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다당제 효과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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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3   |  발행일 2017-10-13 제23면   |  수정 2017-10-13

도시바 반도체 부문 인수전에서 미국의 베인캐피털, 일본 정책개발은행 등으로 구성된 SK하이닉스 연합군이 막판에 웃었다. 패색이 짙었던 SK하이닉스 연합군이 어떻게 도시바 반도체를 품을 수 있었을까. 신의 한 수는 애플 영입이었다. 애플은 아이폰·아이패드용 메모리를 연간 10조원어치 구매하는 도시바의 슈퍼 고객. 애플이 하이닉스 연합군에 참여하면서 반전이 일어났던 게다. 애플의 바잉 파워(Buying power)는 도시바를 옭아맨 절묘한 압박 카드였던 셈이다.

SK하이닉스 연합군의 승리가 ‘애플 효과’ 때문이었다면 정치권에선 ‘다당제 효과’를 눈여겨봐야 한다. 여야가 삐걱거리고 있는 가운데서도 ‘정치 휴업’ 없이 국회가 굴러가는 건 다당제 구도의 공력(功力)이 통하고 있다는 의미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완충지대 역할을 하면서 협상의 틈새가 넓어졌고, 거대 양당의 극한대립도 사라졌다. 실제 국회 활동이 완전 중단되는 ‘식물국회’나 전기톱·망치까지 등장한 ‘동물국회’는 모두 양당제 때 일어났던 일이다. 또 다당제 구도였던 노태우정부와 김대중정부 시절의 국회 법안 통과율이 양당제였을 때보다 훨씬 높았다.

이미 국민은 지난해 총선에서 다당제를 선택했다. 양당 카르텔의 대주주였던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 어느 한쪽에도 과반을 주지 않고 국민의당에 조정자 역할을 맡겼다. 국민이 만들어낸 3당 정립(鼎立) 구도는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를 능가하는 황금분할이었다. 여기에 바른정당이 탄생하면서 4당 구도로 재편된 것이다.

우리처럼 협상력과 정치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나라에서 양당제는 극한대립으로 흐를 개연성이 농후하다. 다당제가 제격이라는 얘기다. 유권자의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점도 다당제의 매력이다. 객관식 시험문제도 사지선다형 아닌가. 이지선다형이라면 수험생의 개략적 실력조차 판별할 수 없을 게 뻔하다. 윷놀이도 도와 모만 있었다면 윷말을 움직이는 변화무쌍한 게임으로 살아남지 못했을 터다. 개와 걸이 있듯 개혁보수·중도진보 정당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바른정당 일부 의원이 얄팍한 보수통합론에 솔깃해 자유한국당을 기웃거리는 행태는 개탄스럽다. 정략에 의한 인위적 통합은 정치사에 오점만 남길 뿐이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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