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영화, 장르, 관습과 답습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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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0 07:31  |  수정 2017-09-20 07:31  |  발행일 2017-09-20 제23면
[문화산책] 영화, 장르, 관습과 답습 사이
김현정 <영화감독>

어떤 이유로 ‘그’ 영화를 선택하고 보았는가. 존경하는 감독이 연출을 해서, 연기력이 좋은 배우가 나와서, 혹은 관심이 있던 소재, 선호하는 영화 장르라서. 액션, 누아르를 필두로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 멜로 등 한때 영화의 장르는 그 자체가 흥행의 강력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오롯이 특정 장르라는 이유 하나로 영화를 선택하는 사례는 드물어지고 있다.

영화에서 장르의 탄생 배경은 예술 혹은 작가주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할리우드 시스템은 거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영화 제작의 위험성을 극복하기 위해 장르라고 일컫는 상업적 흥행 공식에 따라 반복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어쩌면 영화를 예술이 아닌, 유희의 도구로 전락시킨 원인 중 하나가 ‘장르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영화 장르를 통해 영화를 선택하고, 영화를 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우리가 마치 문학 작품을 고전과 서사의 원형에 기대어 이해하듯, 영화의 장르 또한 숱한 영화들의 방향과 의도를 해석하게 하는 강력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 장르의 원형은 할리우드 시스템의 흥행 병기이기 전에 과거부터 누적된 가장 효과적인 서사의 패턴이면서 일종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케이퍼 무비, 즉 범죄물의 경우 그 원형은 액션, 누아르에 속한다. 매우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이 장르는 원래 선과 악의 이분법적 서사에서 출발했다. 선과 악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이 때문에 액션 장르는 다른 장르와 비교하면 사회 비판적인 경향이 매우 강하다.

한편 영화의 장르가 고전의 성질과 유사하다고 해도, 장르의 특성을 그대로 표방한 작품은 매우 위험하다. 영화 장르는 이야기 전개의 구조, 시청각 이미지, 캐릭터 등 영화를 만드는 데 핵심이 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 창작자는 장르의 법칙을 그대로 모방하고픈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고유의 시선 없이, 장르의 관습을 기계적으로 답습한 영화는 관객과 창작자 모두에게 어떠한 감흥을 주지 못한 채 진부함만을 느끼게 한다. 더 나아가 하나의 예술로서 영화의 위상과 존재 가치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영화 장르는 중립적일 뿐 그것이 진부할지 혹은 진화할지는 창작자의 태도에 달려 있다.

훌륭한 장르 영화는 장르의 관습을 멋지게 비틀어낸다. 그리고 그 비틂은 곧 창작자의 세계관이 된다. 장르 영화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선호하는 장르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면서 선택한 작품이 장르의 관습을 어떻게 잘 담아냈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나와는 다른 사회 구성원인 창작자의 의도와 세계관을 깨달을 수 있으며, 나의 시선과 비교해볼 수 있는 즐거움까지 얻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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