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뇌연구원의 뇌세상] 조절하라, 유전자 eRNA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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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6 07:48  |  수정 2017-09-26 07:48  |  발행일 2017-09-26 제19면
[한국뇌연구원의 뇌세상] 조절하라, 유전자 eRNA가 말했다

유명한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분자생물학계의 대부 프랜시스 크릭은 1958년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센트럴 도그마’ 가설을 제안한다.

글자 그대로 DNA에 담긴 유전정보는 RNA(핵산의 일종. 유전자 본체인 디옥시리보 핵산(DNA)이 가지고 있는 유전정보에 따라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할 때 직접 작용하는 고분자 화합물)를 거쳐 단백질로 전달된다는 이론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생명의 설계도(DNA)를 이용해 RNA 뼈대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효소나 호르몬 등 필요한 단백질을 만든다는 이론이다.

지금도 생물학자 및 의과학자들은 이 이론을 바탕으로 생명 기능과 질병 메커니즘을 밝혀왔고, 특히 뇌질환을 유발하는 특정 단백질을 억제해 질병을 치료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DNA에 담긴 유전정보를 이용해 단백질을 만드는 것으로만 알려졌던 RNA의 새로운 기능이 밝혀진 것은 1993년이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세 명의 과학자들은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선형동물에게서 22개 염기를 가진 짧은 RNA를 발견했다. 그 짧은 RNA는 이후 마이크로 RNA로 불리게 되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단백질 제조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7년 후 미국 하버드대학의 마이크 그린버그 교수팀은 당시 박사 후 연구원이었던 김태경 박사(현재 텍사스 주립대 의대 영년직 교수) 주도로 ‘인핸서 RNA (eRNA)’를 찾아냈다. 인핸서 RNA는 센트럴 도그마 이론에 나와 있지 않은, 전혀 새로운 RNA이다. DNA로부터 나왔지만 단백질을 만드는 데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인핸서 RNA는 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적으로 조절한다.

필자는 김태경 교수와 함께 텍사스주립대에서 2014년과 2016년에 뇌 안에서 만들어진 인핸서 RNA의 기능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최근에는 마우스 행동 실험을 통해 공포 기억을 담당하는 유전자의 인핸서 RNA를 억제했을 때 마우스의 공포 기억 역시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도 확인했다. 이것은 인간의 뇌질환과 관련된 유전자를 조절하고, 동시에 행동 변화까지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나아가 치매 및 알츠하이머 그리고 자폐증과 같은 뇌질환 유전자의 인핸서를 정밀하게 조종하거나 여기에서 나오는 인핸서 RNA를 적절하게 조절하면 뇌질환 치료의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글의 제목인 “조절하라, 유전자! eRNA가 말했다”는 세계적인 SF 스릴러 거장인 할란 엘리슨의 대표작 ‘회개하라 할리퀸, 째깍맨이 말했다’란 소설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는 항상 꿈을 간직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뇌 신경과학자인 필자는 뇌 질환을 극복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뇌 안의 인핸서 RNA를 연구하고 있다. RNA는 허황된 꿈이 될까. 아니면 뇌질환을 극복할 수 있는 꿈의 도구가 될까. 주재열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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