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적폐청산’인가, ‘정치보복’인가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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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02   |  발행일 2017-10-02 제30면   |  수정 2017-10-02
MB정부 시절 전방위사정
현 정부와 전전 정부 충돌
제도·관행을 뜯어고칠지
사람을 손봐 줄지에 따라
여론의 평가가 달라질 듯
[송국건정치칼럼] ‘적폐청산’인가, ‘정치보복’인가

한쪽은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켜켜이 쌓인 폐단을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다른 한쪽은 “정권을 잡은 세력이 야당 시절에 자기들도 당했다며 복수극을 벌이는 것”이라고 한다. 살아 있는 권력 문재인정부와 5년 전에 수명을 다한 이명박정부의 정면충돌이 예사롭지 않다.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정부 사람들이 법적·정치적으로 초토화된 데 이어 전임 보수정권인 MB정부도 낭떠러지로 내몰리고 있다.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와 검찰의 조사·수사는 매우 포괄적이고 다양하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문화계 블랙리스트, 공영방송 장악 등을 둘러싼 의혹뿐만 아니라 2007년 대선 때 불거졌던 BBK 사건까지 재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박근혜정부 때 MB정부를 겨냥했던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산업) 비리 의혹도 여전히 뇌관이다. 모든 의혹의 정점엔 MB가 있다.

진보정권 시각에선 박근혜정부뿐 아니라 MB정부도 타락한 부정부패 정권이고 반드시 청산해야 할 대상인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 진영은 촛불민심으로 실시된 5·9 대통령선거 때 일찌감치 ‘부패 대 반(反)부패’ 프레임을 만들었다. 그런 전략은 최순실 게이트로 성나 있던 민심을 결집시켰고, 보수성향 유권자들은 숨을 죽이고 있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보수정권=부정부패’ 등식을 성립시키기 위해선 MB정부 비리 의혹의 재발견도 필요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사자방’ 비리를 조사해 부정축재 재산을 모두 환수하겠다는 뜻을 표명한 바 있다. 집권 후엔 100대 국정과제를 선정하면서 ‘적폐청산’을 가장 앞머리에 뒀다. 부처별 TF를 구성해 국정농단 실태를 분석하고, 기소된 사건의 공소 유지를 철저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적폐청산 다음 순위로 둔 건 ‘반부패 정책 수립’이다. 이를 위해 최근 5대 권력기관이 참여하는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출범시켰다.

결국 문재인정부는 보수정권 시절 9년의 적폐청산과 부패척결을 같은 선상에 놓고 접근하는 셈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사정(司正)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도려낼 곳을 찾다 보니 보수정권 시절에 모두 곪아 있더라는 논리다. 하지만 ‘당하는 쪽’에선 그 이전 진보정권 10년(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엔 곪은 곳이 전혀 없었느냐고 반박한다. 그때까지 거슬러가지 않고 최근 9년만 문제 삼는 건 정치보복이라고 항변한다. 특히 문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MB정부 초기에 박연차 게이트로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에 대한 앙갚음 아니냐는 생각이 강하다. 여당 소속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MB정부 청와대 정무수석 출신인 정진석 의원의 설전에 서로의 기본 인식이 녹아 있다.

박 시장은 “내가 본 최대의 정치보복은 MB정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가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정 의원은 “(돈을 받은 일로) 부부싸움 끝에 권양숙 여사는 가출하고, 노 전 대통령은 자살한 것 아니냐”고 받아쳤다. 논란이 확산되자 MB가 직접 나서 ‘퇴행적 시도’라고 반발했다. 그의 옛 참모들은 “MB를 공격하는 첫째 목적은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고, 둘째는 보수궤멸”(김두우 전 홍보수석)이라고 규정했다. 또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김효재 전 정무수석)는 결사항전 의지도 표출됐다. 현 정부가 전 전 정부를 겨냥한 일들은 적폐청산일까, 정치보복일까. 사실 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뜯어고치면 적폐청산이다. 사람을 겨냥해 손봐 주겠다는 식이면 정치보복이다. 지금은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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