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분장·우리의 20세기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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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9   |  발행일 2017-09-29 제42면   |  수정 2017-09-29
하나 그리고 둘

분장
참을 수 없는, 위선·가식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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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연말에 개봉해 6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던 ‘미녀는 괴로워’(감독 김용화)는 성형 미인에 대한 관객의 심중을 넌지시 건드린다. 남자주인공은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성형에 대해 꽤 관대한 입장을 취한 후 한마디 덧붙인다. “내 여자만 안하면 됐지, 뭐.” 성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이슈조차 되지 않는 요즘, 영화는 성소수자들의 인권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다루어내며 종종 관객들의 입장을 묻는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분장’(감독 남연우)은 아주 참신한 소재의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하나의 현실적 상황극을 친절하게 제시하는 작품이다.


性소수자 연극 주연배우의 무대 안팎 모습 통해 조명
표면과 실체의 간극 시각화하는 장치로 ‘분장’ 활용
연출부터 연기까지 모두 맡은 남연우 재능 돋보여



‘송준’(남연우)은 오랜 무명배우 생활 끝에 성소수자의 삶을 다룬 유명 연극, ‘다크 라이프’의 오디션을 통과한다. 평소 성소수자들과 스스럼 없이 잘 어울리던 그는 트랜스젠더 역할도 제대로 소화해내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러던 어느 날, 송준은 뒤늦게 커밍아웃한 친구 ‘우재’(한명수)와 친동생 ‘송혁’(안성민)이 연인 관계라는 사실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그 누가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여도 상관없지만 내 가족만큼은 아니어야 한다는 위선이 그를 폭력적으로 만들고, 그 위선에 대한 자각과 죄책감까지 송준을 옥죄어오는 가운데 마지막 공연이 시작된다.

‘다크 라이프’의 ‘빌리’, 아니 ‘쥬디’를 연기하기 위해 짙은 메이크업을 하고, 가발을 쓰고, 원피스를 입은 송준은 무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편견을 숨긴 채 살아가는 현실의 송준과 중첩된다. 실제로 트랜스젠더가 아니면서도 무대 위에서는 완벽한 ‘쥬디’로서 인정받는 것처럼, 평소 송준은 성소수자들에게 완전히 열려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동생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송준은 먼저 실망스럽다. 그의 이미지는 오히려 처음부터 성소수자들을 경멸했던 친구 아래로 추락해 버린다. 그러나 동생과 친구가 섹스를 벌이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하기 전까지 미처 자신의 편협함을 잘 알지 못했다는 점에서 송준은 일반적인 위선자들과 구분된다. 송준 또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이 빚어낸 하나의 인간 유형이며, 영화의 결말부와 연결시켜 볼 때 또 다른 낭떠러지에 선 희생자에 가깝다. 성소수자들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결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송준에게도 같은 무게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성소수자들의 친구이자 성소수자 인권 연극의 주연을 맡은 송준의 표면적 위치와 동성애자인 동생을 용납하지 못하는 실체, 그 간극을 시각화하는 장치로 영화는 ‘분장’을 이용한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그는 복잡한 심경을 감추려는 듯 분장을 지우지 않고 어머니와 동생을 대면한다. 동생에게 한 차례 폭력을 행사한 다음 공연에서는 서둘러 분장을 지워버림으로써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의도치 않은 끔찍한 사건 이후 어슴푸레한 새벽을 배회하던 송준의 갈 곳 잃은 눈동자가 대형 현수막 속 ‘쥬디’의 슬픈 눈동자와 겹쳐지는 부분은 인물의 심리를 강렬하게 묘사하고 주제를 집약적으로 드러낸 좋은 장면이다.

비단 성수소자에 관한 입장 뿐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겉으로 관대한 척 하거나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수많은 쟁점들이 막상 나 혹은 내 가족과 결부될 때, 우리는 얼마나 일관된 모습을 보일 것인가. 조금은 거칠지만 유의미한 문제의식을 정공법으로 밀고 나가는 방식, 주제의 확장성, 설득력 있는 캐릭터 등에서 연출과 주연을 모두 맡은 남연우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03분)


우리의 20세기
1979년 美 산타바바라의 다섯 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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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기억이 과거를 어느 정도 낭만화시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입시에 대한 부담으로 매일 고단했던 학창시절도,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던 이별의 시기도 오랜 세월 후에는 꽤 예쁜 사진첩에 담겨 가끔 꺼내 보고픈 ‘추억’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 일명 ‘복고’ 콘텐츠는 대개 이러한 대중들의 ‘긍정적 기억법’ 내지는 향수에 기대어 제작된다. 그때 그 시절을 재현한 세트, 의상, 헤어스타일, 음악, 현대와는 다른 생활 방식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여기에 많은 공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20세기에 태어나고 자란 다섯 남녀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의 20세기’(감독 마이클 밀스)에서 또한 그러한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가 가진 매력의 극히 작은 일부일 뿐이다. 각 캐릭터들의 남다른 인생사와 재치 있는 대사, 분절된 듯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영화 내내 묘한 흥분으로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마이클 밀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 바탕으로 한 작품
양육·진로·연애 등 21세기에도 여전한 삶의 고민 위로
각 캐릭터들 남다른 인생사와 대사·에피소드 재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는 유년시절에 자신을 길러준 여성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듬뿍 담겨 있다. 싱글 맘으로서 사춘기 아들 ‘제이미’(루카스 제이드 주만)를 키우는데 부족함을 느끼는 ‘도로시아’(아네트 베닝)는 세입자이자 아티스트인 ‘애비’(그레타 거윅)와 제이미의 오랜 친구 ‘줄리’(엘르 패닝)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후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제이미와 소통해가면서 그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된다. 제이미 또한 이들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하며 소중한 기억 혹은 과거의 일부가 되어간다. 이들의 매우 사적이고도 아주 친밀한 순간이 스크린에 담기는 동안 관객들도 1979년 산타바바라를 살아갔던 인물들에게 빠져든다.

베트남전 패배, 석유 파동, 워터 게이트 등 수많은 정치적 이슈 가운데 각자 숨 쉴 구멍을 찾아야 했던 1970년대 말의 불안정한 분위기는 신냉전 체제와 전쟁의 위협 속에 있는 동시대의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양육, 진로, 건강, 연애 등 여전히 유효한 삶의 고민들을 먼저 겪었던 그들의 모습에서 담백한 위로를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의 21세기는 어떠냐고 묻는 듯한 다정함이 좋다. 자신의 유년기를 당대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아울러 반추하는 감독의 미학적 시선도 잘 느껴지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9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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