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 재배법 개발 노력·市 적극 지원 합작 ‘명품 김천포도’ 결실

  •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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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7 07:44  |  수정 2017-09-27 08:59  |  발행일 2017-09-27 제12면
김천포도‘전국 최고’명성 얻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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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성수기의 김천농산물도매시장 전경. 전국 각지로 실려갈 포도상자가 넓은 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김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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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을 대로 무르익어 수확을 앞둔 포도(거봉). <김천시 제공>

김천의 포도산업 기반은 ‘수준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천포도를 유통·판매하는 외지인의 평가여서 괜히 추어올리는 소리만은 아닌 듯하다. 이는 김천 포도농업이 지닌 사업성을 높이 인정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끈질기게 ‘돈이 되는 농업’을 추구한 김천 포도농의 노력과 김천시의 지원이 합쳐져 거둔 결실이다.

◆김천포도의 역사

김천포도의 역사는 197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는 오랜 기간 농업소득의 한 축을 담당했던 양잠업의 쇠퇴기와 겹친다. 다수동을 중심으로 일부 농가에서만 재배되던 포도나무는 이 시기를 전후해 김천 전역으로 확산됐다. 갈아엎은 뽕나무밭에 대체 작목으로 포도나무가 심기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김천시와 농업 관련 행정기관의 적극적 권유가 한몫했다.

그러나 후발 주자인 김천포도가 당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던 안양포도를 비롯해 다른 지역 포도와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악조건은 오히려 김천 농업인의 잠재된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이른바 단경기(端境期·농산물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은 시기)를 겨냥한 ‘조기출하’ 전략은 신의 한 수가 됐다.


박피작업·숙기 촉진제 처리로
1∼2주 앞당기는 재배법 도입

비가림 농법으로 병충해 예방
전국 최초로 시설 재배하기도

市, 체계화된 생산기술 보급
타지보다 재배술 4∼5년 앞서

토양에 다량의 게르마늄 성분
포도의 저장성과 당도 높여줘

일교차 심한 지리적 조건으로
향과 맛 뛰어나 소비자에 인기



조기출하의 관건은 당연히 어떤 방법으로 포도를 빨리 익게 하느냐 는 것이다. 당시 시설재배는 이론적인 영역의 농법에 머물고 있었고, 국내에는 ‘자연적인 방법’ 외에는 별다른 영농술이 없었다. 그러나 김천 포도농가는 과감했다. 나무 껍질을 6㎜ 정도 벗겨내는 박피(剝皮) 작업과 에스렐(Ethrel·과일 숙기 촉진제) 처리 등 일찍이 시도된 적이 없었던 재배술을 도입한 것. 박피는 잎의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얻은 영양분이 뿌리로 가는 것을 막고, 대신 포도송이로 가도록 해 수확을 1~2주 정도 앞당기는 재배술이다. 김천포도는 이것으로 전국에서 가장 먼저 포도를 출하할 수 있게 됐고 마침내 ‘김천포도’라는 고유명사를 얻게 된다.

이 같은 적극적인 영농은 소득향상으로 연결됐으며, 벼를 생산하던 논이 포도밭으로 바뀌는 등 재배면적이 급격히 증가하는 직접 요인이 됐다. 나아가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김천이 전국 제일의 포도산지로 발돋움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후 김천 포도농가는 전국 최초로 시설재배를 도입하고 품종을 교체했으며, 지베렐린(Gibberellin·생장촉진 식물 호르몬으로 주로 씨 없는 포도 생산에 활용) 처리를 일반화하는 등 상대적으로 앞서가는 모습을 보이며 본격 수출시대를 맞고 있다.

◆다양한 재배기술

김천 포도농가의 재배기술은 박피, 에스렐, 지베렐린 외에도 비가림, 가지 비닐 씌우기, 미니하우스 등이 있다. 비가림 재배는 포도가 열매를 맺고, 생육기와 성숙기를 거쳐 수확되기까지 전 과정에 있어 비로 인한 병충해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농약 사용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품질이 우수한 포도를 생산하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김천포도 재배면적의 95% 이상 적용될 정도로 보편화된 농법이다. 가지 비닐 씌우기는 포도 싹이 트기 전에 가온 효과를 노리는 재배술로 가지에 비닐봉지를 씌워 4월 말쯤 벗긴다.

