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핵무기 앞 자중지란에 허깨비까지 보이는가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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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0   |  발행일 2017-09-20 제31면   |  수정 2017-09-20
20170920

결국 북한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가졌다. 조만간 핵무장 국가를 선언할 것이다. 돌멩이로 탱크를 부술 수가 없듯이 현무 미사일로 핵을 제압하는 것은 물리학의 공식이 아니다. 총에는 총으로, 대포에는 대포로, 대칭적 전력으로만 응전한다는 현대전의 신사협정이 한반도에서 지켜지길 기도만 해야 할까.

이 사태가 오기까지 분명한 사실은 남측의 우유부단과 북측의 끈질긴 집념이 교차했다는 점이다. 북한 스스로도 수십년 유엔 제재 속에서 지금의 것을 이뤘다고 자부했다. 21세기 독재자의 권력유지(혹은 체제 유지) 보검(寶劍)은 핵무장이란 공식이 일찌감치 북한에 각인된 것이 분명하다. 리비아의 카다피, 이라크의 후세인은 미국을 향해 독설만 퍼붓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제임스 울시 전 미국 CIA국장은 “그래서 북한 김씨 일가는 핵무기 포기는 곧 망하는 길이라고 결론내렸다”고 했다.

지난 3일 북한은 수소폭탄 실험을 완성했다. 6번째 핵실험이다. 15일에는 지상에서 770㎞ 치솟아 지구 대기권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태평양 바다에 꽂힌 탄도미사일을 다시 선보였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이제 종착점에 거의 다다랐다. 끝장을 보아야 한다”고 인민을 독려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 집권자들 입에서 함부로 군사적 선택이니 하는 잡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고도 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질 수는 없다. 그는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도열한 미군을 배경으로 “F35(스텔스전투기) 엔진의 굉음을 적들이 들으면 영혼이 떨리고 심판의 날이 왔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호언했다. 말로만 보면 전쟁 전야다. 잡소리 한 번 못한 채 중간에 낀 우리는 괴롭다.

더 괴로운 대목은 우리 내부다.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전술핵무기 배치 1천만명 서명운동에 나섰다. 안 되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서라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핵폭탄급 망언, 무책임한 극언’이라고 했다. 한국당 의원들의 미국방문과 전술핵 배치 요청을 놓고도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사대외교라고 맹비난했다. 앞서 정권교체 이전, 두 정당은 사드 배치를 막으려는 민주당 의원들의 시진핑 면담을 두고 사대외교 논란을 벌였다. 장면이 되풀이된다.

집권세력 내부도 통일된 목소리가 아닌가 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문정인 대통령 안보특별보좌관에 대해 “나하고는 상대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국회에서 답했다. 장관은 또 “학자 입장에서 떠드는 느낌이지 안보 특보로 생각되지는 않아 개탄스럽다"고까지 말했다. 청와대가 가만있지 않았다. 장관에게 경고(엄중 주의) 조치했다. 이례적이다. 청와대와 국방부 장관은 이미 전술핵 도입을 놓고도 다른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이른바 인도적이란 800만달러 북한 지원을 놓고도 충돌했다. 우파 진영은 문재인 정권이 드디어 북한 퍼주기에 나섰다고 비난했다. 통일부는 지원에는 변함이 없다고 응수했다.

외교 국방정책에서 ‘NCND·neither confirm nor deny’란 것이 있다. 어떤 사안에 답할 때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정책이다. 이른바 포커페이스다. 내가 무슨 패를 들고 있는지 상대가 몰라야 이긴다. 남한의 북한 정책은 보다시피 다 까발려져 있다. 이래서는 이길 수 없다.

혼미하면 드디어 허깨비도 보이는가. 언론도 정신줄을 놓은 모양이다. 트럼프가 트위트에 글을 올렸다. “Long gas lines forming in North Korea. Too bad! ”. 국내언론은 “중국의 가스관이 북한으로 가고 있다”는 뜻으로 간주했다. 오보였다. 실은 “북한에서는 기름을 사려고 길게 줄을 서고 있다. 딱하다” 정도의 의미다. 어떤 인터넷 매체는 오보를 하루 종일 게재했다.

자중지란에다 허깨비까지, 있지 않아야 될 일들이 꼬리를 문다. 이런 징후들을 전쟁의 전조라고 역사책은 말한다. 자중지란은 내부의 적이다. 이것부터 걷어내야 한다. 북한이 걸어온 역순으로 우리는 어쩌면 수십년 인고의 세월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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