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학생들의 성장영화 제작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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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18 07:58  |  수정 2017-09-18 07:59  |  발행일 2017-09-18 제18면
“친구들과 소통·협력하며 갈등 극복…한단계 성장”
20170918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중학교 2학년 국어 교육과정에는 ‘소설쓰기’가 있다. 그야말로 학생들이 한 편의 소설 작품을 창작해 보는 수업을 하는 것이다. 1학기에 우리는 소설쓰기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 모두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소설 한 편씩을 갖게 되었다. 이 소설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고, 불안 불안했다. 그러나 우리는 소설 창작을 위한 여러 단계를 거치고, 또 수정에 수정을 거쳐 기어이 소설을 완성해냈다. 교사로서 이 과정을 지켜보며 가장 기뻤던 것은 소설을 완성했다는 사실보다 학생들이 소설을 쓰면서 평소에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오글거려서 못했던 속 깊은 말을 소설 주인공들의 입을 빌려 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학생들이 쓴 소설을 읽어 내려가며 철딱서니 없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 작품들이 아까워 2학기엔 소설을 성장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왕 성장영화를 만드는 수업을 할 거 좀 더 의미 있도록 국어 외에도 도덕, 가정, 음악 등 6개 교과가 함께하는 교과통합 프로젝트 수업으로 설계를 했고, 또 영화제를 열어 전교생에게 상영할 야심찬 계획도 함께 세웠다. 이름하여 우리 마을의 이름을 딴 ‘제1회 옥포영화제’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게다가 동료교사들의 격려에 힘입어 영화제에서 학생들의 성장영화 상영은 물론이고, 각종 연기상과 작품상도 수여하기로 했다.


“우리들의 이야기 영화제작·역할분담
수행평가 좋은 점수 욕심 심한 의견차
작은 역할이라도 최선 다하도록 유도
‘갈등일지’제작…서로 이해·조정 계기”



프로젝트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첫 국어시간, 학급별로 성장영화 제작을 위한 영화 제작사를 세워 역할분담을 하기로 했다. 큰 무리없이 진행될 것이라 생각한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역할분담에서부터 문제가 나타났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영화사 대표나 시나리오 작가의 역할을 맡기 싫어했고, 촬영감독 역할에는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좀처럼 이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2시간에 걸쳐 겨우 역할분담을 하고, 이번에는 함께 성장영화를 제작할 모둠원, 즉 영화제작사의 구성원을 모아야 할 차례가 되었다. 이번에도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떤 학생은 모든 영화사에서 함께 작업하기를 원했고, 또 어떤 학생은 어떤 영화사도 함께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선택을 많이 받은 학생은 괴로웠고, 또 소외된 학생들은 속상해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 결과 성장영화 만들기가 수행평가이니만큼 함께 해서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친구, 내가 좀 부족해도 이를 잘 채워줄 수 있는 친구와 함께 작업을 해서 좋은 점수를 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이런 갈등이 빚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내가 괜한 일을 벌여 나도 힘들고, 참여하는 학생들도 힘들게 한 것은 아닌지 후회가 되었다. 그러나 6개 교과가 함께 하는 대형 프로젝트 수업이라 준비 기간만 한 달 이상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이미 되돌릴 수가 없었다. 학생들과의 대화가 필요했다.

사실상 이 문제는 약간의 무임승차를 노리는 학생들의 욕구와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행평가 평가 기준을 대폭 수정해 사실상의 무임승차가 불가능한 구조를 만들어냈다. 같은 영화제작사의 일원으로서 성장영화를 제작해도 그 속에서 각자가 맡은 역할은 다 다르다. 이 부분에 초점을 두어 학생 개개인이 맡은 역할에 얼마나 성실하게 충실하게 임했느냐와 성장영화 제작을 위해 서로 얼마나 협력했느냐에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성장영화의 완성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협력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같은 성장영화를 완성해도 참여한 학생들의 점수는 다 다를 수밖에 없는 평가준거를 세웠다.

그러자 갈등이 곧 기회가 되었다. 지금의 갈등을 극복하고 서로가 협력하는 모습을 만들어 낸다면 그 자체로 높은 수행평가 점수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이 경우 갈등을 극복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갈등 일지’라는 이름의 작은 표를 만들어서 학생 워크북의 맨 앞쪽에 붙이게 했다. 오늘 우리는 무엇에 대해 갈등했고, 이를 어떻게 조정해 나가고 있으며 이 일을 통해 나는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학생 스스로 작성해 보게 했다. 이제 성장영화의 완성보다도 나에게 더 중요한 일은 우리 아이들이 성장영화의 제작과정에서 직면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를 관찰하고 조언하고 지켜보는 일이 되었다. 지금으로선 우리들의 성장영화가 어떻게 될는지 나조차도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 흥미진진하고 나도 우리 학생들도 한 걸음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혜정<대구 경서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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