조기출하를 겨냥한 가온 농법에 있어서 대표적인 게 시설하우스다. 시설재배는 전체 2천100㏊의 재배면적 중 350㏊ 정도 차지하고 있다. 시설비와 유류비 등 상당한 영농비 투입이 전제되는 농법임에도 젊은 농업인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밖에 반사필름 및 축열 물주머니 설치, 이산화탄소 발생기 및 점적관수(點滴灌水·미세한 구멍을 통해 원하는 만큼의 물을 계속 포도나무에 공급하는 방법) 등 다양한 시설을 활용한 농법이 적용되고 있다.

김천 포도농가는 현재 어떤 품종이든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열매를 맺게 하고 있다. 이는 포도농가 대부분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재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술 수준도 평준화돼 있다는 뜻이다. 김천농업기술센터 임병엽 지도사(포도 담당)는 “우리 지역 포도농가의 재배기술이 다른 지역에 비해 4~5년 앞선 것은 분명하다”며 “이는 거봉(자옥) 계열의 품종 도입이 계기가 됐다. 거봉포도를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찍 도입하는 바람에 초기에는 고생도 많았지만, 이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각종 고급 재배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임 지도사는 “고급포도 생산에 필수적인 지베렐린 처리만 해도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김천에선 이미 과거에 보편화된 기술이며, 농가별 처리 수준도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앞으로 김천이 해외시장은 물론 내수시장까지 지배할 샤인머스캣의 생산 중심지가 될 것으로 자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김천의 포도 생산자들은 상대적으로 농사짓기가 까다로운 샤인머스캣을 도입하기에 앞서 ‘거봉재배’라는 중간 단계를 거쳤기 때문에 샤인머스캣 재배에 필수적인 기술을 모두 익힌 상태라는 것이다. 그는 “김천 포도농가의 현재 재배기술 수준은 샤인머스캣 재배에 따른 별도의 교육이 필요 없을 정도”라고 평가했다.

미니하우스는 무가온 촉성재배농법이다. 시설하우스가 난방장치를 이용해 가온하는 농법인 반면 무가온 촉성재배는 관련 시설을 통해 햇빛 효과를 최대한 활용한다. 미니하우스 농가는 시설하우스의 포도 출하가 끊기고 노지 포도가 출하되기까지 약 2주간의 국내 포도시장 공백기를 겨냥한다. 이른바 단경기 시장을 장악함으로써 시설하우스에 버금가는 소득을 확보하자는 전략이다.

김천 포도농가에 일반화한 무가온 촉성재배는 노지에서도 얼마든지 시설하우스와 경쟁할 수 있고, 수출포도를 생산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기술이 됐다. 나아가 투자는 최소화하고, 소득은 최대화할 수 있는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김천포도 선구자들

김천시는 이처럼 다양하고 체계화한 포도 생산기술을 수출포도 생산에 쏟아붓는 한편 더 높은 단계로 진화할 수 있게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수출을 겨냥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고도화된 생산기술은 내수용 포도의 품질을 높이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임 지도사는 “농가에서는 특상품 포도를 수출품으로 분류하지만, 정작 품질검사 통과율은 20% 정도에 그친다”며 “이는 국내와 현지의 선호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수출용의 품질검사는 알의 굵기, 송이당 무게 등 현지의 선호도가 기준이 된다. 국내 선호도와 일치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품질이 우수함에도 기호의 차이로 인해 수출이 막힌 포도가 전량 내수시장에 출하되다 보니 내수용 포도의 품질 기준이 상향되는 등 내수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김천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김천의 지형이 김천포도가 명성을 쌓는 데 한몫했다”며 “토양에 다량 함유된 게르마늄 성분은 포도의 저장성과 당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 또 추풍령으로 인한 극심한 일교차는 포도의 향과 맛을 더해 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의 포도 관계자들은 기후 등 자연적인 조건이 김천포도에 미친 영향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지 않는다. 김천포도의 성장은 순전히 김천 농업인의 의지와 시청의 지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게 공통된 견해다.

이는 김천포도가 명성을 쌓는 과정에서 활약한 농업인만 봐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한국포도회 초대 회장을 지낸 김성순씨는 ‘김천포도의 선구자’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김천시사(市史)에 따르면 그는 이미 1960년대 후반에 지베렐린 처리를 시도해 ‘씨 없는 포도’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캠벨얼리 포도를 대상으로 한 그의 파격적인 실험 정신은 훗날 김천이 국대 최대 포도산지가 되는 밑거름이 됐다는 게 중론이다. 이 밖에 조우현 으뜸전국시설포도회장, 편재관 전국포도회 부회장 등도 김천의 포도농업을 이끌어온 선구자들이다.

김천=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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