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탕평’이 없다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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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18   |  발행일 2017-09-18 제31면   |  수정 2017-09-18
20170918
박규완 논설위원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습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습니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진영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탕평 인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듯하다. 문재인정부 1기 인사는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와 호남 편중으로 요약된다. 특히 대구·경북이 경도된 인사의 직격탄을 맞았다. 청와대 참모, 내각 장차관급 등 고위직 114명 중 대구 출신은 2명, 경북 출신 9명에 불과하다. 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 등 4대 권력기관에서도 대구·경북 출신은 ‘왕따’였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제외하곤 보수진영 인사 영입도 눈에 띄지 않는다. 한때 안철수 캠프에 몸담았던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경제적 정합성은 문 대통령과 궤가 같다. 장 실장 기용은 탕평이 아니라는 얘기다. 4강 대사도 캠프 출신이거나 문 대통령 측근이다. 대사의 두 가지 기본조건은 부임하는 나라의 언어 구사능력과 두터운 인맥인데 다들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북핵 위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경험 많고 노회한 인물로 4강 외교 라인업을 짜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울 듯싶다.

탕평 군주 영조는 1742년 ‘신의가 있고 아첨하지 않는 것은 군자의 마음이요, 아첨하고 신의가 없는 것은 소인의 사사로운 마음이다’라는 문구를 친히 지어 새긴 탕평비를 성균관에 세웠다. 또 영조는 수라간에 지시해 여러 재료가 고루 들어간 탕평채라는 음식을 선보이도록 했다. 영조가 탕평정치에 얼마나 심혈을 쏟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권력 안배를 통해 정국의 균형을 이뤄나갔다. 다만 영조의 탕평은 통치기반 확보를 위한 용인술이라는 한계를 노정한다. 그러므로 영조의 탕평책은 오늘날 민주사회가 희구하는 탕평과는 괴리가 있다. 영조의 탕평책은 재위 중반 에 확고하게 자리 잡아가는 듯했지만, 파당(派黨)을 온전히 뿌리 뽑지는 못했다. 노론의 무고에 의해 장헌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사화도 당쟁의 산물이었다.

탕평의 요체는 인사 탕평과 정책 탕평이다. 문재인정부의 정책 탕평 역시 낙제점에 가깝다. 분수효과에 방점을 찍고 소득주도 성장을 추구하는 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엔 필자도 동의한다. 소득주도 성장과 복지 확대는 소득 양극화 완화에도 유효하다. 하지만 성장의 동력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정권이 바뀐 후 보수 정부가 추진하던 구조개혁·노동시장 혁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1998년 10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독일 총리를 지낸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정책 탕평은 물론 인사 탕평, 이념 탕평을 제대로 실천한 인물로 꼽힌다. 좌파 정치인 슈뢰더는 재임 중 선거 득표에 연연하지 않았고 좌파 세력의 패권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오직 국민의 미래만 보고 연금·노동·교육 등 사회 전반을 개혁하는데 몰두했다. 독일이 유럽의 경제맹주로 우뚝 선 것도, 메르켈 총리의 장기집권도 슈뢰더의 정지(整地)작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탕평은 확장성을 가진다. 정책 탕평을 실천하면 정책 운용의 보폭이 넓어지고 인사 탕평을 추구하면 인재 등용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더 좋은 정책을 구현하고 더 능력 있는 공직자를 발탁할 개연성이 커진다. 정권의 지지층이 두꺼워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흔히 바다를 창해(滄海)라고 한다. ‘넓고 큰 바다’라는 뜻이다. 바다가 넓고 깊은 건 모든 물줄기를 마다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된 후 “대탕평과 국민통합으로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분열과 갈등의 고리를 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박근혜 4년’은 탕평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 편만 챙기고 정체성이 다른 인물은 철저히 배격했다. 문 대통령은 어떤 길을 갈까. 박근혜일까, 슈뢰더일까.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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