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내우와 외환이 만났을 때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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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6   |  발행일 2017-09-26 제30면   |  수정 2017-09-26
내우와 외환이 겹치면 재앙
한목소리 내도 모자랄 판에
주제도 분수도 모르는 정치
정당·표 위한 수작 그만두고
오로지 국가 위해 헌신해야
[화요진단] 내우와 외환이 만났을 때
장준영 편집국 부국장 겸 사회부문 에디터

내우(內憂)와 외환(外患). 말 그대로 내부에서 일어나는 근심과 외부로부터 받는 근심이다. 이게 하나만 겪어도 힘든데, 지금 동시에 닥쳤다. 국내 문제야 지지든 볶든, 정치가 정신차리고 국민이 단합하면 슬기롭게 극복할 여지가 있다. 그런데 대외적인 부분은 참으로 난감해서 좌고우면하는 현실이 서럽고 안타깝다. 개인이든 나라든 무능력하면 종속변수가 되는 게 이치인 모양이다.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 북한과 미국은 핵과 미사일을 소재로 연일 험한 말로 으르렁거리고 있고, 중국·러시아·일본은 각각의 편에서 말리는 척하는 시누이처럼 한마디씩 거든다. 그 와중에 당사자임에도 마치 중간에 ‘찡긴’듯한 우리나라는 피로감인지 익숙함인지, 아니면 원래 그랬는지 별로 존재감이 없다. 외신들은 최근의 긴박한 상황에서도 예상 외로 평온한 우리 모습에 적잖이 놀라는 눈치다.

‘이러다 진짜 전쟁나는 것 아닌가’라는 두려움과 의문이 많은 이들의 의식을 관통하고 있지만, 실은 상당히 무덤덤해 보인다. 도발하면 경고하고, 경고가 나오면 대화하라는 식의 순서는 최근 수년간 반복되는 레퍼토리다. 단지 북한의 미사일 종류가 바뀌고, 미국의 말투가 억세지고 과격해지며, 중국과 러시아의 ‘대화 강조’는 영혼없는 립서비스처럼 따라 붙는다.

세상에 전쟁을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무기업자와 사이코 말고는 없을 것이다. 무력충돌은 없어야 한다. 대화로 종식될 수 있는 사안이라면, 그리고 우리 역량을 감안한다면 벌써 가닥이 잡혀야 했다. 우리나라에는 말 잘하는 사람들이 정치판이나 공직, 심지어 회사에도 널려 있어 유리하지 싶은데 상황은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경상도 말로 제일 겁나는 것이 ‘하자’ ‘묵자’를 외치는 부류라고 한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하나같이 기-승-전-‘하자’ 또는 기-승-전-‘묵자’를 고집한다. 대화를 한다치자. 십중팔구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결론을 내린다. 또 순진한 상대방의 패만 훔쳐보고 더 무식하고 야비하게 대응한다. 거래는 밀고 당기거나, 주고받아야 성립되지만 어느 한 편이 우기기만하면 분명 파토가 난다. 판이 깨지면 순진하거나 순수한 쪽이 다 뒤집어쓰기 마련이다.

국내를 보자. ‘역대급 수소탄 시험’ 등 북한의 험악하고도 놀라운 막말에 미국은 지난 23일 전략폭격기 B-1B 랜서를 출격시켜 동해의 국제공역을 비행하는 ‘무력시위’를 펼쳤다. ‘더 이상 까불면 정말 혼낸다’는 최후통첩에 버금가는 경고를 북한에 보내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감 역시 역대 최고 수위로 높아졌다는 평가다.

그러나 사안의 휘발성이나 폭발력에 비해 국내에서는 주요 뉴스로는 취급됐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작금의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치보복’ 언급으로 촉발된 여야 다툼이 전·현 정권의 대결로 전선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물론 현재보다는 과거, 미래보다는 현재, 그리고 정당의 존재와 표가 훨씬 소중하고 익숙한 대상이리라. 그래서 우리 국회와 정치인들에게 ‘나라의 운명’이란 단어는 굉장히 낯설어 보인다.

갈수록 ‘정치의 질’을 정말 더럽게 들인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수준의 정치가 지금껏 횡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6·25전쟁 이후 60여 년 만에 이 정도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저 감사하고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아마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국가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한 발짝씩 양보했던 ‘보통사람들’이 계셨기에 가능했다고 확신한다.

내우와 외환이 만나면 당연히 재앙이다. 하지만 내우가 없다면 외환에 대한 대처는 한결 수월할 수 있다. 외환이 없더라도 내우가 숙지지 않으면 국민들에겐 또 다른 재앙일 뿐이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가 옛날 남미에서 인디언 추장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다. “추장님, 당신의 특권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전쟁이 났을 때 맨 앞에 서는 것이지요.” 이런 추장님을 살아 생전에 한 번이라도 뵙고 싶다. 장준영 편집국 부국장 겸 사회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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