 선보이는 디자이너가 있다. 바로 파리에서 활동하는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다. 그는 옷의 기능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해체주의를 표현하는 듯했다. 의복의 생산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디테일, 풀려있는 실밥, 마감 처리가 안된 단, 내부의 솔기와 부자재의 노출 등 옷을 제작하는 과정에서의 관습을 무너뜨려 재배치하려는 의도가 마틴 마르지엘라 디자인의 대표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생산 과정에서 나타난 노동의 흔적들은 완성된 아이템을 보여주는 눈부신 순간에도 그대로 노출되는 특이한 기법이다. 그는 옷을 만드는 소재에 있어서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 가발, 비닐, 깨진 접시 등 상상 그 이상의 특이한 소재부터 기존의 패션 아이템(장갑·벨트·모자 등)을 분해해서 원단으로 새롭게 탄생시켜 옷을 제작하는 등 그의 실험적인 시도는 해체주의 패션의 기반을 더 탄탄하게 다져주는 역할을 했다. 마틴 마르지엘라는 런웨이 모델들의 얼굴을 가림으로써 옷에 초점을 두어 모델의 존재를 부정하는 메시지를 주었고 심지어 디자이너를 알리지 않아 그인지 그녀인지 그들인지 모르도록 했다. 이런 마르지엘라 브랜드는 해체주의를 기반으로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트 쿠튀르와 레디 투 웨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요즘, 해체주의적 디자인 요소는 파격에서 일상으로 스며들기 시작했고 이제는 우리가 흔히 접하고 있는 트렌드의 일부가 된 듯하다.

◆빈티지

옷장을 열어보면 언제부터 걸려 있었는지 가물가물한 아이템들이 눈에 띄곤 한다. 이 옷을 몇 년 전에 구입했었는지 기억이 흐리지만 새로 걸쳐 보았을 때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것이 바로 빈티지의 매력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패션 트렌드에 싫증이 난 이들에게는 빈티지 아이템도 색다른 패션아이템이 된다.

빈티지도 그 틀 안에서는 무한한 범위가 존재한다. 시장에서 발품 팔아 찾아내는 아이템에서부터 하이엔드 디자이너들의 빈티지 제품들을 모아놓은 유명 빈티지숍까지 다양하다. 간혹 빈티지 제품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질 때가 있는데, 라벨은 달려있는지, 가격이 싼지 비싼지 등을 따지려다보면 참된 빈티지의 매력을 느낄 수가 없다. 집중해서 봐야 될 부분은 퀄리티와 보존상태 그리고 앞으로의 관리다. 빈티지에 대해 객관적인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자신의 기준에 맡기는 것이 좋다. 또한 빈티지 옷을 소화하기가 다소 부담스럽다면 현재의 트렌드에 맞는 아이템과 함께 매치해 보는 것도 괜찮다. 옛날 옷이라고 해서 그 시절의 스타일에 좇아가다가는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기에 그 디자인이 현 시대의 아이템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생각해서 매치하다보면 빈티지 아이템이 훨씬 매력적으로 재탄생한다. 굳이 옷이 아니더라도 모자·주얼리 등 액세서리를 빈티지 아이템으로 바꿔만 주어도 충분히 레트로 무드를 연출할 수 있다.

우리가 빈티지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직접 체험해보지 못한 그 시대만의 패션을 느낄 수 있고, 개인의 추억이 깃든 아이템을 돌이켜보는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빈티지가 패션을 넘어서서 리빙은 물론 우리의 라이프스타일로도 스며들고 있다.

새로운 것이 더 이상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을 때, 다 비슷해 보이며 흥미를 잃었다면 과거의 것들에 눈을 돌려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세월은 흐르기에 더 가치 있고 차별화된 빈티지의 매력은 앞으로도 세월이 흐르는 만큼 무궁무진해질 테니 말이다.

패션저널리스트 mihwac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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